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5.15) 반포 80주년을 기념하여 1971년 5월 14일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발표한 교서. 〈노동 헌장>을 기념하는 다른 문헌들이 회칙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반포된 데 비해, 이 문헌은 교황청 정의 평화위원회와 평신도위원회 위원장인 로이(Maurice Roy) 추기경에게 보낸 교서이다.
〔배경과 반포 이유〕 이 교서는 교황 바오로 6세가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3.26)을 반포한 지 4년 만에,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가 <메데인 문헌>(Medellin Documents, 1968.11.30)을 발표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반포되었다. 또한 1971년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세계의 정의에 관하여 토의하기 직전에 교황이 정의 평화위원회와 평신도위원회 위원장 추기경에게 보낸 것이다. 따라서 이 교서는 시기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문헌과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관련을 맺고 있다. 교황은 이 교서에서 자신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다. 또한 1960년대 후반 중남미에서 뚜렷한 모습을 나타낸 해방 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반응으로 보이는 구절들이 있으며, <메데인 문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인용은 없으나 이 문헌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구절들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팔십 주년> 6항에서 교황은 "다음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도 '세계 정의' 구현에 관한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교회가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더욱 상세히, 한층 더 깊이 검토"하여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교서는 <민족들의 발전>, <메데인 문헌>, 그리고 <세계 정의에 관하여>(De Iustitia in Mundo, 1971.11.30)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이 교서를 작성 · 반포한 이유는 첫째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 헌장> 반포 80주년을 기념하고, 둘째 사회 정의 구현의 촉진에 대한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을 강조하며, 셋째 변화하는 세계에서 발생한 새로운 사회 문제들에 대한 응답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교황은 이 교서를 통해 당시 중남미에서 일어난 해방 신학과 다양한 형태로 대두되고 있던 사회주의 사조들에 대한 염려를 어렴풋이 밝히고 있다. 즉 교황의 이러한 염려가 <팔십 주년> 작성의 내적 배경이 된 것이다.
〔구성과 내용〕 이 교서는 서론과 4개의 장, 50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1~7항)은 <팔십 주년>의 반포 이유, 정의를 위한 더 많은 노력의 필요성, 그리스도인이 처한 다양한 환경과 지역 교회의 책임, 확대되어 가는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도움,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문제들과 신자들의 의무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제1장(8~21항) '새로운 사회 문제'에서는 도시화 현상과 사회 문제, 도시인의 고독과 비인간적인 생활 조건, 그러한 환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 장래가 불안한 젊은이,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는 여성, 노동자의 단결권과 노동 조합 활동의 어려움, 발전의 희생자인 새로운 빈민, 인종 차별, 이주권, 직장 문제 해결, 홍보 수단의 긍정적 · 부정적인 면, 자연 환경의 파괴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제2장(22~41항) '기본 소망과 현대 사조'에서는 인간 사회의 진보와 평등과 참여의 소망, 인권에 관한 법적 인정,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존경, 정치 사회와 정치 활동, 인간을 소외시키는 각종 이념들, 역사적 운동들의 긍정적 요소, 사회주의 사조의 매력,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그 해설, 자유주의 이론의 재현, 여러 가지 학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식별의 필요성, 유토피아의 허와 실, 인간 과학의 문제점과 대책, 진보 개념의 애매함 등을 설명하였다. 제3장(42~47항) '새로운 문제 앞에 선 그리스도인'에서는 사회 문제와 교회, 보다 완전한 정의의 실현을 위한 민족간의 노력, 국경을 초월하는 경제 세력의 등장, 참된 해방을 위한 정신 자세와 구조의 변화, 정치 활동의 그리스도교적 의미, 참여와 책임의 분담 등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장(48~52항) '행동하라'는 올바른 세계 질서를 위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행동의 필요성, 구체적인 행동을 위한 선택의 다양성,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회 혁신 활동,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 징〕 이 교서는 이전의 사회 회칙들과는 다른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팔십 주년>은 당시 사회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동 헌장>이 주로 고용주와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5.15) 및 <민족들의 발전>은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의 불균형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는 반면 <팔십 주년>은 도시화 문제(9~12항), 젊은이와 여성 문제(13항), 대중 매체 문제(20항), 자연 환경 문제(21항) 등 교서 반포 당시의 모든 사회 문제들을 열거하고 이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교황 바오로 6세는 선행 문제인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개발 도상국 국민들의 문제를 더욱 광범위한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둘째, 이 교서는 행동, 특히 정치적 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당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원칙을 상기하거나, 뜻을 굳히거나, 비참한 부정을 단죄하거나, 예언자적 용기로 비판을 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모든 것이 각자의 절실한 책임감 및 확실한 구체적 행동과 결부되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48항)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먼저 각 개인의 회심과 진정한 연대성이 요청되며, 정치 참여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활동에서 정치 활동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국내적 또는 국제적 사회 · 경제 분야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치 권력"(46항)이며,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생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47항).
