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라

〔히〕 תַּדְמֹר · 〔그〕 Θεδμορ · 〔라 · 영〕 Palmy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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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의 폐허 유적.

팔미라의 폐허 유적.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동북쪽으로 240km 떨어진, 사막 한복판에 있는 고대 도시. 타드모르(Tadmor)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약 사〕 솔로몬이 이곳을 점령하여 타드모르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2역대 8,3-4),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14~37)가 이곳을 로마 제국에 복속시켰다. 129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가 방문한 후 자유시(civitas libera)가 되었다가 카라칼라 황제(198~217) 시대에는 식민 도시(colonia)가 되어 세금을 면제받았고, 3세기경에 전성기를 맞았다. 227년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의 파르티아인들을 몰아내고 사산 왕조(224~651)가 들어서자, 팔미라의 교역로인 페르시아 만으로 가는 길이 폐쇄되었다. 팔미라의 통치 가문 출신으로 로마의 시민이었던 오데나투스(Septimius Odaenathus, ?~267/268)는 258년경 이곳의 집정관이 되었고, 이후 팔미라의 통치자가 되었다. 260년에 오데나투스가 사산 왕조 샤푸르 1세(241~272)의 군대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자, 갈리에누스 황제(253~268)는 그에게 '온 동방의 통치자'(Corrector totius Orientis)라는 칭호를 내렸다.
오데나투스는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의 호의로 이집트와 터키 지역을 제외한 중동 전 지역을 통치하다가 장남인 헤로데스(헤르디아누스)와 함께 267년 혹은 268년에 살해되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이던 제노비아(Zenobia, ?~274?)는 아들인 바발라투스(Vahballatus)의 섭정으로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고 이집트를 점령한 데 이어, 270년에는 터키 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방까지 진격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바발라투스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이에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270~275)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와 에메사(현 Homs) 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272년 팔미라를 점령한 후 거기에 소부대만을 남기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팔미라인들은 폭동을 일으켜 로마 군인들을 학살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결국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팔미라를 초토화시켰다. 634년에는 이슬람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Abū Bakr, 573?~634)의 군대가 팔미라를 점령하였다.
〔유 적〕 팔미라 입구는 묘지 구역인데, 이곳의 아테나탄(Atenatan) 지하 묘소는 98년에 만들어졌고 내부 조각 장식들은 229년에 설치되었다. 팔미라 폐허 유적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은 담 둘레가 225m나 되는 벨(Bel) 신전이다. 이 신전은 32년에 완공된 것으로 벨 · 야르히볼(Yarhibol) · 아글리볼(Aglibol)이 모셔져 있었다. 벨 신전부터 도시를 관통하는 석주 중앙로가 시작되며, 중앙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편에는 네보(Nebo) 신전, 극장, 시청, 시장 터가 있고, 오른편에는 바알샤민(Baalshamin) 신전 터가 있다. 옛 팔미라에서 2km 떨어진 타드모르의 초입에 팔미라 박물관이 있다. (→ 시리아)
※ 참고문헌  이시호, 《크리스찬이 본 중근동》, 동산출판사, 1994, pp. 411~412/ 정양모, 《위대한 여행,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생활성서사, 1997, pp. 277~280. 〔鄭良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