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 아시아의 중부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타이 왕국(Muang Thai or Prathet Thai). 1939년까지 시암(Siam)으로 알려졌으며, 태국(泰國)으로도 불렸다.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동쪽으로 라오스, 남동쪽으로 캄보디아와 타이 만,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남서쪽으로 안다만 해와 접해 있다. 면적은 513,115㎢, 인구는 62,910,00명(2003)이며, 수도는 방콕(Bangkok)이다. 공용어는 타이어이며, 중국어와 영어 및 기타 부족어도 사용된다. 인구의 75%가 타이족이고, 중국인과 말레이인들도 상당수를 차지하며, 기타 소수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있다. 종교는 국교인 불교가 95%로 널리 퍼져 있으며, 이슬람 · 힌두교 ·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타이족은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해 왔다. 이후 몬(Mon) 왕국과 크메르(Khmer)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1238년 수코타이(Sukhothai) 왕국이 세워지면서 몬과 크메르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이 시기 동안 스리랑카로부터 소승 불교가 들어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1350년 수코타이 왕국을 무너뜨리고 설립된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은 무너져 가던 크메르 왕국을 페허로 만들었다. 16세기에 이르러 포르투갈 배가 입국하게 되면서 유럽인 무역상과 선교사가 최초로 아유타야에 들어왔으며, 이어 독일, 영국, 스페인과 프랑스가 아유타야 왕과 외교적 · 상업적 관계를 맺었다.
현대 타이의 역사는 차오 프라야 차크리, 즉 라마 1세(Rama I, 1782~1809)가 이끄는 차크리(Chakri) 왕조로부터 시작된다. 왕조 초기에 라마 1세는 수도를 방콕으로 옮겼다. 이어 라마 3세(Rama Ⅲ, 1824~1851)는 유럽 국가들과 새로운 무역 관계를 수립하였고, 북쪽으로는 라오스, 남동쪽으로는 캄보디아까지 영토를 넓혔다. 19세기에 들어 유럽 국가들과 이권을 매개로 정치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서 타이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라마 4세(Rama IV, 1851~1868) 즉 몽쿠트(Mongkut) 왕은 시암이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현대적 국가로 재정비하기 위하여 사회와 정치 분야에서 일련의 개혁을 시도하였고, 그의 아들이자 현대 타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라마 5세(Rama V, 1868~1910) 즉 출랄롱코른(Chulalongkorn) 왕은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서구식 내정 개혁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에는 말레이 반도의 케다(Kedah) · 페를리스(Perlis) · 테렝가누(Terengganu) · 켈란탄(Kelantan)을, 프랑스에는 메콩(Mekong) 강 왼쪽 연안의 라오스를 떼어 주어야 하였다. 1932년 입헌 혁명이 일어나 전제 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 군주제를 도입하였으나 그 뒤 정치 권력을 둘러싸고 문관파와 무관파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으며, 군부가 지배하거나 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정부가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가톨릭의 역사〕 16세기 시암에 입국한 포르투갈 배에 군종 신부가 동승하고 있었으며, 최초의 선교 활동은 1567년 수도 아유타야에 2명의 도미니코회 소속 회원 크루스(Jeromino da Cruz)와 칸투(Sebastiao da Canto)가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어 1582년 프란치스코회 1607년 예수회, 1662년 파리 외방전교회가 입국하여 활동하였고, 같은 해 시암 대목구가 설립되었다. 2년 후인 1664년 1월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팔뤼(F. Pallu, 1624~1684) 주교와 3명의 선교사 그리고 1명의 평신도가 시암에 도착하였다. 당시 시암은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하여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1664년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은 아유타야 시노드(Synod of Ayutthaya)를 조직하였고, 시노드는 '예수 십자가의 아마추어회'(Amateurs de la Croix de Jesus Christ)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도회의 설립과 현지인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의 설립 및 잡지 출판 등을 결정하였다. 이듬해 파리 외방전교회는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아유타야에 현지인 성직자를 위한 신학교와 일반 대학교를 개교하였고, 1669년에는 첫 번째 가톨릭 병원을 아유타야에 설립하였다. 이와 함께 선교사들은 아유타야뿐만 아니라 피차눌로크(Phitsanulok), 로프부리(Lop Buri), 방콕에서도 선교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 공동체가 성장하게 되었는데, 이 공동체는 현지인보다는 주로 박해를 피해 온 베트남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을 포함한 포르투갈 무역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 활동을 통하여 1674년 방콕에 성당이 설립되었을 때에는 타이의 가톨릭 신자가 6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688년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반(反)프랑스 성향의 프라 페트라자(Phra Phetraja) 왕은 많은 프랑스 선교사들을 추방하였고,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박해는 1709~1733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1767년 미얀마인들이 수도를 점령하여 아유타야 왕조가 붕괴된 후까지도 산발적인 박해가 이어졌다.
