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가

讚美歌

〔그〕 ὕμνος · 〔라〕 Hymnus · 〔영〕 Hy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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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기경 그리스 교회에서 사용된 찬미가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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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기경 그리스 교회에서 사용된 찬미가 사본.

시편, 찬가(Canticum)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루며, 새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해 주로 시간 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 가사의 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
〔정 의〕 찬미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힘노스'(ὕμνος)는 신들과 영웅들을 칭송하는 축제적 성격의 노래로, 예배의 틀 안에서 고양된 언어 형식으로 불렸다. 가사는 이야기, 탄식, 서약, 찬양, 숭배 등의 내용을 포괄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 392~416)에서 찬미가를 "하느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라고 하였다. "찬미가의 찬양은 노래로 불린다. 찬미가의 노래는 하느님을 찬양한다. 만일 찬양이 하느님을 향하지 않으면 찬미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찬양이 하느님을 향하나 노래로 부르지 않으면 찬미가라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찬미가가 되기 위해서는 '찬양', '하느님', '노래'라는 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라틴어 찬미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노의 이 정의는 스페인의 이시도로(560?~636)에 의해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찬미가는 찬양 노래다. 그리스어 힘노스는 라틴어로 찬양(laus)이다. 그래서 찬미가는 기쁨의 찬양 노래여야 한다. 당연히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여야 한다.“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 전례의 핵심을 이룬다. 이 세 가지 교회 노래는 음악적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가사의 출처에 의해 구분된다(에페 5,19; 골로 3,16). 성서의 '영가'(靈歌)는 라틴어 '칸티쿰'(canticum)을 옮긴 것이다. 시편은 구약성서의 150개 시편을, 찬가는 시편을 제외한 신구약의 성서 구절을, 그리고 찬미가는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작시된 라틴어 산문시를 가사로 하여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야훼를 찬양하던 시편은 현재도 시편 성가(Psalmodia)라는 음악적 틀로 낭송된다. 음악은 시행(詩行)의 구조를 따른다. 찬가와 찬미가는 이 시편 성가에서 발전한 본격적인 의미의 서정적인 노래들이다. 찬가가 홍해를 무사히 건네 준 야훼께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노래한 미리암의 노래 〈야훼를 찬양하여라〉(출애 15,20-21)에서부터 마리아의 노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 루가 1,46-55) 등으로 구약과 신약을 잇는 성서적인 노래라면, 찬미가는 신약의 교회에서 새로 창작된 영성적 · 전례적 내용의 노래다. 후자는 가사의 절수에 따라 선율을 반복한다.
찬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례와 음악에 대한 시대적 요청과 맞물리며 간혹 행렬 음악이나 미사 음악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사실, 찬미가는 라틴어 전례에서 사용되는 교회적 가사들과 이들의 노래 작업으로 계속 그 영역을 넓히며 고대와 그리스도교회 그리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잇는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 초대 교회가 찬미가를 자주 '다윗의 찬미가'로 불렀다는 언급에서도, 그리고 이 언급이 찬미가가 정신적 · 음악적으로 다윗의 시편과 이를 노래하던 유대교의 시편 성가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실제로 광의의 찬미가는 앞서 서로 다른 것으로 언급한 시편과 찬가, 그리고 9세기 이후 새로 나타난 트로푸스(tropus)와 딸림 노래(sequentia) 등의 그레고리오 성가, 나아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민족 언어에 의한 모든 자국어 교회 노래를 포괄한다. 그래서 찬미가는 이들 전체를 엮는 상위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협의의 찬미가는 새로 작시된 운율적 혹은 리듬적 산문시에 의한, 주로 시간 전례의 공동 기도 시간에 사용되는 라틴어 장절 가사의 전통적 그레고리오 성가를 의미한다. 이것은 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성가(현행 《가톨릭 성가》)의 전형이 되었다.
