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 신을 보거나 신과 관계를 맺거나 합일되는 체험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용어.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종교에서 탈혼 현상이 나타난다. 어원적으로 '탈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엑스타시스'(ἔκστασις)는 "자신의 밖에 있다", "장소를 옮기다", "어떤 사람에게 감각을 잃게 하다 또는 감각을 빼앗다"라는 의미의 '엑시스테미'(ἐξίστημι)에서 유래되었다. '엑스타시스'는 깊은 감동에 의해 어떤 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신 착란, 혼수 상태, 실신, 인사불성, 무아경과는 다르며,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① 영성 신학에서의 탈혼
인간의 정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 정상적인 기능들이 정지되고 의식이 마비되어 비정상적이 되며, 신비적인 것에 흡수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신비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말로 "얼이 나갔다" 또는 "얼빠진 사람" 등의 표현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신비 신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영혼이 신비적인 것에 초자연적으로 온전히 이끌려 영혼의 기능과 육신의 감각 작용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현상이 '탈혼'이다.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의 신비 사상을 연구한 르노(E. Renault)는, "탈혼은 흔히 영적인 능력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과 빛이 짧게 침투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였다. 이를 다른 말로 "하느님과 맺은 신비적 일치"(unio mystica cum Deo)라고 한다.
〔성서에서의 언급〕 성서는 여러 가지 탈혼 현상들을 소개한다. 칠십인역 성서와 신약성서는 탈혼의 어원적인 의미들을 내포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소개하며, 어떤 경우에는 그 의미가 다소 약하게 표현되어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구약 : 주님의 영이 어떤 사람에게 내려 입신(入神)하는 일(민수 11,25; 24,2)과 사울이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 예언자들과 함께 어울리게 된 일(1사무 10,10-14), 에제키엘이 야훼의 영을 받아 그분의 사명을 받은 일(에제 3,12-15)과 예언자들이 에제키엘과 유사한 현상을 체험하면서 소명을 받은 것(이사 6,1-13; 예레 2,2-19; 에제 1,1-2.10; 아모 7,14) 등이다. 이런 현상들을 '예언적 탈혼'이라고도 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독주에 빠져 영을 받았다고 떠들었지만 예언자들의 조롱을 받았다(이사 28,7-13).
신약 : 사도 베드로가 요빠에서 기도 중에 환시를 본 것(사도 10,10; 11,5)이나, 사도 바오로가 체험한 것들(사도 22,17; 2고린 12,1-4)과 성령의 인도로 드린 특별한 기도의 형태는 탈혼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사도 10,44-46; 1고린 14,1-33).
〔구 분〕 탈혼은 그 강도에 따라 고요함과 기쁨과 즐거움을 동반하는 것과 강렬하거나 격렬한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는 단순한 탈혼이고, 후자는 고통스럽고 격렬하여 사로잡힘과 영의 이탈 또는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신비 신학에서 말하는 탈혼은 기도 중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영혼이 영적 약혼이라고 일컫는 순응 일치(順應一致, conforming union)와 영적 혼인인 변형 일치(變形一致, transforming union)와 같은 경지에 들어갈 때는 대개 탈혼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가 자신의 체험을 상세히 진술하였다.
