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서수법》

泰西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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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중국 선교사 우르시스(S. de Ursis, 熊三拔, 1575~1620)가 편찬한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우르시스가 편찬한 것을 오송(吳淞)과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필기하였고, 무림(武林)과 이지조(李之藻, 1565~1630)가 정정하여 1612년에 완성하였다. 현재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자부(子部) 농가류(農家類)에 수록되어 있으며, 총 6권이다. 이 책은 명말(明末)에 서광계의 《농정전서》(農政全書, 1639)에 수록되었고, 이후 청대(淸代)의 대표적인 종합 농서인 《수시통고》(授時通考, 1742)에도 채록되었으며, 우르시스의 다른 저작인 《간평의설》(簡平儀說) · 《표도설》(表度說)과 함께 《천학초함》(天學初函)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선 사회에 소개될 수 있었다.
우르시스는 이탈리아인으로 1606년 중국에 건너왔다. 북경에서 마테오 리치(M. Ricci, 利瑪竇, 1552~1610)로부터 중국어를 배웠으며, 1610년 리치가 선종할 때 그 유명(遺命)에 따라 북경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초하루의 일식 예측이 어긋나자, 예부는 역학(曆學)에 정통한 학자를 선발하여 감관(監官)과 함께 관측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르시스는 판토하(D. de Pantoja, 龐迪我, 1571~1618)와 함께 역법을 개수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당시 서광계와 이지조가 그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1613년(萬曆 41) 이지조는 서양 역서(曆書)의 번역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판토하와 우르시스는 서광계 · 이지조와 함께 여러 종류의 서양 역서를 번역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법 개수 과정에서 우르시스는 감관들의 질시를 받게 되었고, 이에 그 일을 그만두고 실업(實業)에 종사하여 번역한 책이 바로 《태서수법》이다. 이 책은 황제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의 찬탄을 받았으나, 1616년 이른바 '남경교난'(南京敎難)이 일어나자 우르시스는 마카오로 피신하였고, 그곳에서 1620년에 사망하였다.
《태서수법》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법', 즉 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이다. 1권은 《용미차기》(龍尾車記)로서 강하(江河)의 물을 끌어오는 데 사용하는 수차인 용미차(龍尾車)에 대해서 논하고, 2권은 《옥형차기(전통차부)》(玉衡車記 또는 專筩車附)와 《항승차기(쌍승차부)》(恒升車記 또는 雙升車附)로 우물과 개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사용하는 두 종류의 수차인 옥형차(玉衡車)와 항승차(恒升車)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권은 《수고기》(水庫記)로서 수고(水庫)를 이용하여 비와 눈을 저장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고, 4권은 《수법부여》(水法附餘)로 높은 곳에 우물을 만들 때 샘물의 원천을 찾는 법, 우물을 뚫는 방법, 수질의 고하를 판단하는 방법, 그리고 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5권은 《수법혹문》(水法或問)으로 물의 성질〔水性〕에 대해 논란한 내용을 문답체로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서양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사행설(四行說)의 원리에 입각하여 수리(水理)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마지막 6권은 이상에서 살펴본 여러 기구의 도식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태서수법》에서 설명하고 있는 서양식 수차는 크게 용미차 · 옥형차 · 항승차 등 세 종류이다. 용미차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기원전 290/280?~212/211)의 나선형 스크류를 이용하여 강물을 퍼 올리는 기구로, 축(軸) · 장(牆) · 위(圍) · 추(樞) · 륜(輪) · 가(架) 등 여섯 개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옥형차는 실린더와 피스톤을 이용하여 우물과 개천의 물을 퍼 올리는 기구 즉 실린더에 들어온 물을 피스톤으로 압축해서 뿜어내는 압축식 펌프(force pump)이며, 쌍통(雙笛) · 쌍제(雙提) · 호(壺) · 중통(中筩) · 반(盤) · 형축(衡軸) · 가(架) 등 일곱 개 주요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승차는 옥형차와 마찬가지로 우물물을 퍼 올리는 기구로 피스톤식 펌프인데, 그 원리는 옥형차와 약간 다르다. 옥형차가 압축식 펌프였다면, 항승차는 흡입식 펌프(suction pump)이다. 즉 실린더 안으로 들어온 물을 피스톤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스톤에 설치된 구멍을 통해서 물이 피스톤을 통과한 후 피스톤의 상승과 함께 당겨 올려지는 것이다. 항승차의 주요 부품은 통(筩) · 제주(提柱) · 형축(衡軸, 또는 衡) · 가(架) 등 네 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수고(水庫)는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 구(具) · 제(齊) · 착(鑿) · 축(築) · 도(塗) · 개(蓋) · 주(注) · 읍(挹) · 수(修) 등 아홉 가지 절차에 따라 만들어 사용하고 보수토록 하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서양의 학문에서 측량(測量) · 보산(步算)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기묘한 기구(奇器)의 제작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당시 소개된 서양의 여러 기구들을, 헛되이 교묘한 기술을 자랑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평가하였던 것에 비해 '수법'은 민간의 일용에 절실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태서수법》은 당시 수리(水利)를 강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서적으로 평가되었다.
〔조선에 끼친 영향〕 일찍이 이익(李瀷, 1681~1763)은 천하의 이익 가운데 수리보다 큰 것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물을 끌어오는 공은 모두 수차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용미차와 같은 제도는 서양에서 출현한 것으로 그 이로움이 매우 넓고 큰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것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였다(《星湖僿說》 卷2, 天地門 2, 水利).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수리를 일으키는 것은 수차의 제도만한 것이 없으며, 수차의 제도는 《태서수법》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牧民心書》 卷7, 戶典六條, 勸農), 이는 이익 이래로 학문적 전통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후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본사》(本史),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해동농서》(海東農書),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과농소초》(課農小抄) 등에 《태서수법》의 여러 수차들이 소개되었고, 이에 대해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는 논란이 벌어졌다. 서양식 수차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자(論者)들도 등장하였던 것이다. 서양식 수차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이후 이의 개량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였는데, 하백원(河百源, 1781~1845)이나 최한기(崔漢綺, 1803~1879)의 수차에 대한 논의에서 그러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규장각 중국본 도서에 5권 1책으로 된 《태서수법》(奎中 5116)이 소장되어 있다. (→ 남인과 천주교 ; 서학 사상 ; 우르시스, 사바티노 데 ; 한역 서학서)
※ 참고문헌  《泰西水法》 卷1~6(《文淵閣 四庫全書》 731 책, 臺灣商務印書館, 1983)/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中華書局, 1949/ 天野元之助, 《中國古農書考》, 東京, 龍溪書舍, 1975/ 문중양, 《조선 후기 水利學과 水利 담론》, 集文堂, 2000. 〔具萬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