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파라오는 '큰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후대에 이집트의 왕을 가리키는 직함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왕국을 다스리는 절대적 통치자로서의 파라오는, 그가 맡은 역할과 사회적 위상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칭호와 직함을 사용하였다. 왕권이 신성시되고 강화되었던 초기에는 이집트 백성과 우주의 신들 사이를 매개하기 위해 인간으로 나타난 신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졌으나, 고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왕의 지위가 점차 낮아져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독자적인 신이라기보다는 '태양신의 아들'처럼 특정 신에 종속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 후 신왕국 시대에는 여러 신들의 뜻을 집행하는 대리인으로 여겨졌다.
〔의미의 변천〕 파라오는 전통적으로 신의 영역과 지상에서 하는 역할을 아우르는 여러 가지 칭호와 직함을 가졌다. 즉 '호루스'(Horus), '황금 호루스', '두 여신의 총아',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수호신', '태양신 라(Ra)의 아들' 등의 이름들이다. 그렇지만 '파라오'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칭호의 일부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000년대 초기에는 왕과 궁정 관리들이 거주하던 멤피스(Memphis)의 복잡하고 넓은 왕궁의 일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점차 확장되어 중앙 정부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왕국 제18왕조(기원전 1550~1295) 시기에, 특히 투트모스 3세(기원전 1479~1426)가 다스리기 이전에는 때때로 왕 자신에게 적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의미의 변천은 이집트 왕국 안에서만 일어났다. 대외적으로는 신왕국 시대가 끝나기 전(기원전 1070)에 통치자인 왕을 가리키는 예의 바른 완곡 어법으로서 공적인 전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제22왕조의 초대 왕인 셰숑크 1세(기원전 945~924)가 다스리던 시기부터 '파라오'라는 이름이 간혹 공적인 비문에 쓰이는 왕의 칭호 목록에 포함되었고, 기원전 8세기에는 긴 타원형의 윤곽으로 왕의 칭호를 나열하는 데 포함되었다. 이렇게 공적인 일과 문서에만 사용되다가 기원전 7세기에 일반적으로 왕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되면서, 테베의 일꾼들이 말하는 '우리의 어진 왕이신 파라오'와 같은 일상적인 담화에도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파라오'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프톨레메우스 왕조(기원전 305~30)의 신전 비문에 단지 왕을 뜻하는 문맥에 지속적으로 '파라오' 이름이 나타나지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27~서기 14)에 의해 이집트 왕조가 멸망함으로써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말은 사라졌다. 그래서 서기 3세기 말에 시작된 콥트 교회에서는 파라오를 완전히 잘못 번역하기도 하고, 이슬람 전통에서는 몇몇 왕을 가리키는 개인 이름으로 변형시키기까지 하였다.
〔성서의 용례〕 어느 파라오인지 고유 명사를 덧붙이지 않은 채, 단순히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파라오'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실례는 구약성서에서 흔히 발견된다. 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 하권 등 성서에 나오는 용례는 이집트 제21왕조 시기의 용법으로, 파라오의 자연적인 어의 변화의 최종 단계를 확인시켜 준다. 제21왕조 이후로는 '파라오'라는 칭호와 왕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집트 왕 파라오 호브라"(예레 44,30), "이집트 왕 파라오 느고"(예레 46,2)라는 식으로 성서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멤피스 ; 이집트)
※ 참고문헌 Donald B. Redford, 《ABD》 5, pp. 288~289/ 성서 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편, 《성서 백과 대사전》 4권, 성서교재간행사, 1980, pp. 445~448. 〔李禹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