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파스칼리스. 세례명은 요한.
1881년 1월 8일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교구 엑글핑(Egglfing)에서 태어난 판 가우어는 형인 바르나바(Barnabas Fangauer, 1876~1967) 수사를 따라 1906년 정원 관리사(Gärtnermeister)로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07년 10월 20일에 유기 서약을 하였다. 1909년 11월 7일 2명의 신부와 4명의 수사로 구성된 한국 진출 제1진에 포함되어 서울 백동(현 혜화동)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파견, 포도 등 과일을 가꾸며 숭공학교 원예과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에는 청도(靑島)로 징집되었다가 1914~1920년까지 일본군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1923~1949년까지 그는 원산 본당에 기거하면서 농사 일을 하였는데, 특히 채소와 과일을 많이 재배하였으며 당시에는 비싸고 귀한 작물이었던 포도를 재배하여 팔기도 하였다.
판가우어 수사는 1949년 5월 11일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8월 5일 옥사독 수용소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만성 설사, 영양 실조, 수종증, 복수증, 심장 기능 장애 등으로 고생하다 1950년 4월 16일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 숭공학교 ; 원산 본당)
※ 참고문헌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왜관 수도원 편, 《옛 등걸에 새순이》, 분도 출판사, 1984/ Todesanzeige von Abtei Schweiklberg, 1950. 〔宣智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