1782년 유럽 국가들과 좀 더 새로운 관계 속에서 동맹과 무역을 희망하는 라마 1세가 권력을 잡게 되면서 선교 상황은 점차 개선되었다. 라마 1세는 선교사들의 입국을 환영하였으며, 1802년 시암의 신자수는 2,500명으로 증가하였다. 1841년 시암 대목구는 동방 시암(Siam Orientale) 대목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팔구아(J.B. Pallegoix, 1805~1862) 주교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팔구아 주교는 다양한 언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암-라틴-프랑스-영어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후에 라마 4세가 되는 몽쿠트 왕자에게 라틴어, 천문학, 수학 등을 가르쳤다. 1860년대부터는 박해를 피해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인해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1872년 신자수는 20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8명의 현지인 신부를 포함하여 10,000명이었고, 1909년에는 59명의 신학생, 44명의 외국인 선교사, 21명의 현지인 신부, 17명의 수사와 123명의 수녀를 포함하여 23,600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성장에는 대목구장 베이(J.L. Vey, 1840~1909) 주교의 끊임없는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선교 활동은 시암의 중부와 동부 그리고 서부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베이 주교는 1881년 1월 2명의 신부를 북부 지역으로 파견하여, 라오스에서까지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북부 지역에서의 선교는 성공을 거두었고, 1899년 3월 4일 라오스 대목구가 설립되었다. 베이 주교에 이어 대목구장으로 활동한 페로스(R.M.J. Perros, 1870~1952) 주교는 주로 남서부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선교 활동을 수행하였다.
점차 성장하던 가톨릭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겪으면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 반(反)유럽 국가주의 운동으로 인해 프랑스의 요새와 같이 인식되었던 가톨릭 교회는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였다. 국가주의자들은 신자들에게 불교로 개종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였으며, 교회는 약탈되거나 폐허가 되었다. 1941년 12월 메콩 강가에서 배교하기를 거부한 7명의 가톨릭 신자들—풋타(A. Phutta,1881~1940) · 필라(A. Phila, 1909~1940) · 부트시(C. Butsi, 1924~1940) · 캄방(L. Khambang, 1917~1940) · 폰(M. Phon, 1926~1940) · 시퐁(P. Sipong, 1907~1940) · 캄파이(B. Khampai, 1925~1940)—이 사형을 당하였고(1989년 10월 22일 시복), 1944년 12월에는 킷밤렁(N.B. Kitbamrung) 신부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2000년 5월 5일 시복).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는 점차 성장하여 1965년 12월 교계 제도가 설립되었으며, 1983년 2월에는 방콕 대교구의 킷분츄(M.M. Kitbunchu)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타이의 가톨릭 교회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교육, 사회 및 공공 복지 분야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75년 긴급 구제와 난민을 위한 가톨릭 기구(Catholic Office for Emergency Relief and Refugees, COERR)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버마(현 미얀마) 등지에서 온 피난민들에게 사회적, 사목적, 영적 지도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1980년부터는 많은 수의 에이즈(AIDS) 감염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시설들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 현재 타이의 가톨릭 신자수는 279,000명이며, 대교구 2, 교구 8, 본당 354개에, 추기경 1, 대주교 6, 주교 22, 신부 1,369(교구 소속 885, 수도회 소속 484), 종신 부제 21, 수사 198, 수녀 1,749명이 있다.
※ 참고문헌 S. Chumsriphan, 《NCE》 13, 2003, pp. 849~851/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6/ Annuario Pontificio 2004, Città del Vaticano, 2004. 〔金善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