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니, 조반니 (1881~1956)

Papini, Giova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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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가톨릭 소설가. 시인. 비평가. 20세기 전반 이탈리아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생애 및 활동〕 1881년 1월 9일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태어났으며, 피렌체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곧 피렌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프레촐리니(G. Prezzolini, 1882~1982)와 함께 1903년에 《레오나르도》(Leonardo)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는데, 이 잡지는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Sturm und Drang)에서 영향을 받고 태동하여 이탈리아에서 실용주의가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어 《왕국)(Regno)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초빙되어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였는데, 이 잡지는 당시 독일인들이 지니고 있던 일종의 속물주의적인 지방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파피니는 1906년부터 자신의 저작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띤 《비극적 일상》(Il tragico quotidiano, 1906)에 이어 《철학자들의 황혼》(Il crepuscolo dei filosofi, 1906)을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철학이 퇴조하고 순수한 정신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전통 철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일종의 철학적 논쟁을 다루었다. 1907년에는 환상적 이야기를 다룬 《눈먼 파일럿》(Il pilota cieco)을 발표하였다.
이후 파피니는 프랑스를 여행하며 프랑스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또한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 지드(A. Gide, 1869~1951), 페기(C. Péguy, 1873~1914), 소렐(G. Sorel, 1847~1922) 등 당대 프랑스 최고 지성들의 정신 세계는 물론 피카소(P. Picasso, 1881~1973)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상적 · 예술적으로 더 성숙하게 되었다. 그는 귀국 후 불리카노(Bulicano)의 젊은 농촌 여인과 결혼하였으며, 후에는 그곳에 은둔하여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1912년에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끝장난 인간》(Un uomo finito)이 발표되었다.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본래 그가 편집진으로 참여하고 있던 문예지 《라 보체》(La Voce)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1913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외롭고 쓸쓸하던 어린 시절, 수많은 꿈으로 인해 빚어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도서관의 책에 파묻혀 지낸 소년 시절,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청년 시절로 구분하여 다루어지고 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가가 작품의 마지막에서 드러내는 절규를 통하여 그의 내면 세계를 읽을 수 있다. "나는 당신들의 차가운 눈앞에 나의 모든 고통과 모든 경험 그리고 모든 약점을 지니고 나타납니다. 나는 연민의 정이나 관대함, 칭찬이나 위안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인상적이다. "여러분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무슨 제안을 하든 똑같이 믿을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은 이미 끝장난 사람이고, 여러분들은 적어도 내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시작하고 싶어하였기 때문에 내가 끝장나 버린 것이고, 내가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파피니는 의기소침한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정신 착란자의 일기》(La cronaca di un delirio)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묘사하는데, 작가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뚜렷한 우유부단함을 바탕에 깔고 퇴행적인 성격에 시달리는 자신을 그리고 있다.
파피니는 1908년부터 《라 보체》를 필두로 많은 잡지에 글을 발표하였고, 아울러 소설 집필과 비평 작업도 활발하게 하였다. 1912년에 단편집 《언어와 피》(Parole e sangue), 1913년에는 평론집 《실용주의에 대하여》(Sul pragmatismo)를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이 시기의 대 표적인 수작이다. 작가 자신의 평론을 포함하여 유럽 문단의 거장을 논한 《24명의 지성》(Ventiquattro cervelli, 1912)은 그의 문학 평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또한 이탈리아 전위 예술 운동의 효시라 할 미래파(未來派, Futurismo)가 일정 기간 공식 기관지로 이용하였던 잡지 《라체르바》(Lacerba, 1913)에도 평론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래파의 창시자 마리네티(F.T. Marinetti, 1876~1944)와 거리를 두고 미래파에 속한 대표적인 화가 보초니(U. Boccioni, 1882~1916)와 격렬한 논쟁을 한 후, 다소 온건주의로 선회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미래파들은 모두 전쟁 개입을 강하게 주장하였으나, 파피니는 완강하게 반대하며 《라체르바》를 1915년에 폐간하고 시 창작에만 몰두하여 산문시 형태로 《일백 쪽의 시》(Cento pagine di poesia)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1년 뒤인 1916년에는 《단절》(Stroncature), 1917년에는 《최초의 작품》(Opera prima)을 발표하였다. 파피니는 극심한 근시 때문에 전쟁에 참여할 수도 없었지만, 전쟁은 그에게 도덕적 의식의 시험대였다. 