성녀는 《영혼의 성》(Las Moradas o Castillo Interior, 1577)에서 위의 두 단계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여섯째 궁방(宮房)에서 일어나는 순응 일치의 단계에서 하느님은 영혼을 더욱더 지배하여 당신의 빛과 위로로 충만하게 해 주며, 수동적 정화(purificatio passiva)를 겪게 한다. 이로 인해 영혼은 자신의 수행으로는 더이상 진전하지 못하며, 하느님의 몫으로 남겨 놓은 큰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성녀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여기에는 임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영혼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세속적으로 말해 약혼의 단계와 같다. 이 단계에 이른 영혼은 오직 한 남성에게만 마음을 두고 있는 처녀가 뭇 남성들을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처럼,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 해도 한번 마음에 둔 사람과 혼인하기만을 고대하므로 그 증표로 하루 빨리 약혼하기를 원한다. 이런 영혼에게는 육체적인 병이나 타인에게서 오는 속임수, 온갖 험담, 박해, 심지어는 고해 신부로부터 받는 수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째 궁방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소원이므로, 오로지 그것에만 모든 희망을 두며 큰 인내를 갖고 온갖 어려움을 참아낸다. 이때 영혼은 기도 중에 황홀함을 맛보기도 하고, 말씀(locutio)이나 환시(環視, visio)와 같은 여러 가지 신비적인 현상을 동시에 체험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은 고대하던 소원이 이루어져 영적 혼인을 하게 된다. 임금님이 있는 그곳은 제2의 천국이며 두 개의 촛불이 하나로 결합되는 곳이다. 빗방울이 강물에 떨어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하느님 안에 몰입되는 영혼도 그와 같이 되어 버린다. 성녀는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영혼이 느끼는 흐뭇한 기쁨은 하느님 곁에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느님이 영혼을 당신께 합쳐 주시면 모든 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일치, 즉 필설로 표현 불가능한 변형 일치가 이루어지며, 영혼은 완전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는 영혼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단계로서, 장차 천국에서 누릴 지복직관(至福直觀, visio beatifica)의 상태를 제외하고는 더이상 높은 단계가 없는 그런 상태이다. 여기서 영혼은 삼위 일체인 하느님을 지적으로 직관하고 상호 통교를 나누며, 인성을 갖춘 그리스도와 직접 상봉하게 된다. 따라서 이 상태는 신앙으로 믿어 온 것을 깨달음으로써 직접 알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영혼에게는 지성의 보임, 그 어떤 진리의 표상을 통하여 드러나신 삼위 일체, 그 세 위 전부가 번쩍이는 구름처럼 그 정신을 불태우면서 나타나 보이십니다. ··· 세 위께서 다 함께 영혼과 사귀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며, 주께서 말씀하신 그 복음의 말씀을 깊이 깨치게 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영혼에게 당신과 아버지와 성령이 오시어 그와 함께 사시리라.“
그러므로 영혼은 그리스도 예수께 온전히 사로잡혔던 사도 바오로처럼 "나는 살아 있지만 이미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갈라 2,20)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성녀 데레사는 너무 감격하여 "나에게는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이고, 죽는 것이 이익입니다"(Mihi vivere est Christus, mori lucrum est ; 필립 1,21)라고 외친 사도 바오로의 말을 인용하였다. 따라서 이런 체험을 하는 영혼은 하느님이 만물의 주재자임을 신앙으로 알 뿐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하여 깨닫기 때문에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아, 내 생명의 생명이시여! 이 몸을 받치는 받침이시여!" 따라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언(요한 17,20-23)을 깨달아 삼위 일체인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이제 영혼은 뜨거운 사랑의 정신으로 불붙어 자신을 사랑의 제물로 바치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로서 사도직에 몰두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역할을 분담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관상과 활동은 양분될 수 없으므로, 주님과 일치하여 살아가는 영혼은 겸손과 봉사로 공동체를 위해 전적으로 봉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상(無賞)의 은혜(gratia gratis data)로서, 이때 영혼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뚜렷이 느낀다. 또한 신적인 지혜와 이해력을 받아 천상 영복을 동경하며, 영성 생활에 몰두하여 완덕을 향해 매진하게 된다.
〔사 례〕 신비적인 탈혼 현상은 거룩한 사람들의 생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회개한 후 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였다. 그는 탈혼을 체험하였는데, 단적인 예로 어머니 모니카(Monica, 332~387)와 함께 로마 근처 오스티아(Ostia)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탈혼 상태에 빠졌다가 한참 후 깨어나서는 어머니와 천상 삶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백록》 IX, 10).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어느 수사는 제단 앞을 지나갈 일이 있어 특별한 생각 없이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렸는데, 그 순간 탈혼 상태에 빠져 하느님이 그에게 보여 준 놀라운 환시를 보게 되었다. "수많은 성인들의 무리가 모두 아름답고 값진 옷을 두르고, 둘씩 나란히 자기 앞을 행렬지어 지나갔다. 성인들의 얼굴과 손은 태양처럼 빛났고, 천사들의 노래와 환호 속에 걸어가고 있었다. ··· 너도 육신의 사욕을 고행으로 누르고 용감히 악마와 싸우면, 우리와 똑같은 옷과 영광의 빛을 얻으리라'"(성 프란치스코회 한국 관구, 《성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 분도출판사, 1991, pp. 77~79). 이 외에도 그 수도회의 수사들 중 많은 이들이 기도 중에 탈혼 상태에 빠지곤 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하늘나라의 사정에 통달하여 이 세상살이를 지복직관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으로 여기며 살았다.
