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니에, 프랑수아 조제프 (1876~1910)

Tournier, François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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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한국명은 두계창(杜啓昌).
1876년 9월 27일 프랑스 브장송(Besançon)의 파송퐁텐(Passonfontaine)에서 출생하였고, 신심이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여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1900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고, 1902년 6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조선 선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27일 마르세유를 떠나 9월에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12월부터 경기도 안성(현 구포동) 본당 초대 주임인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신부에게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903년 5월에 내평 본당(고산 본당의 전신, 현 침묵의 교회) 5대 주임인 그리자르(A. Grisard, 池安德) 신부가 결핵을 앓아 상해로 요양을 가자, 그를 대신하여 임시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같은 해 8월에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가 다시 홍콩으로 옮겨가 1904년 4월까지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마친 뒤 5월에 내평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조선의 의병과 일본군이 대치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영동 지역의 공소들을 순방하는 등 사목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08년 말에는 인제 땅의 고사골(현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고사리)과 삼바골〔三田峙〕에서 47명의 예비자를 얻기도 하였다. 1909년 5월에 원산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그해 가을 순방 때 얻은 폐렴으로 1910년 1월 5일 선종하여 원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내평 본당 ; 원산 본당)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