〔역사와 용도〕 찬미가는 시리아의 교회 학자인 에프렘(306?~373)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는 푸아티에의 힐라리오(315?~367)와 함께 많은 신작 찬미가를 발표하며 동방 및 서방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집트의 옥시린코스에서 발견된 3세기경의 그리스어 찬미가는 현 존하는 몇 개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데, 선법이나 리듬 면에서 그리스 문학의 찬미가를 연상시킨다. 특히 신을 부르며 모시는 초대(invocatio), 신의 업적을 기리는 칭송(pars epica, 서사적 부분) 그리고 필요한 것을 청원하는 기도(preces)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호메로스(Homeros)가 지은 《일리아스》(Ilias)에서 나오는—사제의 기도 양식과 거의 동일하다. 이 특징은 호메로스 이후의 문학적 · 예배적 찬미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라틴어 가사에 의한 서방 교회의 찬미가는 동방 교회보다 한 세기 늦게 암브로시오(339~397)에 의해 시작되었다. 〈세상의 영원한 창조자여〉(Aeterne rerum conditor), 사은 찬미가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Te Deum), 〈만물의 창조자 하느님〉(Deus creator omnium) 그리고 〈인류의 구세주여 오소서〉(Veni redemptor gentium), 〈아버지 영광의 광채〉(Splendor paternae gloriae) 등 그의 14편의 찬미가는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높이 평가되며, 찬미가의 전형으로 이어졌다. 찬미가는 5~6세기의 대표적 작가였던 포루투나토(V. Fotunato, 540?~600?)의 〈내 입술이여 찬미하라〉(Pange lingua), 스페인 출신의 프루덴시오(Prudentius, 348~405?)를 거쳐, 카롤링거 왕조 시대 바오로 부제의 〈요한 찬가〉(ut queant laxis), 마우로(R. Maurus)의 〈오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 12세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의 〈감미로운 예수〉(Jesu dulcis memoria) 그리고 14세기 야코포네(Jacopone da Todi, 1230?~1306)의 〈고통의 어머니께서 서 계셨다〉(Stabat mater dolorosa)까지 약 1,000년 동안 교회 안에서, 특히 수도원을 중심으로 창작되었다. 그러나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찬미가는 3세기부터 시간 전례에 사용되었다. 5세기에는 이미 다양한 찬미가들이 여러 지역 교회의 전례에서 불렸다. 베네딕도(480?~547?)는 《베네딕도 규칙서》(Regula Sancti Benedicti)에서 찬미가를 시간 전례의 매 기도 시간에 노래하라고 하였다. 그로 인해 찬미가는 한동안 '성무 일도 노래'로 좁혀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넓은 의미로는 트로푸스, 딸림 노래 등 라틴어 가사의 모든 장절적(章節的) 교회 시들을 포괄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찬미가는 알려진 것만도 약 3,500곡에 달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찬미가가 성서 구절을 가사로 한 찬가와 달리 새로 작시된 가사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찬미가의 전례적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찬미가는 《찬미가집》(Hymnarium)이란 별도의 책에 수록되는 등 가치가 재평가되며 로마 교회의 시간 전례 음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비록 성서를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성서의 이해를 돕고 전례의 완성에 기여한다는 전례학적 시각에서였다.
교황 비오 2세(1458~1464)는 재속 사제들을 위한 《성무 일도서》(Breviarium)의 개혁을 감행하였다. 이 개혁은 교황 레오 10세(1513~1521)로 이어지며 언어(말씀)와 음악의 관계를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중세로부터 전승된 찬미가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내용적으로 수준 이하거나 왜곡된 많은 찬미가들을 폐기시켰다. 시간 전례의 품위를 높이려는 찬미가 개혁 운동은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 등을 거쳐 마침내 1971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노선에 따라 새로운 《성무 일도서》를 발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앞선 많은 개혁들을 수용하면서 보완하였다. 무엇보다 시간 전례에 자국어 찬미가의 사용을 허락하였다. 공의회는 이러한 민족 언어 찬미가가 라틴어 찬미가의 시적 언어와 장절 노래 형식에 상응하고, 나아가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자국어 교회 노래 사이를 중재할 수 있기를 원하였다. 현재 찬미가는 시편보다 교회의 전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적다. 그러나 찬미가는 시편, 찬가와 함께 시간 전례의 중심을 이루며 각 시간경과 축일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이렇게 찬미가는 특히 대중적 ·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하느님의 영광 찬미와 개인의 성화라는 본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한다. 모든 찬미가는 전통적인 규범에 따라 영광송(Doxologia)으로 끝맺는다.
