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이 (1784~1839)

韓榮伊

글자 크기
12
남편에게 임종 대세를 주는 한영이.

남편에게 임종 대세를 주는 한영이.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성녀 권진이(權珍伊, 아가타)의 모친. 가난한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성장한 뒤 권 진사(進士)라는 비신자와 혼인하여 딸 권진이를 두었다. 비신자였던 남편 역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함께 교리에 따라 살다가 대세를 받고 죽었다. 과부가 된 한영이는 딸 권진이와 함께 교우 집에 부쳐 지내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남편의 유언에 따라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딸 권진이는 가난한 교우 청년과 혼인하였다가 수정(守貞)할 결심을 하고는 유 파치피코(余恒德) 신부에게 결혼을 파기하여 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았고, 이후 신부의 처소를 돌보았으나 뜻하지 않게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모방(P.P. Maubant, 羅伯多祿) 신부가 입국한 뒤 모친에게 돌아와 전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며, 추문을 보속하기 위해 순교를 결심하였다.
얼마 뒤 모녀는 자신들을 찾아온 이경이(李璟伊, 아가타)와 함께 수계 생활을 하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배교자 김순성(金順性)의 밀고로 7월 17일(음력 6월 7일)에 이경이와 여종 1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순성은 이때 권진이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유혹하였지만, 그녀는 유혹을 뿌리치고 여종과 함께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탄로나면서 좌포장(左捕將) 이완식(李完植)이 파직당하고 포졸들이 엄형을 받게 되었으며, 권진이는 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한영이는 딸과 이경이와 함께 모진 형벌을 받은 후 12월 29일(음력 11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먼저 순교하였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1840년 1월 31일(음력 1839년 12월 27일) 당고개(堂峴)에서 순교하였다. 세 명 모두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권진이 ; 기해박해 ; 이경이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기해일기》/ 《承政院日記》/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