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사카 주교는 조선 교회의 첫 일본인 대목구장이었고 일본인 성직자의 조선 교회 진출의 첫 사례이기도 하였다. 인류의 보편 교회인 가톨릭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남반부 사목 책임자로 일본인이 임명된 사실은 제국주의 시대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인사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야사카 주교의 심정도, 교구민인 조선 신자들의 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교는 착좌식 당일 "교구민이 일치 협력하여 이른바 대동아 전쟁(大東亞戰爭)을 수행하는 천황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그리고 대구교구를 위하여 만전을 기함으로써 봉공(奉公)의 지성을 다할 것을 결심하는 바입니다"라는 취임 인사를 하였다. 그는 일본인 성직자로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나, 여러모로 가해지는 일제 당국의 종교 활동에 대한 간섭과 탄압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1945년 8월 일본 제국 패전 때까지 대목구장으로 대구 대목구를 이끌었다.
8 · 15 해방으로 일본인들이 물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교구의 사목을 계속 담당하였던 하야사카 주교는 미묘한 처지에 놓이기도 하였다. 하야사카 주교는 1946년 1월 6일 병환으로 대구에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대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하야사카 주교 집안은 천주 신앙이 매우 돈독하여, 그의 형 하야사카 히사노스케(早坂久之助)는 현대 일본 가톨릭교회 사상 최초로 1927년에 나가사키(長崎) 교구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 참고문헌 柳洪烈, 《한국천주교회사》, 가톨릭출판사, 1975/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대구 본당 백년사》, 1986/ <일본 가톨릭신문>(1942). 〔李元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