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영〕 Pan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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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메리카 동쪽 끝의 남 · 북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파나마 지협에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파나마 공화국(República de Panamá). 북쪽은 카리브 해, 남쪽은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은 콜롬비아, 서쪽은 코스타리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78,200k㎡이고, 인구는 2,860,000명(2003)이며, 수도는 파나마시티(Panama City)이다. 공용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도시에서는 영어도 사용된다. 국민의 70%는 메스티소(mestizo)이며, 14%는 흑인, 9%는 백인이다. 인구의 84%가 가톨릭 신자이며, 다음으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많다.
칩차족(Chibchas), 마야족(Mayas), 초코에족(Chocoes)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501년 로드리고 데 바스티다스 (Rodrigo de Bastidas)에 의해 발견된 이후, 1510년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Vasco Núñez de Balboa, 1475~1517)와 800여 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을 시도하였다. 1519년 파나마시티 지역에 식민지가 건설되고, 콜론(Colón) 북동쪽 폴트베로에 항만이 만들어지면서 파나마는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1719년부터는 누에바 그라나다(Nueva Granada) 부왕청 관할지가 되었으며, 1821년 11월 자치주의자들이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곧 진압당한 뒤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에 통합되었다. 여러 차례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나 실패하면서 1857~1903년까지 50번 이상의 반란이 발생하자 미국은 자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파나마를 침공하였다.
19세기 중엽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광이 개발되자, 파나마 지협은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교통로로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 1878년 콜롬비아 정부는 프랑스 회사와 파나마 운하의 건설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1889년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뒤를 이은 미국은 운하 건설 조약 체결에 실패하자 분리 독립 운동을 배후 조정하였고, 파나마는 1903년 11월 독립하였다. 1903년 체결한 헤이-뷔노바리야 운하 조약을 통해 미국은 운하 지대의 영구 소유권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1914년 미국에 의해 파나마 운하가 완공되었다.
이후 파나마 정국은 1930~1960년 사이에 정권이 자주 바뀌면서 매우 불안하였으며, 한편에서는 일방적인 운하 조약과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이 퍼져 나갔다. 결국 1968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오마르 토리호스(Omar Torrijos)는 1977년 운하 반환에 관한 신(新)파나마 운하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1985년부터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군총사령관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Manuel Antonio Noriega)는 1989년 12월 미국의 파나마 침공으로 실권하였고, 기예르모 엔다라(Guillermo Endara)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9년 선거에서 파나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미레야 모스코소(Mireya Moscoso)가 당선되었으며, 12월 31일에는 85년 동안 미국이 관리해 온 파나마 운하 운행권이 파나마로 이양되었다.
〔가톨릭의 역사〕 1513년 스페인 왕의 요청으로 남· 북 중앙 아메리카 최초의 교구인 산타 마리아 데 라 안티구아 델 다리엔(Santa Maria de La Antigua del Darién) 교구가 설립되었다. 신설 교구는 프란치스코회에서 관할하였으며, 1520년에는 도미니코회가 이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예수회는 16세기 중반 파나마 지협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주로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 식민지 시기 가장 저명한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던 도미니코회의 헤네랄 아드리아노 우펠데 데 산토 토마스(General Adriano Ufelde de Santo Tomás)는 많은 작품을 남겨 역사가들에게 이 지역의 풍성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세기 독립 혁명기에 교회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1903년 독립한 뒤 정부는 헌법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우위를 인정하였으며 재정적으로 교회의 여러 사업을 지원하였다. 1972년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면서 성직자의 공직 활동을 금지하였으나, 여전히 가톨릭 교회는 정부의 지원하에서 자선, 교육 활동 등 다양한 선교 사업을 수행하였다. 20세기 중반부터는 성직자가 부족하여 스페인에서 많은 성직자들이 파나마로 오게 되었으며, 예수회, 아우구스티노회, 바오로회, 프란치스코회, 살레시오회 등 많은 수도회들이 활동하였다. 점차 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유입되자 가톨릭 교회는 적극적으로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였다. 한편 정부와 교회의 관계는 주교들이 인권 탄압과 빈곤층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를 비난하면서 갈등 관계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1999년 파나마 운하가 이양된 이후에는 정부와 더불어 콜롬비아-파나마 국경 지역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3년 현재 파나마의 신자수는 2,414,000명이며 대교구 1, 교구 5, 본당 180개에, 대주교 2, 주교 8, 신부 411(교구 소속 196, 수도회 소속 215), 종신 부제 69, 수사 63, 수녀 439명이 있다. (→ 라틴 아메리카 ; 콜롬비아)
※ 참고문헌  강석영, 《라틴 아메리카史》 상,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6/ David B. Barrett,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vol. 1, Oxford Univ. Press, 2001, pp. 579~581/ E.J. Castillero R., 《NCE》 10, pp. 939~942/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16/ Annuario Pontificio 2004, Città del Vaticano, 2004.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