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아시아 중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Republic of Turkmenistan). 서쪽으로 카스피 해, 남쪽으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 카자흐스탄, 그리고 북동쪽으로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488,100km²이나, 영토의 5분의 4가 검은 사막이라는 카라쿰(Kara-Kum)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극히 적다. 인구는 2003년 현재 4,840,000명으로, 이 중 투르크멘인 77%, 우즈베크인 9.2%, 러시아인 6.7%, 카자흐인 2%이며, 나머지 여러 소수 민족이 5.1%에 이른다. 수도는 아슈하바트(Ashkhabad)이며, 공용어는 투르크어에 속한 투르크멘어이다. 국교는 없지만 지배적인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신자수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인들에게 있어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문화적 유산이며, 투르크멘 민족을 결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사원에 나가 예배를 보는 사람들의 수도 비교적 적고 이슬람을 정치화하려는 의지도 거의 없지만, 생활 관습은 이슬람인이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다른 중앙 아시아 국가들처럼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잦은 외세의 침입을 받아 왔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에 의해 정복당한 후 이 지역에는 페르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5세기 이후 투르크족이 중앙 아시아의 서부로 이주해 오면서 서서히 투르크계 민족의 정착지가 되었다. 8세기 말 이후 투르크계인 오구즈족(Oghuz)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그 세력은 볼가(Volga) 강과 우랄 산맥에까지 이를 정도였다. 오구즈족에 속한 부족의 지도자인 셀주크(Seljuk)가 오구즈족의 약화를 틈타 중앙 아시아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셀주크 왕조(1037~1157)를 세우고 이슬람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 즈음부터 '투르크멘'이라는 명칭이 문헌에 등장하여, 오구즈족과 구별되는 한 부족으로 표시되었다. 1055년 셀주크 왕조의 토그릴 베그(Toghril Beg, 1037~1063)가 바그다드에 입성하면서 술탄(sultan)의 칭호를 얻고 이슬람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12세기에 들어서자 투르크멘과 다른 부족들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되었고, 이때 투르크멘인들은 셀주크 왕조와 분리되어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으로 이주 · 정착하였다.
거대한 사막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이 지역에서 투르크멘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로 가는 길에 세웠던 도시 메르프(Merv)와 카스피 해 주변, 그리고 아무다리야(Amudarya) 강 주변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투르크멘인들은 13세기 몽골에 정복당하였고, 16세기 초 키바 카나테(Khiva Khanate)와 부하라 카나테(Bukhara Khanate)의 영토로 분할 · 병합되어 우즈베크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전쟁을 위한 군대로 이용되었다. 18세기 초에는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18세기 후반에는 다시 부하라 카나테가 점령하였으나, 러시아가 1869년 크라스노보트스크(Krasnovodsk)에 도시를 건설, 중앙 아시아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자 투르크멘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884년 러시아에 복속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 4월 러시아 군대에 의해 투르크멘 자치 공화국(Turkmen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이 선포되었다가 그해 7월 영국군의 도움으로 독립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1920년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의해 전복되었고, 1924년 투르크멘 공화국(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이 수립되어 소비에트 연방의 통치하에 있다가 1991년 10월 독립하였다. 현재는 독립 국가 연합(CIS)의 일원이며, 1995년 국제 연합(UN)으로부터 영세 중립국으로 승인되었다.
〔가톨릭의 역사〕 7세기 페르시아가 아랍을 통일한 무슬림에 의해 정복되면서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의 이슬람 유입이 시작되기 이전에,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는 이미 샤머니즘과 네스토리우스교 · 마니교 · 불교 및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가톨릭은 지속적으로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 중심 세력은 네스토리우스파였다 428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1~451)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부정하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이단으로 지목되어 추방되자 그는 페르시아로 망명하여 교회를 세우고 신도들을 모았으며, 이후 페르시아가 아랍에 복속되면서 페르시아인들이 이주함에 따라 네스토리우스교는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그 교세를 확장하였다. 네스토리우스교 선교사들은 이 지역의 선교를 위하여 문자를 도입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작업을 펼쳤으며, 이러한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몽골 민족은 지배층이 그리스도교를 적극 수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몽골의 멸망과 더불어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가톨릭의 흔적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이 다소 존재하였으나, 소련의 종교 불인정 정책으로 그 세력은 미미하거나 지하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1991년 투르크메니스탄이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독립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가톨릭 교세 확장을 위한 노력은 더이상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가톨릭 선교는 독립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교황청에서는 1991년 4월 카자흐스탄에 직할 서리구(apostolic administration)를 설정하고, 인근의 투르크메니스탄 · 키르기스스탄 · 타지키스탄 · 우즈베키스탄까지 담당하게 하였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1996년 7월 바티칸과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교황청에서는 이듬해 선교 자치구(missioni sui iuris)를 설정하였다. 2003년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가톨릭 신자수는 1,000명이며, 선교회 1, 성당 1개에, 신부 3명(수도회 소속)이 있다. (→ 네스토리우스주의 ; 카자흐스탄 ; 터키)
※ 참고문헌 아우구스트 프란쯔, 최석우 역, 《교회사》, 분도출판사, 1982/ Vasilii Vladimirovich Barhold, Turkestan down to the Mongol invasion, London, Luzac, 1968/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25. [李侑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