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의료 협회

韓國—醫療協會

[영]The Catholic Health Associ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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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는 보수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회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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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는 보수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회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평신도 전국 사도직 단체 중의 하나.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 ·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 가톨릭 약사회 ·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가 모여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가톨릭 의료인들이 공동으로 협력하고 대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결성하였다. 2004년 6월 10일 가톨릭대학교 성의 교정 교수 회관에서 첫 합동 모임을 열어 가톨릭 의료인 협회 구성을 공식 합의하였고, 같은 해 10월 12일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인준을 받았다. 2005년 3월 4일에 수원 LG 인재니움에서 공식 출범식을 거행하였으며, 사무소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505 가톨릭 의과학 연구원 2013호에 소재한다.
①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
1975년 5월 가톨릭 대학교 부속 성모병원 간호사 약 100명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들의 전문적 자질을 향상시켜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성모병원 가톨릭 간호사회'를 결성하였다. 이 무렵 국제 가톨릭 간호 협회에서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 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의 설립을 요청하자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은 당시 성모병원 간호과장이던 이춘원(노르베르타) 수녀에게 그 뜻을 전달하였고, 그 결과 1979년 2월 성모병원 간호사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 가톨릭 간호 협회' 창립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여 5월 18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교육관에서 약 130명의 간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창립 총회에서 이춘원 수녀를 초대 회장에,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신부를 초대 지도 신부로 선임한 간호 협회는 1981년 8월에 주교 회의 인준을 받았고, 이듬해 4월에는 국제 가톨릭 간호 협회에 공식 가입하였다.
한편 한국 가톨릭 간호 협회가 발족한 후 각 교구에는 가톨릭 간호사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여, 1980년 3월에는 대구 · 서울 · 인천 · 수원 · 부산 · 대전에, 1982년 2월에는 마산과 원주, 1983년 2월에는 광주, 1985년 4월에는 청주, 1988년 5월에는 전주교구에 간호사회가 설립되었고, 1992년 4월에는 춘천, 1993년 11월에는 제주, 1995년 12월에는 안동교구 간호사회가 설립되어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 사이 간호 협회는 1992년 4월에 명칭을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로 개정하고 주교 회의의 인준을 받았다.
외적인 성장과 더불어 회원들의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는 1984년 5월 제1차 '호스피스 간호'라는 주제로 보수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보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1984년 12월부터는 회원 간의 유대 강화를 위하여 회지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보>를 창간하여 연 2회 발간하기 시작하였고, 1986년 11월에는 임종 사목에 대한 간호사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호스피스와 간호'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꾸준히 보수 교육과 워크숍을 실시한 결과, 1992년 3월에는 한국 가톨릭 호스피스 협회가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는 1994년 5월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가톨릭 대학교 성의 교정 마리아홀에서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생의 윤리와 간호'라는 주제로 보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2000년 이후에는 '인간 생명 보호'를 주제로 인간 복제, 노인 문제, AIDS 등 간호사들이 실제 간호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아울러 2001년 8월에는 제8차 국제 가톨릭 간호사 협의회 아시아 지역 학술 대회를 서울 팔레스 호텔에서 개최하였고, 2002년 7월에는 제1회 전국 간호 대학생 연합 피정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2004년 5월에는 가톨릭 대학교 성의 교정 마리아홀에서 창립 25주년 기념 전국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다. (⇦ 한국 가톨릭 간호협회)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편, 《한국 천주교 평협 30년사》,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9/ <한겨레신문>, 2001년 8월 22일자/ <가톨릭신문> 2002년 7월 14일 자 · 2005년 3월 13일자/ <평화신문 2004년 6월 20일자. [편찬실]
②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1960년대 후반, 의료 사업을 통하여 교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가톨릭계 의료 기관들은 이러한 목적을 수행할 새로운 조직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1967년 7월 30일 서강대학교에서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창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아시아 가톨릭 병원 협회 사무장이었던 인도의 통(Tong) 신부의 도움과 가톨릭 구제회(C.R.S) 캐롤(G. Carroll, 安) 몬시뇰의 노력에 힘입어 그해 9월 22일에 가톨릭 의과 대학 강당(현 명동 성당 문화관)에서 전국 가톨릭 계통의 23개 병원 대표들이 모여 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협회장에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 초대 총재에 캐롤 몬시뇰을 선출하였다.
