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키에, 피에르 조제프 (1866~?)

Pasquier, Pierre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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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세례명은 베드로. 한국명은 주약슬(朱若瑟). 1866년 10월 24일 스위스 몰(Maules)에서 태어났으며, 1885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89년 7월 7일 서품을 받고 한 달 후에 출발하여 같은 해 10월 3일 조선에 입국한 뒤, 1890년 예산 간양골에 파견되었다. 그가 간양골에 거주하면서 충청도의 북쪽과 서쪽을 관할함에 따라 '간양골 본당'이 설립되었으나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전쟁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서울로 피신해 온 파스키에 신부는 다시 충청도로 내려가지 않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어 1899년 4월 22일 공주(현 중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04년 9월까지 활동하였다. 파스키에 신부가 부임하였을 당시 공주 본당의 신자수는 1,884명이었으며 관할 공소수는 26개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공소 순방을 수행하였으며, 신자수가 증가하자 1901년 4월 27일 부여 지역에 금사리 본당을 분리 설정하였다. 또한 1903년 가을에는 옥천 공소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옥천 본당이 설립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1904년 9월 8일 지병으로 공주를 떠나 서울 주교관으로 갔다가, 여기에서 9월 24일 홍콩의 베다니아 요양소를 거쳐 프랑스로 귀국한 뒤 이듬해 파리 외방전교회를 탈회하였다.
※ 참고문헌  《뮈텔 주교 일기》 1~3, 한국교회사연구소/ 중동 본당 100년사 편찬위원회 편, 《중동 본당 10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 중동 교회/ Répertoire des membr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1659~2004, Archives des missions étrangères, Paris, 2004.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