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군산시 경장동 463-9 소재. 1969년 4월 1일 둔율동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동흥남동 전역과 경장동, 경암동, 수성동, 서흥남동, 장재동, 미장동, 조촌동 일부 지역. 〔교 세〕 1969년 900여 명, 1977년 1,159명, 1980년 1,809명, 1987년 2,114명, 1990년 2,253명, 1995년 2,241명, 1999년 2,366명, 2003년 2,303명. 〔역대 신부〕 초대 이수현(李守鉉) 보나벤투라(1969.4~1971.4), 2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71.4~7), 3대 범석규(范錫圭) 마티아(1971.7~1972.9), 4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1972.9~1973.10), 5대 김치삼(金熾參) 스테파노(1973.10~1974.9), 임시 김영신(金英信) 바오로(1974.9~1975.1), 6대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1975.1~1979.2), 7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1979.2~1980.1), 8대 문규현(文奎鉉) 바오로(1980.1~1984.1), 9대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1984.1~1988.1), 10대 김병엽(金炳燁) 베드로(1988.1~1992.1), 11대 김희남(金羲南) 베드로(1992.1~1995.8), 12대 서용복(徐龍福) 토마스(1995.8~1999.2), 13대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1999.2~8), 14대 이상섭(李相燮) 모세(1999.8~2002.1), 15대 정태현(丁太鉉) 갈리스도(2002.1~현재)
초대 주임 이수현 신부는 부임 직후인 5월 1일 군산시 중동 274-78번지에 소재한 기와 공장(대지 382평, 벽돌 건물 64평)을 매입하여 성당(44평) 및 사제관 · 식당(20평)으로 개조하였다. 이어 1970년 6월에 본당 소유였던 구암동 소재 밭 420평을 매각하여 사무실(12평)과 부대시설을 개축하는 등 신설 본당의 기반을 닦았다. 1971년 4월에 2대 주임 김영구 신부가 부임하였고, 그 뒤로는 둔율동 본당 12대 주임인 범석규 신부가 3대 주임을, 13대 주임인 서석기 신부가 4대 주임을 각각 겸임하였다.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치삼 신부는 1973년 개정 공소 신자들의 헌금으로 공소 유지 및 확장 기금 마련을 위한 전답 1,000평을 매입하였는데, 뒤에 이 전답은 1981년 5월에 전주교구 명의로 이전되었다. 1974년 9월에 휴양을 하게 된 김치삼 신부에 이어 전주교구청 관리 국장인 김영신 신부가 임시로 팔마 본당 주임을 겸임하여 본당의 당면 과제였던 재정 관리 문제를 정리하였다.
6대 주임 박성운 신부의 재임기인 1976년 3월 사도회 회의에서는 성당의 대지가 협소하고 교통과 위치 등 여러 입지 조건이 적당하지 않아 성당을 이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성당 이전 장소를 물색하여 3월 21일 군산 · 옥구 연합 사도회 총의로 둔율동 본당 소유인 경장동 463-4번지의 잡종지 784평 가운데 500평과 본당 부지와 건물을 교환하기로 하고 교구청의 승인을 받은 후, 6월에 건축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고 7월에 전주교구장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8월부터 박성운 신부가 직접 감독하는 가운데 공사가 시작되어 12월 10일 준공하였다(연건축 면적 205평). 1977년 2월 12일에 본당을 이전하고 3월 1일에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한 후 명칭도 '팔마 성당'으로 개칭하였다. 1979년 1월 11일에는 공원 묘지 조성을 위해 옥구군 성산면 둔덕리 산46번지의 임야(21,510평)를 매입하였다. 7대 김환철 신부 재임기인 1979년 9월에는 교회 내외적으로 문제되던 안동 가톨릭 농민회원 오원춘(吳元春, 알퐁소)의 납치 · 폭행 · 구속 사건과 관련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교회의 입장을 표명하는 기도회가 40여 명의 사제와 7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당에서 열렸다.
8대 문규현 신부는 본당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28개 반을 편성하여 반 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동을 강화하고 매월 1회 반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1981년 3월에 반 회보 <새 본당>을 창간하여 1983년 12월 28호에 이르기까지 발간하였다. 또한 경남 산청에 위치한 '성심 인애원'에 의복과 책, 신문지 등을 전하고 한센병 환자 돕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82년 5월에는 교육관 · 수녀원 · 사제관 · 식당 등을 증개축하기로 결의하여 이를 추진해 나갔으며, 1982년 7월에는 기존의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고 구역별로 16개의 쁘레시디움을 조직하여 꼬미시움 주관으로 연수회를 실시하였다. 1984년 1월 부임한 9대 박진량 신부는 수산 공소를 신설된 옥봉 본당에 이관하고, 개정 공소는 관할로 편입하였다. 4월에는 그동안 진행된 수녀원 · 교육관 등의 증축 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985년 7월에는 사무장 사택 및 북쪽 상가 건물(42.4평)이 완공되었다. 1986년 4월 본당 월보인 <팔마 월보>가 창간되었고, 9월에는 불우 이웃을 위해 모금한 돈으로 가난한 가정 33세대에 쌀을 20kg씩 전해 주었다. 또한 1987년 4월부터 본당 인성회를 중심으로 전세방을 구해 주고 생활비를 도와 주는 등 소년소녀 가장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0대 김병엽 신부는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기 수련회 및 본당 피서 대회를 개최하여 공동체의 친목과 결속을 다졌고, 1989년 3월 1일에는 산악회도 창립되었다. 같은 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에 280명이 참가하여 성체 신심을 더욱 앙양하였다. 11대 김희남 신부가 부임한 직후인 1992년 6월에 교육관 · 사무실 · 사제관의 보수 공사가 있었고, 1993년 6월 1일에는 본당의 성서 교실을 개강하였다. 이보다 앞서 2월 3일에는 본당 출신 김광태(金光泰, 야고보) 신부의 첫 미사가 있었고, 12대 주임 서용복 신부가 재임하던 1997년 1월 31일에도 본당 출신 강호(姜虎, 가브리엘) 신부의 첫 미사가 거행되는 등 팔마 본당 출신 사제가 꾸준히 배출되었다.
13대 주임 오현택 신부와 14대 주임 이상섭 신부에 이어 현재 15대 주임으로 활동 중인 정태현 신부는, 하느님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자는 뜻으로 '거룩한 독서 운동'을 전개하여 이 운동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선교에도 적극 관심을 기울여 2003년에는 선교부 주관으로 예비자 환영식이 두 차례 열렸으며,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나바위 · 여산 · 천호 성지 등 성지 순례도 다녀왔다. 이처럼 팔마 본당은 설립 이래 주임 신부를 중심으로 사목회와 여러 단체 등 본당 공동체가 다방면에서 지역 선교를 위한 발판을 다지며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 · 발전해 나가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