1967년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인준된 병원 협회는 1973년 2월 10일에 '행복한 가정 연구 위원회'를 설치하고 가톨릭 가족 계획(자연 피임법)을 지도 보급하였다. 이 사업은 1975년 5월 28일 주교 회의 산하에 행복한 가정 운동 전국 협의회가 발족되면서 이관되었지만, 이후에도 불임 시술과 인공 임신 중절 반대 성명(1976.5), 낙태 자유화 입법 반대 성명 (1982.7) 등을 발표하며 생명 존중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0년 8월 31일에는 제7차 아시아 가톨릭 의학 협회 정기 총회 및 학술 세미나에 참가하여 국제 교류에도 관심을 두었고, 1983~1988년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영세민 1,760명에게 무료로 개안 시술을 시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1987년 5월 8일에는 가톨릭 의료 기관의 이념을, 이어 1991년 7월에는 의학 윤리 지침을 제정하였다. 또한 1988년에는 한일 가톨릭 의료 기술 협력 약정을 체결하여 양국 간 상호 연수생 파견, 세미나 참가, 강사 파견 등 의료 기술 향상을 위한 인력 교류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한편 병원 협회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해외 의료 선교 사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89년 8월 6~28일에 남미 에콰도르 팔마 지역으로 제1차 의료단을 파견한 이래 해마다 남미 · 아프리카 · 몽골 지역에 의료단을 파견하였고, 또한 통일을 대비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를 위해 1999년 5월부터 북한 의료 선교 지원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빛은행의 후원으로 2,220명에게 무료 개안 수술을 시행하였고,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약 120명에게 소아암 · 백혈병 의료비 지원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2001년 2월 4일에는 가톨릭 회관 대강당에서 세계 병자의 날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2004년 10월에는 새로 결성된 한국 가톨릭 의료 협회로 통합되었다. (⇦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 천주교회 총람: 1995~2003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편찬실]
③가톨릭 약사회
1982년 10월 27일부터 아시아 약학 회의(FAPA) 준비 위원 중 20여 명의 신자들은 매월 신앙 체험을 나누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변갑선(卞甲善, 치릴로) 신부의 지도하에 있던 이들은 국민 보건 향상을 위한 봉사 활동과 이를 통한 복음 전파를 위해 가톨릭 약사회를 창립하기로 뜻을 모았고, 그 결과 1983년 6월 8일에 명동 성당 문화관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매월 첫 금요일에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월례회 모임을 진행하였고, 7월에는 회원들과의 유대를 위해 <가톨릭 약사 회보>를 발간하였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결핵 환자 요양소인 시몬의 집을 방문하여 의약품과 쌀 등을 기증하였으며, 1996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수단에 지원금과 의약품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1997년 5월에는 북한 동포 살리기 운동을 후원하였으며, 1998년 1월에는 북한 결핵 환자 어린이 돕기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밖에 개국 약사를 위한 교육(월례 미사 후) · 꽃동네 진료 봉사(월 4회) · 국내 성지 순례(1년에 1~2회) 등을 실시하던 약사회는 2004년 3월 13일 임원 회의에서 한국 가톨릭 간호사 협회 ·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와 함께 한국 가톨릭 의료 협회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 가톨릭 약사회)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회 총람: 1995~2003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편찬실]
④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
1947년 4월 14일 박병래(朴秉來, 요셉)를 비롯한 서울의 가톨릭 의사들은 의료를 통한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고 의사들 간의 상호 결속을 다지기 위해 '방지거 사베리오회'를 창설하였다. 방지거 사베리오회는 매달 월례회를 통해 전교 방법을 연구하고 전교 결과를 보고하는 한편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했는데, 특히 회원들이 위험한 환자들에게 대세를 베풀도록 하여 창립된 지 1년 만에 523명이 대세를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이 의료를 통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던 방지거 사베리오회는 한국 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서울이 수복되자 '가톨릭 의료 봉사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1월에는 국방부 선무반 소속으로 '평양 전재민 무료 진료반'(平壤 戰災民 無料診療班)을 조직하여 20일 동안 6,000여 명을 진료하였다. 