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사》

韓國天主教會史

〔프〕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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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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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사 통사(通史). 1874년 프랑스에서 상 · 하 2권으로 간행되었으며, 저자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달레(C.C. Dellet, 1829~1878) 신부이다. 서설(序說)에서는 조선의 지리 · 역사 · 제도 · 풍속 등을 개설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한국에 천주교가 수용되는 과정부터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까지를 다루고 있다.
〔저술 과정과 목적〕 1829년 프랑스의 랑그르(Langres)에서 태어난 달레 신부는 1852년 사제로 서품된 후 인도로 파견되어 사목하다가 1867년 병으로 인해 프랑스로 귀국하였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건강상 포교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본국에서 외방 전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여생을 바쳤다. 1871년에는 캐나다 등지를 방문하여 외방 전교회의 자료 수집과 신학교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고, 1872년부터 한국 천주교회사의 저술을 시작하여 1874년 《한국 천주교회사》를 간행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사' 편찬을 처음 계획한 사람은 제5대 조선 대목구장인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였다. 그는 순교자들의 전기,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의 <백서>(帛書), 정약용(丁若鏞, 요한)의 《조선복음전래사》(朝鮮福音傳來), 이기경(李基慶)의 《벽위편》(闢衛編), 《용호한록》(龍湖閑錄, 저자 불명), 《대전통편》(大典通編) 등 국한문 자료들을 수집하여 이를 프랑스어로 번역함은 물론, 위의 자료들을 근거로 <비망기>(備忘記)를 작성하는 등 1857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1862년 건강상의 이유로 편찬 작업을 포기하게 되어, <비망기>를 비롯하여 프랑스어로 번역한 모든 자료를 파리 외방전교회로 보냈다. 1872년부터 달레 신부가 외방 전교회의 고문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이 자료들을 정리하여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본 사료로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서설 부분은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와 서한 · 보고서의 내용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상권의 본문도 대부분 <비망기>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권의 경우도 전체의 5분의 1 분량인 기해 · 병오박해(己亥 · 丙午迫害) 일부 내용이 다블뤼 주교가 제공한 자료와 <비망기>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사》가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조선어' 항목과 같은 서설의 일부 내용과 하권의 기해 · 병오박해 일부를 제외한 내용은, 달레 신부가 조선 선교사들과 조선인 성직자들의 서한 · 보고서에 의거하여 독자적으로 저술한 것이다. 그리고 <비망기>와 선교사들의 서한에 산재해 있던 내용들을 종합하여 서설의 내용을 항목별로 체계화한 것이나 본문에서 시대를 구분하고 편 · 권 · 장으로 분류하여 서술한 것 또한 그의 업적이다.
달레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섭리적인 기원(起源)과 빠른 발전,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활동과 순교의 무대가 되었던 이 나라, 박해를 당하는 천주교인들의 모습 등을 알리고자 하였고,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이름을 빛낸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행적이 잊혀지지 않고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총을 보여 줌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이바지하고 당시 포교 지방과 선교사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내 용〕 《한국 천주교회사》는 서설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은 다시 2편으로 나뉘어 제1편은 1592년부터 1831년 조선 대목구가 설정되기 전까지, 제2편은 그 이후부터 1871년 신미양요까지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서설과 본문의 제1편은 상권에, 본문의 제2편은 하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편은 다시 세분되어 제1편은 4권 9장(章)으로, 제2편은 5권 26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서설에는 조선의 지리 · 역사 · 왕실 · 정부 조직 · 사법 제도 · 과거와 교육 제도 · 조선어 · 사회 신분 · 여성의 지위 · 가족 제도 · 종교 · 조선인의 성격 · 오락 · 주거와 풍속 · 산업과 국제 관계 등 총 15개 항목에 걸쳐 한국학(韓國學) 개설이 소개되어 있으며,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1편 : 1권(1592~1793)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의 입교와 순교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의 전사(前史)와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과정 및 신해박해(辛亥迫害) 등을 다루고 있다. 2권(1794~1801) :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의 입국, 전교 활동 및 순교, 그리고 신유박해(辛酉迫害)의 발단 등을 다루고 있다. 3권(1801~1802) : 주문모 신부 순교 이후부터 황사영의 <백서> 사건, 신유박해의 종식까지를 다루고 있다. 4권(1802~1831) : 신유박해 이후 교회 재건 운동 및 성직자 영입 운동, 1815년 을해박해(乙亥迫害), 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 1831년 조선 대목구의 설정과 초대 감목 임명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2편 : 1권(1831~1839) : 조선 대목구 설정 이후 브뤼기에르(B. Bruguière, 蘇) 주교의 입국 노력,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 모방(P.P. Maubant, 羅伯多祿) 신부, 샤스탕(J.H. Chastan, 鄭牙各伯) 신부 등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의 입국과 전교 활동을 다루고 있다. 2권(1839~1840) : 기해박해 발발과 선교사 · 신자들의 순교 내용을 다루고 있다. 3권(1840~1853) : 페레올(J.-J.-J.-B. Ferréol, 高) 주교와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입국, 1846년의 병오박해,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활동, 페레올 주교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4권(1853~1864) :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의 입국에서 철종(哲宗, 1849~1863)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5권(1864~1866) : 고종(高宗, 1863~1907) 즉위 후의 교회 상황, 병인박해(丙寅迫害), 병인양요(丙寅洋擾), 신미양요(辛味洋擾) 등을 다루고 있다.
〔번역본과 영향〕 《한국 천주교회사》는 간행 후 즉시 호응을 얻어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등지에서 번역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885년부터 로베르(A.P. Robert, 金保祿) 신부, 리우빌(L.N.A. Liouville, 柳達榮) 신부, 보두네(F.X. Baudounet, 尹沙勿) 신부 등 선교사들이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여 1901년에 거의 완역되었다. 그러나 이 번역물은 간행되지는 못하고, 1906년부터 1913년까지 〈보감〉(寶鑑)과 《경향잡지》(京鄕雜誌)에 연재되기만 하였다. 1956년부터 다시 새 번역문이 《경향잡지》에 연재되었으나 완역에 이르지 못한 채 1974년에 중단되었다. 단행본으로는 서설 부분만이 《조선교회사 서설》(朝鮮敎會史序說, 이능식 · 윤지선 공역, 1947), 《조선교회사서론》(朝鮮敎會史序論, 정기수 역, 1966)으로 간행되었고, 1976년에 이르러서야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신부와 불문학자 안응렬(安應烈)에 의해 번역 · 주해 작업이 시작되어 1979년에 상권이, 1980년에 중 · 하권이 간행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사 통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1863년 다블뤼 주교가 수집한 원사료(原史料)들이 화재로 소실된 상황에서 그 사료적 가치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서양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서양 국가들의 한국관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국내에서는 통사류의 한국 천주교회사 저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韓國天主教會史》 上 · 中 · 下,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 1980/ 최석우, <달레著 한국천주교회사의 형성과정>, 《한국교회사의 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김수태,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교회와 역사》 300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