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나일 강 삼각주 유역 등 동부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의 습지에서 주로 자라던 사초과(莎草科, cyperaceae)에 속하는 식물 파피루스(cyperus papyrus)의 이름. 또는 이것으로 만든 필기 재료나, 파피루스에 쓰여진 성서 단편을 가리키는 용어.
이 이름의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왕에게 속한다'라는 뜻의 콥트어 '파푸로'(papuro)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파피루스는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보통 4~5m까지 곧게 자라며 줄기 끝에서 잎이 벌어지고 꽃이 피는데, 고대 이집트 북왕국의 상징이 될 정도로 유명하였다. 특히 재료의 특성이 가볍고도 질겨 일찍부터 바구니(출애 2,3)나 돗자리, 샌들, 밧줄, 작은 배(이사 18,2) 등 생활 용품을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이 밖에 연료, 음식, 의복, 약품 따위로도 이용되었고, 그 잎은 껌으로 쓰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용도는 필기 재료로서였다.
〔필기 재료〕 파피루스를 필기 재료로 만들 때는 먼저 팔목 굵기인 이 식물의 삼각형 형태의 줄기를 밑둥치에서 자른다. 딱딱한 겉껍질을 제거하고, 속줄기를 세로로 얇게 쪼개어 30~40cm씩 잘라 여러 줄을 수평으로 놓는다. 그 위에 또 다른 한 줄을 수직으로 엇갈려 놓은 다음 천을 덮고 무거운 물체로 누르거나 망치로 두드리면, 자체 수액으로 두 층이 달라붙는다. 이를 말린 다음 속돌로 문지르고 일정 규격에 따라 자르면, 질기고 편평한 옅은 황갈색의 필기 재료가 된다. 크기는 규격화되어 있었는데, 통상 좀 더 큰 왕실용과 작은 상업용으로 나누어졌다. 한 장의 세로는 평균 20~23cm였고, 가로는 스무 장을 붙여 두루마리 하나로 간주하였다. 두루마리의 길이는 43m에 이르기도 하였으나—기원전 11세기에 제작된 이집트의 <사자의 서>—대개는 사용하기 편하게끔 4~5m 정도로 만들었다.
보통 수평면을 앞면으로 삼아 일정한 줄에 따라 갈대 펜을 잉크에 적셔 필기하였다(잉크는 그을음을 수지와 물에 개어 만들었다). 궁정 등지에서는 앞면(recto)에만 필기하나, 값이 비싼 관계로 민간에서는 폐기된 두루마리의 뒷면(수직면, verso)에도 자주 필기하였다. 낱장은 편지나 노트로 사용하였고, 긴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 경우에는 파피루스를 밀가루풀로 옆으로 길게 이어 붙인 다음(붙이는 부분은 대략 20~25mm) 끝에 나무봉을 단 두루마리 형태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보관할 때는 낱개마다 꼬리표를 붙이거나, 열 개씩 한 상자(decade)에 넣어 간직하였다.
파피루스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서기 9~11세기에 이르러 종이가 그 역할을 대신할 때까지, 이집트를 비롯한 근동과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집트에 왕국이 세워지고 관료제가 형성되면서 파피루스는 가장 중요한 필기 재료로 쓰였는데 그 소비량이 상당하였다. 프톨레메오스 11세(기원전 115?~80) 때의 재무관이었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33일 동안 434뭉치의 두루마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에는 개인이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팔아 쓴 것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는 기원전 16세기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독점 수출품이었는데, 늦어도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시리아에 수출하였던 것 같다. 또 페니키아의 비블로스(Byblos)를 통해 그리스로도 수출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시대가 내려갈수록 품질이 떨어져 제19~20왕조인 라므세스 왕조(기원전 1295~1069)의 파피루스가 최상품으로 꼽혔으며, 프톨레메오스 왕조 시대(기원전 305~30)의 파피루스는 무겁고 두꺼워 중품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로마 시대(서기 1~3세기)에는 매우 거칠어 하품 파피루스로 평가되었다.
비록 물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팔레스티나에서도 기원전 2000년대의 가나안 문화권에서 파피루스를 수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왕궁도 이집트나 아라비아 같은 주변 왕국과 마찬가지로 공문서를 작성할 때 파피루스를 사용하여, 문서를 기록한 뒤에는 실로 묶고 진흙으로 봉인한 뒤 인장을 찍었다. 와디 무라바트에서 발굴된 기원전 7세기의 파피루스가 팔레스티나에서 사용된 파피루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팔레스티나에서 자체적으로 파피루스를 제작한 때는 동로마 제국 시대(서기 4~7세기)이다.
예언서의 초기 문헌이나 성서들도 처음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성서에 언급된 '책'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가리켰다(예레 36,18-23; 에제 2,9; 참조: 3,1-3). 대체로 파피루스의 길이에 따라 성서의 분량이 나뉘어졌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가령 나할 헤베르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소예언서 두루마리는 거의 10m에 달하였고, 쿰란 제1 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7.34m에 이른다. 성서가 아닌 문헌들로 더 긴 것들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서는 점차 양피지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파피루스는 가벼운 대신 쉽게 부숴지고 물에 약한 단점이 있어, 유대의 서기관들은 파피루스를 양피지보다 덜 귀하고 덜 확실한 것으로 여겨 성서 필사 재료로 선호하지 않은 것 같다. 기원 전후 시기에 형성된 쿰란 문헌들의 재료를 보면, 발견된 800여 개의 두루마리 중 파피루스는 60여 개에 불과하다(약 8%). 성서 필사 재료로 양피지를 선호하는 경향은 그 뒤로 점점 더 우세해졌으나,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티나와 달리 여전히 파피루스에 성서를 필사하였다. (→ 비블로스 ; <사자의 서> ; 이집트 ; 쿰란 문서)
※ 참고문헌 Lewis Naphtali, Papyrus in Classical Antiquity, Oxford Univ. Press, 1974/ Michael Avi-Yonah, Ancient Scrolls, Palphot, 1994/ Tov Emanuel, 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Fortress Press, 1992. 〔李鎔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