로율라의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2고린 12,3)라고 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아, 셋째 하늘까지 올라간 탈혼 체험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녀 젬마 갈가니(Gemma Galgani, 1878~1903)도 탈혼 현상을 여러 번 체험하였는데, 성녀의 탈혼 현상들은 탈혼의 양과 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성녀는 탈혼이 일어나기 얼마 전부터 예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강렬해지고, 그분과 사랑의 일치를 느꼈다고 한다. 어떤 때는 탈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허사였기에,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용한 곳을 찾곤 하였다. 탈혼에 들어가면 옆에서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바늘로 몸을 찌르거나 촛불을 몸에 대어도 조금도 느끼지 못하였고, 눈은 더욱 맑아지고 광채가 나며 세상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천상의 사람같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숭고한 위엄이 풍겨 나와 보는 이들이 존경과 두려움을 느꼈고, 또한 여러 가지 말씀과 환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 엑스터시 ; → 갈가니, 젬마 ; 환시)
※ 참고문헌 Emmanuel Renault, 고성 가르멜 여자 수도원 역, 《영성의 대가—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신비적 체험》, 분도출판사, 1990/ 예수의 성녀 데레사, 최민순 역, 《영혼의 성》, 성 바오로출판사, 1968/ 전달수, 《신비 체험과 현상》, 가톨릭출판사, 1997/ 성 프란치스코 한국 관구, 《성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 분도출판사, 1991/ 알렌 기엘무, 김정옥 역,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와 예수회》, 분도출판사, 1981/ 장면 편역, 《젬마 갈가니》, 경향잡지사, 1953. [田達秀]
② 종교학에서의 탈혼
〔의미와 특징〕 무교(Shamanism)는 샤먼(shamn)이라고 하는 주술 종교적인 직능자를 중심으로 한 종교라 할 수 있다. 맥클로흐(J.A. MacCulloch)는 샤먼이 초자연적 세계와의 관계에서 병을 치료하고 복점(卜占)을 행하는 아시아 대륙 원시 종교의 사제(司祭)를 뜻하며, 그는 어떤 정령(精靈)의 도움을 받아 그 정령에 빙의(憑依)되어 정령의 명령에 따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샤먼이 정령과 직접적인 교섭을 행하고 그 힘을 행사하는 동안은 이상적 정신 현상에 빠지는 일이 현저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샤먼은 망아(忘我), 탈아(脫我), 황홀(恍惚)과 같은 이상적인 심리 상태에서(이것을 trance라 한다) 초자연적 존재인 신령(神靈), 정령, 사령(死靈) 등과 직접적인 접촉 및 교섭을 하고, 그 과정에서 복점, 예언, 치병(治病), 제의(祭儀) 등을 한다.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는 무교를 "몰아(沒我)의 기술"(technique of ecstasy)이라고 간단히 규정하였는데, 몰아는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영혼이 육체와 떠나 천상계로 상승하거나 지하계로 하강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퍼스(R. Firth, 1901~ )는 어떤 사람의 밖에 존재하는 정령이 특정한 사람에게 들어가 작용할 때, 그 사람은 빙령(憑靈)의 영매(靈媒)가 되어 신과 인간의 중간 역할을 하는 면을 강조하였다. 요약해서 말하면, 무교는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섭을 추구하는 몰아, 빙의를 중시하고 샤먼을 영매로 초자연계와의 교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무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은 첫째, 다른 고등 종교와 달리 샤먼이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인 교류를 가진다는 것이다. '기절', '최면' 등의 심리학 용어와 유사하지만, 샤먼은 '트랜스' 상태에서 정령과 통교를 하고 그 내용을 세속 세계에 전하는 종교적 기능을 한다. 고등 종교도 신성한 세계와의 교통을 시도하지만 사제나 성직자 계급과 신자 계급이 분리되어 있고, 신자들은 성직자로부터 종교적인 내용을 전해 듣는 간접적인 위치에 있다. 샤먼도 '트랜스' 상태에서 얻은 종교적 경험 내용을 제3자에게 언어로 전한다는 의미에서 성직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고등 종교의 성직자는 탈혼이나 '트랜스'를 반드시 경험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인 교육에 의해 자격이 주어지는 특징이 있다. 샤먼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탈혼형(脫魂型)으로 샤먼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초자연적 존재에게 비상(飛翔)하여 적극적으로 교섭하고 제3자에게 언어로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빙의형(憑依型)으로 초자연적 존재가 적극적으로 샤먼에게 내방(來訪)하여 샤먼으로 하여금 제3자에게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구별은 형식적 구별에 불과한 것으로, 빙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탈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빙령과 탈혼은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탈혼은 트랜스 상태에서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에 '트랜스' 상태에서 깨어나더라도 그때의 경험 내용을 말할 수 있으나, 빙의의 경우에는 정령과 사령 등이 그의 몸 안에 들어와 활약하는 것이기에 깨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른다.
