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부 기니 만 연안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토고 공화국(République Togolaise). 북쪽은 부르키나파소, 동쪽은 베냉, 서쪽은 가나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56,785㎢, 인구는 5,429,000명(2003)이며, 수도는 로메(Lomé)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지만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에웨어를 사용한다. 국교는 없으나 인구의 50%가 전통적 토속 신앙,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24%가 가톨릭, 중 ·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15%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토고 지역 최초의 주민은 북부 지방에 거주하며 구르어를 사용하는 볼타계 부족들과 남서부 지방에 거주하는 크와족(Kwa)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웨족(Ewe, 약 120개의 씨족과 가문으로 갈라져 있음)은 14~16세기에 나이지리아로부터 이주해 왔으며, 미나족(Mina)은 17세기 이후 지금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현재의 토고 지역은 1884년까지 아프리카의 호전적인 흑인 국가들인 아산티(Ashanti) 왕국과 다호메(Dahomey) 왕국(현 베냉) 사이의 완충 지대였으며, 이 지역의 여러 인종 집단들은 대체로 서로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토고를 비롯한 서부 아프리카 지역, 즉 토골란드(Togolad)는 포르투갈 · 스페인 · 네덜란드 · 영국 · 프랑스 ·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쟁탈 지역으로 변하였다. 이 지역에 독일의 선교사들이 들어온 것은 1847년 이후였으며, 1884년에는 해안 지방의 많은 추장들이 독일의 보호령 편입을 받아들였다. 독일은 1897년과 1899년에 보호령의 경계를 확장한 후 능률적인 행정을 펼쳤으나, 현지인들을 강제 노동으로 동원하는 데에는 압제적인 면모를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한 1914년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토골란드를 점령하였으며, 국제 연맹은 1922년 영국과 프랑스에 이 지역의 통치를 위임하였다. 토고의 서쪽 지역은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황금 해안(Gold Coast) 식민지(현 가나)와 경제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동쪽 지역은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에는 다호메 및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경제적 유대 관계를 맺었다. 1946년 토골란드(Togoland)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국제 연합(UN)의 신탁 통치령이 되었다. 그리고 1956년 프랑스령 토골란드는 프랑스 연합(French Union) 내의 자치 공화국이 되었고, 같은 해 영국의 신탁 통치령은 황금 해안에 편입되어 1957년 황금 해안이 가나로 독립하자 그 일부가 되었다. 토고는 1960년 4월에 독립하였으나, 그 후에도 프랑스와 경제 관계를 유지하였다. 1963년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에 가입하였으며, 1965년에는 아프리카-말라가시 공동 기구(OCAM, 현 아프리카-모리셔스 공동 기구)에 가입하였다. 토고와 가나의 관계는 은크루마(K. Nkruma, 1909~1972)가 가나 대통령으로 재직할 동안에는 팽팽하였다가, 은크루마의 실각 이후 호전적으로 변하였다. 1960년대의 암살과 쿠데타의 결과 에야데마(G. Eyadéma) 장군이 1967년 정권을 장악하였다. 1979년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었고, 에야데마는 토고의 제3공화국 출범을 선포하였다.
현재 토고에는 약 30개의 인종 집단이 있으며, 토착 집단들은 북부와 남서부에 거주한다. 북부에는 볼타어(구르어) 사용 부족인 구르마족(Gurma) · 콩콤바족(Konkomba) · 바사리족(Basari) · 모바족(Moba) · 모시족(Mossi) 등이 거주하며, 남서부에는 토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토착 부족인 크와족이 거주하고 있다. 중부에는 악포소족(Akposso) · 아델레족(Adele) · 아홀로족(Ahlo)이 거주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풀라니족(Fulani)은 북부에, 하우사족(Hausa)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가톨릭의 역사〕 토고에 처음 가톨릭이 전해진 것은 1514년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교사들의 활동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리용의 아프리카 선교회 신부 2명이 1863년 다호메 지역으로부터 토고로 들어왔으나, 이들의 활동은 1년도 못 되어 중단되고 말았다. 1892년 4월 토고는 다호메 지목구로부터 분리, 토고 지목구로 설정되어 말씀의 선교 수도회(신언회)가 사목을 담당하였다. 이 수도회는 대부분 독일 출신의 신부와 수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선교사들 역시 모두 추방되었다. 이후 다시 아프리카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펼쳤으며, 1922년 첫 번째 현지인 사제가 배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프랑스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프란치스코회나 베네딕도회 등 여러 선교 단체들이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 토고 대목구는 로메 대목구로 이름이 바뀌었으 며, 1955년 9월 토고에 정식으로 교계 제도가 설정되자 로메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960년 토고가 정식으로 독립한 후 가톨릭 교회는 본격적으로 선교 활동을 펴 나갈 수 있었으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454개의 초등학교와 38개 중등학교의 운영을 도왔다. 1990년대 초반, 토고의 군사 정부는 크포즈로(P.F.K. Kpodzro) 로메 대교구장을 토고 양원제 의회의 수장으로 임명하였다. 2002년 1월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에야데마 대통령은 가톨릭 · 이슬람 · 프로테스탄트 등의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군사 정부 권력 이양을 축하하기 위한 전(全)종교인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지금도 토고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부족적 믿음을 유지하면서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2003년 현재 토고의 가톨릭 신자수는 1,301,000명이며, 대교구 1, 교구 6개에, 대주교 1, 주교 6, 사제 384(교구 소속 259, 수도회 소속 125), 수사 187, 수녀 692명이 있다.
※ 참고문헌 H.W. Debrunner, A Church between Colonial Powers: A Study of the Church in Togo, 1965/ S. Decalo, Historical Dictionary of Togo, 2nd ed., 1987/ R.M. Wiltgen, 《NCE》 14, 2003, p. 98/ Europa Publications eds., Africa South of the Sahara 2002—Togo, 2002/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24. 〔徐相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