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형 (1799~1846)

韓履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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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여 맨발로 서울까지 끌려가는 한이형.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여 맨발로 서울까지 끌려가는 한이형.

병오박해(丙午迫害)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회장. 일명 '병심'.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교하였고, 이후로 진실한 통회의 삶을 살면서 신심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20세 때 교우 처녀와 혼인한 후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현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로 이주해 살면서 빈궁한 이들에게 애덕을 베풀고,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는 열심한 헌신과 덕행으로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 입국 후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46년 5월(음)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이 은이 마을로 들이닥쳐 한이형과 가족 모두를 체포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내 놓아 주고 한이형만을 대들보에 매달아 심한 매질을 하였으며, 주리형을 가한 뒤 서울로 압송하였다. 이때 포졸들이 그를 말에 태워 가려 하였으나, 이를 한사코 거절하고 맨발로 끌려갔다. 이것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였다. 서울로 압송된 후에도 다시 심한 매질을 당했으며, 1846년 9월 20일(음력 8월 1일) 최후로 곤장 70도를 맞고 6명의 교우들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병오박해)
※ 참고문헌  <페레올 주교의 1846년 11월 3일자 서한>,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 vol. 577/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하,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