휴전 이후에도 방지거 사베리오회는 무의촌 진료, 병원 순례 위문 등 많은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60년대 초 활동이 부진해지면서 침체기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박병래, 김웅규(金雄奎, 프란치스코) 등을 중심으로 의사회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되어, 1965년 5월 1일 '서울 가톨릭 의사회'의 발족을 위한 제1차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서울교구뿐만 아니라 지방 각 교구에서도 의사회가 설립되었는데, 대구교구의 의사회는 1961년 10월에, 부산교구 의사회는 1968년 5월에 결성되어 농촌 지역에 있는 본당이나 공소를 대상으로 순회 진료를 실시하였다. 이와 같이 각 교구에 가톨릭 의사회가 설립되자 이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전국 단체의 창립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68년 3월 서울대교구장 서리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 마산교구장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주교와 국제 가톨릭 의사 협회 회장 마리아노 알리무롱(Alimurung)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총회에서는 윤공희 주교를 총재로,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신부를 지도 신부로 추대하였고, 김웅규를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는 마산 가톨릭 의사회가 설립되었다.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는 창립 후 국제 가톨릭 의사 협회와 아시아 가톨릭 의사 협회에도 가입하여 각국 협회와의 교류를 증진하였고, 1980년 8~9월에는 서울에서 제7차 아시아 가톨릭 의학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 총회에서 가톨릭대학교 의과 대학 조규상(曺圭常, 프란치스코) 교수와 박용휘(朴龍輝, 미카엘) 교수가 협회장과 사무총장에 각각 선출되었다. 그런 가운데 1979년에는 전주와 인천, 1980년에는 광주, 1981년에는 수원 가톨릭 의사회가 설립되었고, 1984년 5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의 방한을 기념하여 《의학 윤리》를 출간하고 출판 기념 세미나를 가졌다. 이어 11월에는 청주 가톨릭 의사회가 창립되었으며, 1987년 8월에는 해외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에콰도르 선교지에 의약품을 지원하였다. 이처럼 의학 총회 개최, 해외 선교지 약품 지원 등 대외적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함에 따라, 1988년 9월에 열린 제9차 아시아 가톨릭 의학 총회에서 박용휘 교수와 맹광호(孟光鎬, 이시도르) 교수가 각각 협회장과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989~1990년에는 에콰도르에서, 1992년과 1994년에는 케냐에서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와 함께 의료 봉사를 통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6년 11월에 열린 제11차 아시아 가톨릭 의학 총회에서는 박용휘 교수가 협회장으로 재선출되었고, 1997년부터는 에콰도르와 케냐에 이어 몽골에서도 의료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 위기 등 다양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가톨릭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과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모색해 나갔다. 그리하여 2001년 2월에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 등과 공동으로 '병자의 날(2월 11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가톨릭 의료인의 정체성 확립과 이를 통한 의료 사목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였고, 2002년 9월에는 '가톨릭 의료인의 사명과 정체성—다원화 세계 속에서의 가톨릭 정신과 윤리 구현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제21차 세계 가톨릭 의사 협회 총회 및 학술 대회를 개최하였다. 2004년 10월 한국 가톨릭 의료 협회로 통합된 후에도 의사 협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정신에 의거하여 무료 진료 및 구호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같은 해 11월에 열린 제13차 아시아 가톨릭 의사 협회 학술 대회 및 정기 총회에서는 맹광호 교수가 협회장으로 선출되었다. (⇦ 한국 가톨릭 의사 협회 ; → 가톨릭 의료 사업)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65년 5월 9일자 · 1968년 4월 7일 자/ <가톨릭신문> 1980년 9월 14일자 · 1988년 10월 2일자/ <평화신문> 1999년 8월 15일자 · 2000년 9월 10일자 · 2001년 2월 11일 자 · 2002년 9월 15일자 ‧ 2004년 12월 12일자 · 2005년 3월 13일자/ <경향잡지> 1168호(1965.7) · 1202호(1968.5)/ 《교회와 역사》 196호(1991.9)/ 《서울大敎區 教區總覽》, 가톨릭 출판사, 1984/ 《한국 천주교 평협 20년사》,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88/ 《한국 천주교 평협 30년사》,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