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모녀는 자신들을 찾아온 이경이(李璟伊, 아가타)와 함께 수계 생활을 하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배교자 김순성(金順性)의 밀고로 7월 17일(음력 6월 7일)에 이경이와 여종 1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순성은 이때 권진이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유혹하였지만, 그녀는 유혹을 뿌리치고 여종과 함께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탄로나면서 좌포장(左捕將) 이완식(李完植)이 파직당하고 포졸들이 엄형을 받게 되었으며, 권진이는 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한영이는 딸과 이경이와 함께 모진 형벌을 받은 후 12월 29일(음력 11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먼저 순교하였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1840년 1월 31일(음력 1839년 12월 27일) 당고개(堂峴)에서 순교하였다. 세 명 모두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권진이 ; 기해박해 ; 이경이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기해일기》/ 《承政院日記》/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