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나임 문학

— 文學

〔영〕 Tannaitic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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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쉬나(מׅשְׁנׇה)에서 언급된 또는 미쉬나 시대(20~200) 율법 학자들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
영어로 '틴나임'이라고 표기되는 히브리어 '타나임'(תַּנָּאׅים)은 서기 1세기 초 힐렐(Hillel, 기원전 1세기 후반~서기 25?) 시대부터 미쉬나가 최종적으로 편집된 200년까지 활동하였던 랍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의 단수형인 '타나'(תְּנׇא)는 구체적으로 미쉬나에 등장하는 스승들을 말한다. 타나는 원래 아람어의 '테니'(תֶני)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구전', '연구', '가르침' 등의 다양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탄나임'이라는 명칭은 탈무드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탈무드에서 미쉬나를 해석하고 해설한 주인공 랍비인 아모라임(Amoraim)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미쉬나 형성 시대인 약 200년 동안 모두 여섯 세대의 탄나임이 존재하는데, 이 중 처음 다섯 세대는 미쉬나에 등장하며, 마지막 세대는 미쉬나의 편집자인 유다 하 나시(Judah ha-Nasi, 135?~217?)와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탄나임의 여섯 세대 기간 중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서기 135년 바르 코크바(Bar Kokhba, ?~135)의 제2차 유대 독립 전쟁(132~135)이 실패로 끝난 후 베이타르(Betar)가 함락된 두 사건은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첫 번째, 서기 70년의 성전 파괴 사건은 유대교의 중심지를 예루살렘에서 유대 지역으로 분산시켰다. 성전이 파괴된 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서쪽 지중해변의 야브네(Jabneh, Jamnia)에서 학문 활동을 지속하였는데, 그는 성전의 파괴로 더이상 존재 이유가 없어진 예루살렘의 사제 계층과 귀족들이 해산됨에 따라 발생한 유대 민족의 총체적인 정신적 공황과 신학적 공백을 수습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우선 야브네에 정착하여 전체 유대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신학적 권위를 확립하였고, 로마 제국의 승인도 받는 안정된 전략을 취하였다. 나아가 제자들인 아키바 벤 요셉(Akiva ben Joseph, 50?~135)이 베네 베라크(Bene Berak)에, 엘리에제르 벤 히카르누스(Eliezer ben Hycarnus, 1세기 말~2세기 초)와 타르폰(Tarfon)이 리다(Lydda, 현 Lod)에, 이슈마엘 벤 엘리사(Ishmael ben Elisha)가 케파르 아지즈(Kefar Aziz)에 각각 율법 학당(Bet Midrash)을 설립하였다.
두 번째로 바르 코크바의 제2차 유대 독립 전쟁의 결과, 중심지는 유대 지역에서 갈릴래아로 또 한 번 이동하였다. 132년에 독립 전쟁이 일어난 직후 기존의 유대 지역 율법 학당들이 붕괴되었고, 이슈마엘의 제자들은 북쪽으로 이동하였으며, 시메온 벤 가말리엘(Simeon ben Gamaliel)이 우샤(Usha)에 율법 학당을 세우면서 탄나임의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슈마엘의 제자 중에서 도 메이르(A. ben Meir, 2세기경)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그 후계자인 유다 하 나시는 베트셰아림(Bet She'arim)과 세포리스(Sepphoris)에 각각 율법 학당을 세우고 미쉬나를 최종적으로 편집하였다. 여러 가지 혼란한 상황 속에서 흩어진 종교 문헌들을 한 군데로 모아 편집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탄나임의 대표적인 문헌들은 율법적인 것과 해설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미쉬나와 토세프타(תּוׄסֶפְתָּא)이고, 후자는 모세 오경에 관한 주석서들을 비롯한 '할라카 미드라쉬'(Halakhic Midrashim)이다. 또한 서기 150년경 요세 벤 할라프타(Yose ben Halafta)는 첫 번째 유대교 연대기인 《세데르 올람 라바》(Seder Olam Rabbah)를 편찬하였는데, 이 연대기는 아담부터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까지의 연대를 다루고 있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출애급 사건은 창조 이후 2,448년째 되던 해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아브라함 이후 500년째와 일치한다고 하였다.
탄나임 시대는 계속된 전쟁과 무거운 세금 부담으로 학자들의 연구가 소홀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토라 연구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성전 시대에 성전 세금을 활용하여 랍비들의 생활비를 감당한 것과는 달리, 이 시대에 탄나임은 신발 수리, 금속 가공, 서기관 등의 직업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탄나임은 율법 학당과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영적 · 윤리적 가치를 강조하였고, 나아가 로마 정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유대 민족을 변론하기 위하여 로마를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 랍비 문학 ; 미드라쉬 ; 미쉬나 ; 바르 코크바 ; 아키바 벤 요셉 ; 요하난 벤 자카이 ; 유다 하 나시 ; 유대교 ; 탈무드 ; 토세프타)
※ 참고문헌  D.W. Halivni, Midrash, Mishnah, and Gemara : The Jewish Predilectionfor Justified Law,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86/ D. Sperber, 《EJ》 15, pp. 798~803/ H.L. Strack, Introduction to the Talmud, 1931. 〔金 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