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권 (1836~1866)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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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운영비 마련을 위해 장작을 내다 파는 한재권.

공소 운영비 마련을 위해 장작을 내다 파는 한재권.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혹은 베드로). 본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원익(元益, 혹은 원여). 아버지 한언적(韓彥蹟, 도미니코)과 어머니 성주 배씨의 맏아들로 1836년(혹은 1829년) 충청도 진잠(혹은 금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접한 그는 장성한 후 서 막달레나와 혼인하였으며, 회장 소임을 맡기도 하였다. 부친 및 형제들과 함께 완주군 비봉면 다리실로 이사하였다가 이어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로 옮겨 살던 중, 병인박해(丙寅迫害)가 발발하였다. 이에 1월에 다른 마을로 피신하여 3월(음)까지 숨어 지내다가 다시 돌아와 그해 12월 5일(혹은 4일) 손선지(孫 베드로), 정문호(鄭 바르톨로메오)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진영에 갇히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뇌물을 써서 아들을 석방시키고자 하였으나, 그는 배교를 거절한 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유해는 오사현 등에 의해 형장 근처에 묻혔다가, 1867년 1월 그믐(음)경 손선지의 아들인 손순화(요한) 등에 의해 다리실 근처 시목동으로 옮겨졌고, 그 후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다리실의 손선지 성인 곁으로 이장되었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諡福) 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 한원서 ; → 병인박해 ; 손선지)
※ 참고문헌  《치명일기》(765 · 771번)/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현대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