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조배회의 설립〕 성체 조배란 감실 안에 모셔져 있거나 현시된 성체 앞에서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기도하며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를 말한다. 성체 조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성체 현시를 통한 성체 조배는 교회 초기 때부터 시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성 베네딕도 요셉 라브르(Benedict Joseph Labre, 1748~1783)에 의해 40시간 성체 조배가 전파되면서 성체 현시도 같이 이루어졌고, 그 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성체 조배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성체 조배는 신자들 전체가 각자의 본당에서 한 것이 아니라 특정 본당이나 수도원에 위탁하여 이루어졌고, 이후에도 성체 조배는 일반화되지 못한 성체 신심의 한 형태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인 1965년 9월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회칙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를 통해 성체 조배의 중요성과 가치를 말하고 신자들이 성체 조배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성체 조배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후 1980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가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 보낸 특별 서한 '성체의 신비와 흠숭에 관하여'에서 "교회와 세계는 성체 조배를 해야 합니다. 충만한 믿음과 세상의 오류, 죄악을 기워 갚는 조배와 묵상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1982년 12월부터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낮 동안 12시간에 걸쳐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교황의 뜻에 따라 1980년 6월 13일 예수 성심 · 성모 성심 수도회의 루치아 마르틴(Lucia Martin, M.S.S.) 신부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 텍사스 주 갤버스턴(Galveston) 휴스턴(Houston) 교구의 성녀 히야친타 성당에서 본당 중심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였고, 이후 성체 조배는 미국의 여러 본당으로 확산되었다.
한편 성체 조배는 활발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던 오웬 트레이너(Owen Traynor)에 의해서도 확산되었다. 그는 쉰(F.J. Sheen) 대주교의 영향을 받아 매일 성체 조배를 하였고, 1984년에는 사도직 단체를 만들어 명칭을 '성체 조배'(Eucharistic Adoration)라고 하였다. 이 단체는 1986년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The Association of Perpetual Eucharistic Adoration)로 명칭이 바뀌었고, 1991년 6월 2일에는 교황청 평신도위원회로부터 '신자들의 보편적 국제 공립 기도 사도직 단체'로 정식 인준을 받았으며, 그 후 세계 각국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한국의 성체 조배회〕 1980년대 초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의 파렐(G. Farrel, 백) 신부는 미국의 여러 본당에서 성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본당 중심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연구하고 이를 한국 교회에 소개하였다. 성체 조배를 전파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1984년에 결실을 맺어, 1984년 5월 13일 인천교구 부평2동 성당에서 강론 후 성체 조배를 원하는 신자들의 신청을 받았는데, 당시 미사 참여자의 약 65%가 참여 의사를 표방하였다. 이에 파렐 신부는 6월 1일, '가르멜산 성모 성체회'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본당 중심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실시하였다. 부평2동 본당의 영향을 받아 인천교구의 송현동 본당, 연안 본당 등에서도 성체 조배를 도입하였고, 이후 전국 각 교구에도 성체 조배가 확산되었다.
이와 같이 각 교구 본당에서 성체 조배를 실시함에 따라, 가르멜산 성모 성체회에서는 1987년 10월 성체 조배 봉사자들을 위한 피정 및 교육을 대전교구 교육 회관에서 실시하였다. 1988년 5월에는 회의 명칭을 '가르멜산 성체회'로 개칭하고, 전국 봉사자 위원회 조직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칙 제정 및 회보 발행을 결의하였으며, 6월에는 사무실을 개설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마르틴 신부가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을 방문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때 성체 조배의 성시간을 개최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1989년 성체 대회 당시 논현동 성당에서 엠마우스 성시간을 가졌다. 성체 대회 이후 성체 조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1990년에는 일본, 중국, 사이판 등지에 성체 조배를 실시하기 위해 봉사자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한편 가르멜산 성체회에서는 1992년 추계 주교 회의에서 전국 단체 인준 및 회칙 승인을 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르멜산 성체회의 정신과 목적이 1991년에 교황청 평신도위원회로부터 인준을 받은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와 상이한 데다 회칙상의 문제도 있어 주교 회의의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파렐 신부는 1993년 1월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과 이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해결점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 김 추기경은 파렐 신부의 양해하에 교황청 평신도위원회에서 인준한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를 따르기로 하였다. 이에 서울대교구의 가르멜산 성체회를 전국 조직에서 독립 시키는 한편 명칭을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로 개칭하였다. 이 과정에서 7월에는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에 있었던 전국 성체 조배회 사무실이 수원교구청으로 이전되었다.
이와 같이 성체 조배회가 서울대교구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와 각 교구의 가르멜산 성체회로 분리되자 두 단체를 통합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에 1994년 2월 서울대교구 교구청 별관 회의실에서 두 단체의 회장단이 모여 일치를 위한 1차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명칭을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로 변경할 것과 서울대교구와 국제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의 회칙을 참고하여 회칙을 개정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수원교구를 시작으로 각 교구에서는 점차 명칭을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로 개칭하고 새 회칙을 마련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해 7월 부산에서 열린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전국 지도 신부단 모임에서 명칭 문제를 논의하고, 교구별로 주보 성인을 자유롭게 하며, 지도 신부단 회의를 1년에 두 번 할 것 등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8월 27일에는 전국 8개 교구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가 '한국 지속적인 성체 조배 봉사자 협의회'라는 명칭으로 창립 총회를 갖고 회칙을 마련하였으며 회장단을 선출하였다. 이어 8월 31일에는 대전교구청에서 제2차 지도 신부단 회의를 열어 회칙 및 회장단을 승인하고, 대표 지도 신부로 수원교구 김영옥(金榮玉, 가브리엘) 신부를 추대하였다. 지도 신부단 회의에서 회칙이 승인됨에 따라 주교 회의에 회칙 승인을 상정하였고, 1994년 10월에 열린 주교 회의 추계 회의에서 주교 회의 산하 전국 사도직 단체로 공식 인준되었다. 이후 성체 조배회에서는 11월에 회보 《성체 조배》를 창간하였고, 1995년 11월에는 사무실을 이전하여 서울대교구 성체 조배회 사무실과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 5월 26일~6월 1일에는 폴란드에서 개최된 제46차 세계 성체 대회에 회원 59명을 파견하였다.
아울러 2000년 10월에는 대희년을 맞이하여 성체 신심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자 제1회 전국 성체 현양 대회를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거행하였고, 2001년 4월에는 기도의 의미와 성체 조배의 뜻, 기도 방법 등을 설명한 《성체 조배 이렇게 해 보십시오》를 제작하여 본당에 보급하였다. 그리고 2002년 10월에는 제2회 전국 성체 현양 대회를 수원교구 미리내 성지에서 개최하였고, 제3회 대회는 2004년 5월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광장에서 거행하였다. 이처럼 성체 조배를 통해 성체 신심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한국 지속적인 성체 조배 봉사자 협의회는 2005년 현재 봉사자의 피정 및 교육에 중점을 두는 한편 많은 청년층과 청소년들도 성체 조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성체 신심)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87년 10월 18일자 · 1994년 10월 30일자 · 2000년 10월 15일자 · 2001년 4월 29일자 · 2002년 10월 13일자 · 2002년 6월 9일자 · 2004년 6월 6일자/ 《성체조배》 1(1994.11)~16호(1998.12), 한국 지속적인 성체 조배 봉사자 협의회/ 《韓國 天主敎 平協 三十年史》,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9.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