둘째, 무교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온갖 재난이나 사회 현상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들에 의해 생긴다는 관념을 갖는다. 샤먼의 사회적 역할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정령은 큰 의미를 가진다. 가령 탈혼형이 지배적인 지역에서는 살아 있을 때에도 자유스럽게 육체를 떠나는 영혼관을 가지며, 육체를 떠나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빙의형이 지배적인 지역에서 온갖 질병이나 재난은 모두 정령들이 이 세상에 관여하고 간섭하여 생기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에스키모의 샤먼은 바다의 정령을 위로하기 위해 바다 밑으로 여행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다 속의 정령들이 바다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이 세상의 모든 재난이 그 정령들의 작용으로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병이 생기거나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샤먼에게 의뢰하여 정령들과 교섭해 보도록 한다. 이러한 형태의 무교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세계관에서도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어 대개 천상과 지상, 지하라고 하는 3층 구조를 가진 세계를 생각한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원시적인 세계관도 여기에 속한다. 그리하여 자연에는 세 가지 영역이 있게 되는데, 상층(上層)의 영역에는 광명과 선신(善神)이 거주하고, 중간 영역에는 인간과 지령(地靈)이, 하층에는 암흑과 악령(惡靈)이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평범한 보통 인간들은 중간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령들과 약간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샤먼만은 상층이나 하층 영역의 정령들과도 교섭을 할 수 있다. 다만 빙의형이 지배적인 지역에서는 상층과 하층에 관한 이야기가 적고, 지상을 중심으로 초자연적 관계가 성립되는 이야기가 많다. 한국에는 대체로 빙의형의 무교가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무 과정에서 탈혼의 역할〕 엘리아데는 샤먼이 되는 성무(成巫)의 방법으로 세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이른바 세습무(世襲巫), 둘째 신의 부름을 받아 무당이 되는 강신무(降神巫), 셋째 개인의 의지나 씨족의 의지에 의해 무당이 되는 이른바 자력 성무(自力成巫) 등이다. 물론 자력 성무는 세습무나 강신무에 의한 무당보다 힘이나 능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였든지 간에 샤먼이 되기 위해서는 탈혼의 경험과 정령의 명칭이나 역할, 씨족의 신화와 계보 등을 익히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어떤 형태의 무당이 되든지 무당은 사회로부터 공인되어야 한다. 누구나 욕구가 강하면 영매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사회에서 공인된 영매로부터 선발될 필요가 있으며, 또 그 영매의 직능이 특정한 집단에만 한정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샤먼은 샤먼으로서의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지하계에 있는 수호령(守護靈)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꿈 속에서 남녀의 샤먼은 반대되는 성(性)의 정령의 방문을 받게 되는데, 대개는 여성의 샤먼에게 남성의 정령이 방문하게 된다. 그 정령은 지하계의 통치자이며, 동시에 상층 계급인 경우가 많다. 만약 이 결혼을 거절하면 병을 앓게 되어 결국 청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강신무, 세습무, 자력 성무 등은 누구나 그 사회가 지닌 전통적인 성무의 형태에 따라 가능하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부족은 무당이 되기 위해서 어떤 초자연적 힘을 받지 않으면 안 되고, 그 힘을 받기 위해서 꿈이나 환각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독한 약물을 마시거나 단식 등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무 과정에서 모든 샤먼이 죽음과 재생의 의례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즉 정령에 의해 샤먼의 머리가 찢어지며 신체가 몇 조각으로 갈라지는 신병(神病)을 앓게 되는데,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러한 병에서 결국은 정령의 도움으로 해방될 수 있다. 그 후 선배 샤먼으로부터 탈혼, 빙의와 같은 샤먼적인 기술, 정령의 명칭과 역할들, 전승되는 신화, 비밀의 언어 등을 배우게 되며,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샤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샤먼은 지역이나 장소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치병과 복점, 예언 등을 통하여 사회적인 기능을 한다. 샤먼이 병자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저승에까지 가기도 하며, 스스로 수호령으로 빙의되어 병자 안에 있는 악령과 교섭을 하기도 한다. 병자 안에 있는 악령으로 스스로 빙의되어 자신의 요구를 인간들에게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들이 바친 공물(供物)을 하늘에 있는 신에게 바치러 하늘로 가기도 하며, 때로는 죽은 자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지옥에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 밖에도 병자의 병을 점치기도 하고, 불행이나 재난의 원인을 알아내기도 한다. 샤먼은 신령, 사령, 정령, 영귀(靈鬼) 등의 의지를 직접 전달하는 신탁자(oracle)의 역할도 한다. 이런 샤먼의 역할은 결국 탈혼을 전제로 한다.