〔연주의 실제〕 찬미가는 전례서, 시편 성가, 안티포나 모음집, 성무 일도서, 미사 경본, 찬미가집 등 여러 분야의 수사본에 흩어져 전해진다. 악보와 함께 기록된 가장 오래된 서방 교회의 라틴어 찬미가는 1000년 전후의 것이다. 이는 4세기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찬미가 이후 약 600년 동안 찬미가가 구전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현재까지 알려진 10~18세기의 찬미가는 약 550개다. 이들은 500여 개 수사본과 인쇄본, 1년 주기의 찬미가집(예를 들어 P. Abelard)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이 찬미가들의 약 2/3 정도가 암브로시오 찬미가처럼 얌부스 리듬이다. 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가사를 새 음악 대신 옛 선율에 적용하는 사례가 매우 잦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옛 선율이 특정한 기도 시간 혹은 특정한 내용 진술과 오랫동안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전례 시간과 가사 내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자주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옛 표준 선율들을 차용하곤 하였음을 알려 준다.
찬미가의 구전은 가사와 음악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물론 미비한 기보(記譜) 체계 때문이지만, 학문이 아직 세분화되지 않았던 중세에 시인이 바로 음악가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의 찬가학(Hymnologie)은 찬미가를 노래로 파악한다. 찬가학은 찬미가 가사의 신학적 · 전례적 의미만을 규명하던 차원을 넘어, 음악학과의 공동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찬미가의 중심은 교회 음악의 일반 규범처럼, 선율(음악)보다 가사(말씀)에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음악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미가를 예술적 차원으로 높여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 찬미가는 더이상 그레고리오 성가의 범주 안에서 가사와 분리된 음악만으로 접근될 수는 없다. 찬미가는 가사뿐 아니라 노래 자체, 기원과 역사, 작곡가 및 편곡자, 연주의 실제 등에 대한 음악적 고찰을 통해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찬미가는 10세기경부터 그레고리오 성가의 네우마(neuma) 기보 체계로 기록되어 전승되었다. 기보를 모르던 초기 밀라노 찬미가들은 얌부스 리듬, 4줄 구조, 8절 가사, 단성부, 신자 공동체를 위한 평이한 선율의 대중적 장절 노래였다. 이 특징들은 〈탄툼 에르고〉(Tantum ergo), 〈판제 링과〉(Pange lingua),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 등 《리베르 우수알리스》(Liber Usualis, Vatican, 1954)가 함축하고 있는 133곡의 초기 찬미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율은 각 음절이 한 음(punctum) 내지 두 음(pes, clivis)의 기본적인 네우마들로 구성되어 악보 없이도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다. 또한 간혹 종지를 준비하며 세 음(torculus)의 네우마가 등장한다. 선율은 가사의 절수에 따라 응답송적 교창으로 반복되었다. 중요한 것은 찬미가의 선율적 단순성이—가끔은 친숙한 선율을 대입하므로—긴 가사를 쉽게 암기하게 하며, 4세기부터 오늘까지 찬미가가 널리 애창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찬미가는 전례의 장엄성과 예술성을 대중적 기반 위에서 구현하려고 태어났음을 확인시켜 준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만든 한글 찬미가였다.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는 자신이 지은 것 혹은 기존의 천주가사들을 우리의 민요 선율에 맞추어 노래하도록 하였다. 이 방법은 무엇보다 당시에는 무척 생소한 천주가사의 교리 내용을 큰 거부감 없이 쉽고 흥미롭게 접근케 하여 신자들이 빠르게 암기하고 자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천주가사는, 서양의 찬미가와 동일한, 우리의 찬미 노래였다. 그러나 특히 서울 대목구의 서양식 한글 성가집 《죠션어셩가》(1924)의 출판으로, 민요적 특성 때문에 기보를 포기하였던 천주가사는 교회 밖으로 내몰렸다. 천주가사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한국화를 위한 최초의 탁월한, 그러나 아쉽게도 실패한 시도였다.
