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가롤로. 경기도 광주(廣州)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난 그는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었다. 또한 1839년에 순교한 유조이(柳召史, 체칠리아) 성녀는 그의 계모였으며, 같은 해에 순교한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성인과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 성녀는 그의 동생들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조상의 제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1794년 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그는 부친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서 성사를 받았다. 또한 그의 가족들이 양근(陽根) 분원(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으로 이주하여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할 때 주 신부가 몇 차례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 무렵 그는 포천(抱川)의 유명한 신자 홍교만(洪敎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인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 그의 부친과 숙부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자, 그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옥 근처에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하였다. 이때 관리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 신부의 거처를 밀고하면 그의 부친과 숙부들을 풀어 주겠다고 꾀었으나, 그는 결코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정약종이 대역죄로 처형되자, 그도 연좌법에 의하여 4월 8일 체포되어 문초를 받게 되었다. 이때 그는 거짓으로 꾸며대면서 주 신부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또한 집안 사람들의 만류나 조정의 금지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주교를 깊이 믿어 온 사실들과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라 조상의 제사에 참배하지 않은 사실 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 결과 그는 한 달 이상을 옥에 갇혀 있다가 1801년 5월 14일 최필제(崔必悌, 베드로) · 윤운혜(尹雲惠, 마르타) · 정인혁(鄭仁赫, 타대오)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정철상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시복 · 시성 대상자 126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올라 있다. (→ 신유박해 ; 유 세실리아 ; 정약종)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상/ 《邪學懲義》 권1/ 조광 편저, 변주승 역, 《신유박해 자료집》,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1999/ 車基眞, 〈丁若鍾의 교회 활동과 신앙〉, 《교회와 역사》 15호(2000). 〔徐鍾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