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크라시오 (?~?)

Pancrat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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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4세기 초의 로마 순교자. 축일은 5월 12일.
순교한 후 아우렐리아(Aurelia) 거리에 있는 옥타빌라(Octavilla) 묘지에 묻혔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문서와 수많은 비평문 속에 언급된 전설적인 수난기에 따르면, 판크라시오는 부유한 프리기아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어 그의 삼촌 디오니시오(Dionisios)를 따라 로마로 와서 세례를 받았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 시기인 304년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고문을 당하고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서 경배가 행해졌고,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와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성무 집전서에 성 판크라시오 기념 미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공경이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무덤 위에 세워져 있던 성당은 500년경에 교황 심마코(498~514)가 재건축하였으며(Liber pontificalis I, p. 262)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이곳에서 복음서를 강화(講話)하고(《PL》 LXXVI, 1204~1210) 그에게 봉헌하는 수도원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팔라디오(Palladius) 주교에게 성당 건립 이후 남겨진 유물을 보냈다(Epist. 49; 《PL》 LXXVII, 834).
교황 호노리오 1세(625~638)에 의해 재건된 판크라시오 대성전은 훗날 추기경좌 성당이 되어 로마인들이 부활 시기에 주로 찾는 유적지가 되었다. 6세기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그에 대한 공경 예식은 더욱 확산되어 중세 때에는 서양 전역으로 퍼졌다. 중세에 쓰여진 여행기(itineraria)도 그에 대한 공경 예식이 계속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마다 그의 경당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Cantuariensis, ?~604/605)는 판크라시오에게 봉헌하는 성당을 지었고, 투르의 그레고리오(Gregorius Turonensis, 538~594)는 로마인들이 거짓 맹세로 고발당하였을 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그의 무덤을 찾았다고 전하였다. 따라서 판크라시오는 거짓말을 하였을 경우에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성인으로 명성을 떨쳤다(Liber miraculorum. I, 39; 《PL》 LXXI, 740~741).
664년에 교황 비탈리아노(657~672)는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ia)의 왕 오스위(Oswy, 641~670)에게 판크라시오의 유해를 보냈다. 그로 인해 판크라시오는 베다 존자(Beda Venerabilis, 672/673~735)의 순교록과 옛 영국(Old English)의 순교록에 기록되었다. 영국에 있는 6개의 고대 교회들이 그에게 봉헌되었는데, 그중에는 런던 북부에 있는 교회도 포함되어 있다. 또 근처의 공동 묘지와 철도역에도 '세인트 판크라시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판크라시오 성인은 중세 후기 14명의 수호자들 중 1명으로 여겨졌으며, 신생 국가와 청춘 남녀들의 보호자 이자 병자들의 협조자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로마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여러 교회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 방그라시오)
※ 참고문헌  《Cath》 X, pp. 500~501/ B. Kötting, 《LThK》 8, p. 22/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p. 256/ David Hugh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37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