〔다성부 찬미가〕 찬미가는 9세기부터 진행된 그레고리오 성가의 다성화 과정을 동행하며 14세기에 폴리포니(polyphony) 찬미가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단성부의 기존 선율을 사용하여 새롭게 작곡된 합창 음악으로, 단성부 찬미가보다 화려하고 장엄하였다. 그리고 하나 혹은 여러 성부에 장식되며 나타난 이 모티프는 15세기에 고정 선율(cantus firmus)로 발전하였다. 뒤페(G. Dufay, 1400?~1474)는 단성 찬미가를 고정 선율로 사용하며 다성부 찬미가의 새 길을 열었다. 중세 교회의 시와 선율을 인본주의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1년 주기의 4~8성부 찬 미가는 이어지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영국 찬미가의 전형이 되었다. 다성 찬미가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한 절씩 나누어 다성부와 단성부가 교대로 연주되었다. 보존된 대부분의 다성 찬미가들은 시간 전례의 저녁 기도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40~1521)의 〈바다의 별〉(Ave maris stella)처럼, 처음부터 전승 가사를 전례 밖의 사용을 목적으로 창작한 작품들은 더이상 찬미가가 아니라, 모테트(motet)의 범주 안으로 수용되었다. 이렇게 찬미가는 모테트로, 그러나 곧 칸타타(cantata), 오라토리오(oratorio) 등의 교향적 큰 형식으로 변화를 지속하였다.
그러나 협의의, 전례 음악으로서의 다성부 찬미가는 불과 한 세기 조금 더 지난 16세기 말 팔레스트리나(G.P. da Palestrina, 1525~1594)에 의해서 창작 전통이 마무리되었다. 17세기에 쓰여진 평범한 4성부 합창 찬미가들이나, 악기를 동반한 1~2성부의 콘체르탄테(concertante) 양식의 새로운 찬미가들은 예술성이 크게 떨어지고, 18세기의 찬미가는 더이상 유명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뒤페가 시작하고 페스타(C. Festa, 1480~1545)와 빌라르트(A. Willaert, 1480/1490~1562) 등을 거치며 발전하여 팔레스트리나에 의해서 마무리된 다성부 찬미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르로 좁혀서 이해될 수 있다. 후에 작곡된 많은 찬미가들도 이들의 양식적 틀을 고수하였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의 찬미가는 가톨릭의 보편적 성격의 정교한 폴리포니와는 달리 자국 민요의 생명력을 흡입하여 민족적 성격이 강하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이 작업은 라틴어 찬미가를 자국어 찬미가로 옮긴 루터(M. Luther, 1483~1546)의 작업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먼저 가사를 번역하고, 번역된 자국어 가사에 민요풍의 새로운 음악을 입히는 과정으로 진행하였다. 그의 대표적 독일어 찬미가는 자국어, 민요성 그리고 장절적 형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에 그는 음악적 진지함을 권고하였다. 루터의 이러한 찬미가 정신은 현재도 프로테스탄트 코랄(chorale, 합창곡)의 원초적 에너지로, 새로운 가사 및 음악 창작의 규범으로 작용한다. (→ 그레고리오 성가 ; 시간 전례 ; 시편 성가 ; 찬가 ; 천주가사)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음악춘추사, 2000/ K. Schlager 외, 《MGG》 Sachteil 4, Bärenreiter, 1996, pp. 464~508/ K.G. Fellerer hrg., Geschichte der katholischen Kirchenmusik I, Bärenreiter, 1972, pp. 282~292/ W. Anderson 외, 《NGDMM》 8, Macmillan, 1980, pp. 836~851/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Sachteil, Schott's Söhne, 1967, pp. 383~386. 〔趙善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