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아스

〔그〕 Τρωάς · 〔라 · 영〕 Tro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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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인 트로이의 영토. 아나톨리아 북서쪽 미시아(Mysia) 해안에 위치한 고대 항구 도시.
트로이에서 약 16km 떨어졌으며, 테네도스(Tenedos) 섬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트로아스는 동쪽으로 터키 북서부의 좁은 해협인 다르다넬스(Dardanelles, Hellespont)를 지나 남쪽의 스미르나, 에페소 그리고 밀레도스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네아폴리스와 아테네로 가는 뱃길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4/63~서기 23?)에 의하면, 트로아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원래 지명은 시기아(Sigia)이다. 이 도시는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 휘하에 있던 마케도니아 장군인 안티고노스 1세(Antigonos I Monophthalmos, 기원전 382~301)가 세웠다. 그는 이 도시를 건축하고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기원전 301년 안티고노스 1세가 사망하자, 트라케(Thrake)의 왕이었던 리시마코스(Lysimachos, 기원전 355?~281)가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명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바꾸었다. 그 후 이곳에 신전과 성벽을 건축하였고, 사람들은 다른 알렉산드리아와 혼동하지 않기 위하여 이곳을 '트로아스의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신약성서에서는 간단하게 트로아스라고 불렀다.
루키우스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 군대는 황제 안티오코스 3세(기원전 223~187)를 기원전 190년 마그네시아 아드시필룸(Magnesia ad Sipylum)에서 물리친 후, 트로아스 주변 지역을 페르가뭄(Pergamum)의 왕에게 하사하였다. 아우구스투스(기원전 27~서기 14)는 트로아스를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이후 트로아스는 '콜로니아 아우구스타 트로아스'(Colonia Augusta Troas)라 불렸다. 그러나 트로아스는 하드리아누스(117~138) 시대에는 황제의 호의를 받았다. 왜냐하면 이들이 아테네에 황제의 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30년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된 후 쇠퇴하였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시대에는 항구가 침적토로 막혀 버렸다. 지금까지 트로아스를 정식으로 발굴한 경우는 없지만, 로마 시대의 유물 가운데 일부가 발견되었다.
트로아스는 바오로의 전도 여행과 관련하여 신약성서에 등장한다. 사도 바오로는 제2차 전도 여행 중 소아시아로 가려 하였으나 성령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시아(Mysia)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사도 16,7). 그리고 제3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트로아스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는데, 마케도니아인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하여 걱정이 되어 트로아스에 잠시 머물다가 마케도니아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바오로와 그 일행은 잠시 트로아스에 머물렀다(사도 20,6). 트로아스에 머물면서 사도 바오로가 강론할 때 창문에 걸터앉아 강론을 듣던 청년 유디코가 졸다 떨어져 죽었는데, 바오로가 그의 생명을 살려주었다(사도 20,7-12). 또한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편지를 하면서 트로아스에 있는 가르포의 집에 남겨 둔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를 로마의 감옥으로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였다(2디모 4,13). (→ 바오로)
※ 참고문헌  E.M. Yamauchi, 《ABD》 6, pp. 666~667/ C.J. Hemer, Alexandria Troas, Tyndal Bulletin 26, pp. 79~112. 〔金永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