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 함열 · 용안 · 임피 지역은 박해 시대부터 많은 신자들이 관군의 눈을 피하여 이주하여 살던 곳이었다. 특히 함열의 용왕골은 비교적 규모가 큰 공소로 블랑(G.-M.-J. Blanc, 白圭三) 신부가 1878~1880년 박해를 피해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리우빌(L.N.A. Liouville, 柳達榮) · 두세(C.-E. Doucet, 丁加彌) · 조스(J.B. Josse, 趙) 신부 등이 이 지역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 사목을 담당하였다. 1884년 <교세 통계표>를 보면 두세 신부가 리우빌 신부를 도와 용안 동지뫼를 사목 방문한 기록이 나오는데, 동지뫼는 안대동과 접해 있는 곳으로 1896년부터는 안대동 공소로 기록되었다. 안대동 공소는 1897년 나바위 본당이 설립되자 나바위 본당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는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제대로 성사 생활을 할 수 없던 익산이나 임피 아래쪽 지방에 있는 신자들을 위하여 본당을 신설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그는 신부가 거처할 만한 공소집이 있는 용안이나 안대동이 본당을 신설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1910년 10월 19일 안대동 본당이 설정되고 초대 주임으로 서병익 신부가 임명되었다.
〔안대동 본당 시대〕 서병익 신부는 나바위 성당으로부터 11개의 공소와 신자 1,088명을 인계받고 안대동 공소로 사용하던 집을 임시 본당으로 사용하였는데, 외교인들의 입교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개종이 이어졌으며 많은 냉담자들이 회두하였다. 하지만 서 신부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평안북도 의주 본당으로 전임되고, 이후 이상화 신부와 페셸 신부가 차례로 부임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결국 페셸 신부의 전임 이후 본당은 폐쇄되어 나바위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한편 1914년 4월 부 · 군 폐합으로 용안현이 전북 익산군에 병합되어 안대동 본당의 소재지명은 전북 익산군 함열면으로 개칭되었다.
1921년 6월 파르트네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그는 10월에 나바위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안대동 본당은 다시 나바위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안대동 지역의 신자들은 본당 신부를 다시 모셔오기를 갈망하였고, 이를 위해 특별 기도를 바치는 등 꾸준한 노력을 보였다. 그 결과 1938년 5대 주임으로 허일록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어 6대 주임으로 재부임한 서병익 신부는 1941년 말 로마에 <교세 통계 보고서>를 보냈는데, 일제는 이것을 스파이 활동이라 규정하고 서 신부를 구속하였다. 이후 주임 신부들의 잦은 이동과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본당은 침체기에 빠졌다.
1951년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남호 신부는 침체되어 있던 본당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성당 벽을 벽돌로 쌓아 외관을 갖추고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삼종을 치는 열의를 보이며 교우들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1955년 봄에는 장선리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주일학교를 시작하였으며, 1957년에는 익산군 함열 역전 와리에 소재한 심상소학교 건물(100평)과 임야 3,000평을 매입하였다. 이 일은 이후 안대동 본당을 함열로 옮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교구에서는 안대동 본당이 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함열읍으로 본당을 이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안대동 본당 신자들의 반대가 완강하자 교구 당가이던 김이환 신부와 박성운 · 이상화 신부 등이 김현배(金賢培, 바르톨로메오) 교구장의 편지를 가지고 와 송 신부와 교우들을 설득하여 본당 이전에 대한 승낙을 얻었다.
〔함열 본당 시대〕 12대 주임 김영구 신부는 심상소학교 건물을 임시 성당으로 개조하고 1959년 1월 본당을 이전하며 본당명도 함열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김 신부는 함열로 이전한 후 바로 성당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6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되어 1959년 10월 29일 김현배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1960년 12월 함열여자중학교의 가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2월 학생을 모집하여 4월에 개교하였다.
13대 주임 김반석 신부는 부임 직후 구호 물자를 이용하여 웅포 하천 부지 개간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사업을 완료하지 못하고 고산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그런데 이 개간 사업 문제로 본당이 단체벌을 받아 1년간 주임 신부 자리가 공석이 되며 본당은 세 번째로 나바위 본당 소속 공소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곧 14대 주임으로 박성운 신부가 부임하여 개간 사업을 마무리하고 35,000여 평의 농장을 마련하였으며, 1965년 11월에는 웅포 공소 강당 준공 및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65년 3월 사랑방을 수녀원으로 개조한 성체회 분원이 마련되고, 1967년 10월에는 사도회가 발족되었다.
15대 주임 김종택 신부는 1969년 3월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16대 주임 박진량 신부는 본당 관할 내에 있는 나환우 정착촌인 상지원 공소 건물을 1971년 8월에 준공하였다. 18대 주임 서석구 신부는 1978년 복사회 · 성모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1981년 11월에는 상지원 공소를 지원하기 위해 신자들이 장학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9대 주임 안복진 신부는 1983년 4월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의 집전으로 상지원 공소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1월에는 사제관을 개조한 수녀원과 신축 사제관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20대 주임 서석기 신부는 부임 직후 요셉회 · 밀알회 등의 사도직 단체를 조직하였으며, 21대 주임 양재철 신부는 '병인의 나음' 쁘레시디움을 비롯한 7개의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 2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교동 신부는 농촌의 바쁜 일손을 돕고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1992년 12월 익산 시청으로부터 어린이집 개원을 승인받아, 즉시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2월 '성심어린이집' 축복식을 갖고 3월에 첫 입학식을 가졌다.
23대 주임 양경배 신부는 1997년 7월 교육관과 수녀원을 건립하고 축복식을 가졌으며, 1998년 2월에는 어린이집 신관 증축 공사를 마치고 축복식을 가졌다. 24대 엄기봉 신부는 본당과 교육관 및 어린이집 주변 조경 사업을 1998년부터 2년여에 걸쳐 실시하였으며, 25대 이사정 신부는 2003년 전체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26대 강명구 신부는 2005년 3월부터 1개월간 사제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현재 가정 공동체의 일치와 단체 활동을 통한 신앙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안대동 본당 ;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9.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