그가 19세기 후반에 성행하던 실증주의적 세계관을 멀리하고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을 옹호하는 데 앞장선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파피니는 한동안 반(反)자본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는 낙후된 상황에서 신음하는 나라들에서 오히려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일기》(Diario), 《고그》(Gog)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또한 1958년에야 완결판이 나왔지만 본래 1923년에 발표되었던 《제2의 탄생》(La seconda nascita)은, 가톨릭 사상과 농촌 세계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야 할지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관심을 두든 결국에는 현실의 가톨릭 세계가 지닌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이 그에게 남겨 준 것은 고통의 지혜였다. 《악마》(El diavolo, 1953)는 이러한 그의 정신 세계에서 비극적인 종교성을 훔쳐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921년 《그리스도 이야기》(Storia di Cristo)라는 명저를 발표함으로써 파피니는 가톨릭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완전한 의미에서 가톨릭 신앙으로의 귀의를 뜻하지만, 또 그랬기 때문에 이 작품이 발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끝장난 인간》과 함께 파피니의 정신 세계를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복음서에 바탕을 두고 예수의 삶을 조명한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예수가 핍박받고 버림받은 군상들, 가난과 불행 속에서 삶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로 이해되는 점이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하나의 마구간, 하나의 진정한 마구간"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처참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친구로서 예수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부분에, "저희가 부끄럽기 짝이 없고 전혀 무능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지만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렵니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카로차 같은 학자는 이 작품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오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극적이고 결정적인 대답이 된다고 평가하였다. 파피니는 종교 시집 《빵과 포도주》(Pane e vino, 1926), 《성 아우구스티노》(Sant'Agostino, 1929)도 발표하였다.
1930년대에 그는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기보다는 20세기 초에 발표하였던 글들을 재정리하여 출판하는 데 주력하였다. 독선적이지만 뛰어난 통찰력이 엿보이는 단테(A. Dante, 1265~1321)에 관한 전기 《살아 있는 단테》(Dante vivo, 1932)로 무솔리니 상을 받았으며, 1932년에는 《문학적 이교주의》(Eresie Letterarie)를, 1937년에는 《이탈리아 문학사》(Storia della letterature italiana)를 출판하였고,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아 회원이 되어 《이탈리아어 사전》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한편 피렌체의 르네상스 연구 센터에 참여하면서 기관지인 《리나시타》(Rinàscita) 발행에 관여하였다. 1946년 이후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시력과 언어에 장애가 생겼지만, 창작 의욕만은 왕성하였다. 그는 베르그송, 니체(F. Nietzsche, 1844~1900), 제임스(W. James, 1842~1910) 등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룬 《아득히 먼 과거》(Passato remoto)를 1948년에 발표하고,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현대 문명의 과정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다룬 《검은 책》(Il libro negro)을 1951년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1956년 7월 8일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탈리아의 최대 유력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iere della sera)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였다.
〔평 가〕 활달한 성격을 지녔던 파피니의 사상적 편력 역시 기복이 심하였다. 그는 독서의 폭이 아주 넓은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의 사상적 편력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인습에서 벗어난 분야까지 연구하였던 그의 노력은 결국 정신적인 방황에 사로잡히는 결과를 초래하여 '파피니적인 카멜레온주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파피니는 실용주의적인 사상의 소유자였으나 곧이어 미래파에 빠졌다가 중기에는 파시즘을 거쳐 가톨릭으로 돌아왔으며, 마침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그가 지성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으며, 확실성이나 가치 의식 등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톨릭 사상은 그에게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었으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시켜 주었다.
파피니의 작품 활동은 일방적인 편파성이 강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인들의 내면적 의식 세계와 사회 현상을 성공적으로 분석 · 평가하였다고 긍정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 가톨릭 문학, 이탈리아의)
※ 참고문헌  G. Papini, Tutte le opere, vol. 10, Milano, Mondadori, 1959~1966/ B. Croce, Conversazioni critiche, Bari, Laterza, 1919/ R. Ridolfi, Vita di Giovanni Papini, Milano, Mondadori, 1957/ V. Vettori, Giovanni Papini, Torino, Borla, 1967/ M. Isnenghi, Giovanni Papini, Firenze, La Nuova Italia, 1972/ S. Gentili ed., Papini nel centenario della nascita, Milano, Vita e pensiero, 1983/ 한형곤, 《이탈리아 문학의 이해》, 거암, 1984/ G. Luti, Cronache dei fatti di Toscana, Firenze, Le Lettere, 1996/ E. Ghidetti ‧ G. Luti, Dizionario della letteratura italiana del novecento, Roma, Riuniti, 1997/ 박상진, 《이탈리아 문학사》,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7. [韓炯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