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레바논 공화국 전부와 주변 지중해 연안을 합친 지역.
주요 항구들로는 비블로스(현 주바일), 베리토스(현 베이루트), 시돈(현 사이다), 티레(티로, 현 수르)가 있다. 페니키아라는 명칭은 '자주색'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포이닉스'(φοι̑νις)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에 따르면, 이 색깔을 발견하고 염색에 이용한 사람들이 페니키아인들이었다. 이들은 레바논 산맥 때문에 시리아 지역과 단절되어 일찍부터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고, 항구를 통해 무역업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약 사〕 페니키아인들이 어느 곳에서 이주하여 왔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3000년경 이곳에 도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집트 제4왕조(기원전 2613~2498) 때부터 페니키아인들은 이집트와 교역하였으며, 기원전 16세기에는 양 지역 간의 무역이 활발하였고 이집트는 페니키아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또한 기원전 9세기부터는 아시리아의 지배를, 기원전 539년부터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이 이 지역을 점령한 데 이후, 기원전 319~198년에는 이집트 프톨레메오스 왕조(기원전 305~30)의 지배를, 기원전 198~65년에는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12~64)의 지배를, 기원전 64~서기 640년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636~644년 이슬람 군대가 페니키아 지역을 점진적으로 점령하자, 페니키아는 시리아의 우마이야 왕조(661~750),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751),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969), 소아시아의 셀주크 투르크 왕조(1078), 십자군(1098~1291),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1289~1515), 소아시아의 오스만 투르크 왕조(1516~1918), 프랑스의 신탁 통치(1918~1941) 등을 거쳐 1941년 레바논 공화국의 일부로 독립하였다. 1943년 국민 협약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가톨릭이, 수상은 수니파 무슬림이,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차지하고, 국회의원 수도 종파 간의 인구 비례에 따라 분배하였다. 이 밖에도 멜키트 가톨릭 · 그리스 정교회 · 시리아 정교회(야곱파 정교회)가 있고, 이슬람에서 파생한 트루즈 교파도 있어 종교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국민 협약 제도는 30여 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나, 가톨릭 신자들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낮은 데 비해 무슬림들은 출산율이 높아서 인구 비례의 균형이 깨졌다. 그러자 무슬림은 더 많은 권력을 요구하고 가톨릭 신자들은 기득권을 지속하려는 과정에서 1975~1989년 레바논 내전이 일어났다. 종파 간의 알력이 심각한 데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전쟁 때부터 레바논으로 피신한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 명이 남부 지역에 살고 있고, 친(親)이란 시아파 무슬림 테러 집단인 히즈볼라(Hisbola)가가 베카(Beqaa) 계곡에 진을 치고 있어, 레바논의 사회와 정치는 매우 혼란스럽다. 레바논 공화국은 1981년 2월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하였는데, 우파 그리스도인들은 남한에 호의적인 반면 좌파 무슬림은 북한에 호의적이다.
〔문자의 발견〕 페니키아인들은 일찍부터 해양 무역업자로 유명하였다. 그리고 지중해 각지에 식민지를 세웠는데, 예를 들면 페니키아 주변의 자파(현 텔아비브야포) · 도르 · 아크레(현 아코) · 우가리트(현 시리아 공화국 라타키아 항구)를 비롯하여 아나톨리아 · 키프로스 · 북아프리카 · 스페인에도 식민지를 세웠다. 그렇지만 페니키아의 최대 공헌은 알파벳의 발견과 보급으로, 기원전 15세기 무렵 우가리트에서 알파벳 자음을 사용하였다. 이 문자 체계가 크레타 섬과 미케네에 전해져 선형(線形) B문자, 일명 미케네 문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그리스 문자의 원형이다. 페니키아 문자는 인도 서쪽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문자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유 적〕 안티레바논(Anti-Lebanon) 산맥 끝에 자리잡은 바알베크(옛 지명은 헬리오폴리스)에는 주피터(Jupiter, Iuppiter, Zeus) 신전 및 바쿠스(Bacchus, Dionysos) 신전이 있다. 바알베크에는 본래 비와 천둥과 번개의 신 하다드(Hadad)의 신전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7~서기 14) 때부터 수십 년에 걸쳐 개축하여 로마의 최고신 주피터의 신전으로 삼았다. 주피터 신전은 장방형 앞마당(104m×103m)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현관은 상부 이집트의 아스완(Assuan)에서 가져온 84개의 화강암 기둥 위에 지붕을 덮은 건물이었다. 장방형의 신전 터(87m×47m) 주위에는 고린토 양식의 기둥 54개가 있었는데(지름 2.4m, 높이 19m), 현재는 6개만 남아 있다. 이 신전은 네로 황제(54~68) 치세 때 완공되었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 때부터 제사를 지냈다.
2세기에 주피터 신전 옆에 바쿠스 신전이 세워졌다. 신전 앞뒤로는 각각 8개의 고린토 양식 기둥이, 양옆으로는 각각 15개의 고린토 양식 기둥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다. 이 신전의 원형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 레바논 ; 비블로스 ; 시돈 ; 티레)
※ 참고문헌 정양모, 《위대한 여행,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생활성서사, 1997, pp. 262~267/ 이시호, 《크리스찬이 본 중근동》, 동산출판사, 1994, pp. 453~467/ 네빈 아주 샤인 외, 김종명 역, 《레바논》, 창해, 2000, pp. 52~53. 〔鄭良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