셋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교회가 "각 지역에 알맞는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4항)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지역 교회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음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영원 불변한 복음의 말씀으로 비추어 주고,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과 행동 지침을 발견하는 일은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인 것이다"(4항). 이러한 책임의 완수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선의의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지닌 인류 공동체의 진정한 진보를 위한 책임 때문에 모든 신자들은 두 가지 임무를 지니고 있다. "즉 세상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심어 주고, 세상 구조를 현 시대의 요청에 응하도록 더 완전한 형태로 혁신하는 임무이다"(50항).
〔영향과 공헌〕 <팔십 주년>은 1970년대 초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복음의 빛에 비추어 그 해답을 제시한 문헌으로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발전에 다음과 같은 공헌을 하였다. 즉 <팔십 주년>은 무엇보다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곧 이 교서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때문에 보편 교회가 아니라 지역 교회가 제시해야 함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4항). 이는 각국이 처한 상황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사회 문제의 해결책과 그리스도인의 행동 지침에 있어서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즉 보편 교회나 교황은 각국의 사회 문제에 대하여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고, 지역 교회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복음과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힘입어 적절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서 현실의 구체적인 환경과 그 해결책을 찾는 귀납법을 강조한 것이며, 각국의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지역 교회의 임무가 된다. 또한 이 교서가 <메데인 문헌> 반포 3년 후에 쓰여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가르침은 곧 <메데인 문헌>을 중남미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역 교회의 문헌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팔십 주년>은 다른 회칙들과는 달리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교서보다 앞서 반포된 사회 회칙들은 사회 · 경제 문제를 주로 사회 · 경제적 측면에서만 다루었다. 반면 교황 바오로 6세는 빈곤과 종속에서 해방된 올바른 사회 구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적 활동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최종적 결정은 정치 권력이 내리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은 모든 사람이 경제 분야를 넘어서 사회 · 정치 분야에까지 "동등한 책임과 결정에의 참여"(47항)를 통해 현대 생활에 적합한 민주 체제를 발견하고 이 사회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였다. 교황의 이러한 요구는 1970년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가톨릭 교회의 활발한 사회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교서를 통하여 당시 유행하던 이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적 판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교서는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유토피아와 신실증주의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가장 상세히 다루고 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를 "정의와 연대성과 평등을 실현하는 운동"(31항) 및 "계급 투쟁의 능동적 실천 형태"(32항)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분석법은 사회의 전체성과 폭력성을 도외시하는 망상(34항)이다. 특히 사회 분석법에 관한 교황의 가르침은 해방 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신앙 교리성의 훈령인 <자유의 전갈>(Libertatis Nontius, 1984.8.6) 7항에서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이것은 교황의 가르침이 해방 신학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황은 현실적 의무를 저버리고 환상적 세계로 도피하려는 유토피아, 개인의 활동과 동기 및 자유 행사의 자율성에 대하여 그릇되게 주장하는 철학적 자유주의, 그리고 인간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인간 과학과 새로운 실증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당시 유행하던 사조들에 대한 복음적 판단으로 교회가 현대의 사조에 대처해야 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조로 인해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올바른 비판 정신을 심어 준 것이다.
결론적으로 <팔십 주년>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사회 교리)의 전통을 잇는 사회 문헌이다. 이 교서가 사회 문제의 해결에 대한 지역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교회의 사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사회 교리의 실천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교서는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존경"(etiam praecipuam reverentiam puperibus, 23항)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전통을 잇고 있다. (→ 가톨릭 사회 교리 ; 가톨릭 사회 운동 ; <노동 헌장> ; <메데인 문헌> ; <민족들의 발전> ; 바오로 6세 ; 사회 회칙 ; <세계 정의에 대하여>)
※ 참고문헌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도날 도어, 오경환 역,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분도출판사, 1987/ Giorgio Vecchio, Chiesa e problemi sociali, In Dialogo, Milano, 1984/ ──, La dottrina sociale della Chiesa, In Dialogo, Milano, 1992/ Giovanni Battista Guzzetti, L'insegnamento sociale della Chiesa, Elle Di Ci, Leumann, 1991/ Igino Giordani, Pensiero sociale della Chiesa oggi, Città Nuova, Roma, 1971/ Luigi Negri, Il magistero sociale della Chiesa, Jaca Book, Milano, 1994/ Maire-Cominique Chenu, La dottrina sociale della Chiesa, Querinianam Brescia, 1977/ Peter J. Hernriot 외, Catholic Social Teaching, Orbis, Mariknoll, New York, 1985/ Theodor Herr, Catholic Social Teaching, trans. by Peiter Vlieland, New City, London Edinburgh Dublin, 1991. 〔金明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