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트네, 테오필 조제프 (1891~1969)

Parthenay, Théophile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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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테오필로. 한국 이름은 박덕노(朴德老). 1891년 1월 5일 프랑스 모르 드 브르타뉴(Maure de Bretagne)에서 태어난 파르트네는 모르 드 브르타뉴와 생 멘(Saint-Méen) 등에서 초 · 중등 교육을 받았다. 1909년 9월 1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15년 4월 3일 사제 서품을 받고 5년 동안 보좌 신부로 활동하였다. 1920년 대구 대목구 선교사로 선발되어 6월 27일 프랑스를 떠나 8월 21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약 1년 동안 한국어를 익힌 후, 1921년 6월 주임 신부의 공석으로 화산 본당에서 관할하고 있던 안대동(현 함열) 본당의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0월 23일 화산 본당 3대 주임으로 전임되자 안대동 본당은 다시 폐쇄되었다. 이듬해 5월 되재 본당의 6대 주임으로 전임된 후 1931년까지 그곳에서 재직하며 교세 확장에 주력하였다. 그는 되재 본당 재임 시 새벌 · 안심 · 수청리 공소에 경당을 신축하였으며, 1929년 5월에는 금산 지방리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파르트네 신부는 한국에 온 이후 계속해서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다가 1931년 4월 경상남도 밀양의 삼랑진 본당 3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당시 중단 상태에 놓여 있던 성당 건축 공사를 재개하여 1933년 적벽돌로 된 100여 평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렸던 파르트네 신부는 1934년 장티푸스에 걸려 이후 정상적인 사목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가 9월 그를 홍콩으로 보내어 병을 치료하게 하였으나, 파르트네 신부는 이후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결국 이듬해 3월 18일 프랑스 몽베통(Monbeton)으로 귀국하였다. 그 후 몽베통에서 지내다가 1969년 7월 9일 선종하였다. (→ 고산 본당 ① ; 삼랑진 본당 ; 함열 본당 ; 화산 본당)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경향잡지》 454호(1920) ‧ 471호(1921)/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 신문사, 1987/ 천주교 부산교구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敎區 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