샤먼이 하는 의례에는 보통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공적인 의례이고 둘째는 사적인 의례이다. 공적인 의례의 대표적인 것은 퉁구스(Tungus) 계통의 여러 부족들이 많이 하였던 가을의 추제(秋祭)나 겨울의 동제(冬祭) 같은 것인데, 샤먼은 이 의례에서 제물을 하늘에 있는 신에게 바치는 일을 한다. 이런 면에서 샤먼은 사제적인 기능을 한다. 사적인 의례는 샤먼이 병을 고치든가 점을 치든가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무의(巫儀)는 일정한 절차가 있는데, 대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단계를 따른다. 첫째는 탈혼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 북을 치거나 종을 울리면서 경문(經文)과 주문(呪文)을 외우고, 수호령을 불러내는 단계이다. 둘째는 일단 탈혼에 들어가면 수호령이 내리고 샤먼의 영혼이 그의 도움을 받아 타계(他界)로 가거나〔脫魂型〕, 샤먼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신체를 비우고 대신 수호령이 들어와 작용하는〔憑依型〕 단계이다. 셋째는 샤먼의 영혼이 타계로 비상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몸을 떠는 것으로 상징하기도 하고, 불을 끄고 침묵하기도 한다. 한편 수호령이 빙의되었을 때에는 그 신력(神力)을 나타내기 위해서 칼날 위를 걷기도 한다. 넷째로 샤먼은 타계에서 병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병자의 몸으로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상한 물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빙의형의 샤먼은 병자에게 빙의되어 있는 악령을 점치고 그것을 몰아내는 동작을 한다. 다섯째로 샤먼의 역할이 끝나면 탈혼의 상태는 끝나고 정상적인 심리 상태로 되돌아온다. 이처럼 무당의 의례는 상징적인 것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탈혼 상태에 들어가지 못하였더라도 마치 그러한 것처럼 트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당의 의례에서 샤먼이 사용하는 의복, 북, 가면, 주구(呪具)에는 여러 가지 문양과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탈혼의 사회적 성격〕 무교를 볼 때, 비록 단순한 사회라도 사회의 초자연관에 대응하는 일정한 행동 양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모두 샤먼이 탈혼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사회의 구성이 단순하여 주술 · 종교적인 직능자의 역할이 미분화된 상태에서는 샤먼의 역할이 지극히 컸다. 샤먼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예는 고대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샤먼이나 주술사의 기능이 분화되는 사회에서는, 샤먼이 하층민 계층에서 나오는 경향이 많았다. 그와 함께 샤먼의 의례 가운데 공적인 면을 잃어버리는 경향도 생겨났다. 즉 탈혼의 가치도 점차 떨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 엑스터시 ; → 몰아 ; 무교 ; 무당 ; 엘리아데, 머시)
※ 참고문헌 M. Eliade, Shamanism: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 New York, Bollingen Foundation, 1964/ ──, Birth and Rebirth, New York, Harper & Brothers, 1958/ I.M. Lewis, Ecstatic Religion: Anthropological Study of Spirit Possession and Shamanism, Baltimore, Penguin Books, 1971. 〔李恩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