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2월 3일, 당시 전주교구 관리국장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 신부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가 농촌 지역 사회 개발 사업을 위해 지원해 준 자금 1만 달러로 익산군 팔봉면 월성리 산 180번지에 위치한 전라북도 종축장 52,672평을 매입하였다. 그 뒤 해성중학교(현 해성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던 사미스트회 소속의 오스트리아 출신인 헤이거(G. Hager, 하재홍) 신부의 주선으로 '가톨릭 경제 인도주의 협조회'(CCDEH)가 모범 농장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곳에 양돈 · 양계 · 한우 축산과 축산물 가공 기술을 교육하는 농촌 종합 기술 센터를 세워 햄, 소시지, 버터 등 축산 가공품을 생산할 계획이었고,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서는 5만 달러를 책정해 두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처음에 계획하였던 사업이 모두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지는 못하였다.
한편 1961년 초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 농촌 지역 사회 개발 협조처'가 전주교구에 진출하여 폴 헬마리(Paul hermary) · 마르크 레폴(Marc Revol) 등이 농장 관리자로 일하면서 잡초로 뒤덮인 땅을 개간하여 밭으로 일구다가 그해 7월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63년 7월까지는 독일인 한스가 농장 관리를 맡아 개간 사업을 계속 실시하였으며, 그 후 1966년 7월까지는 한국인 이창수가 개간 사업을 지속하여 뽕나무 밭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71년 5월까지는 인보 성체 수도회에서 농장 관리를 맡아 뽕나무 밭 조성을 완료하고 잠실(蠶室)을 건축하여 양잠 사업을 하면서 양계와 양돈 사업도 병행하였다. 그리고 1971년 5월부터 2005년 현재까지는 김문곤이 농장을 맡아 관리하고 있다. 해바라기 농장에서는 그동안 양잠 · 양계 · 양돈 사업 및 한우 축산 사업과 정원수 · 조경수 · 가로수 등을 기르는 묘목 재배 사업을 전개하면서, 농과 대학 및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현장 실습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이루지지 않아 제반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현재 농장장은 전주교구청 관리국장 신부가 맡고 있으며, 농장의 총면적은 1980년에 글라라 관상 수녀회에 기증한 부지 3,000평과 1984년에 작은 자매의 집 부지로 사용한 5,000평 등을 제외한 46,216평(국유지 3,530평 포함)으로 각종 묘목을 재배하여 교구에 공급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 참고문헌 김진소, 《전주교구사》 I ·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장정란,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한국가톨릭대사전》 9권, 한국교회사연구소, 2002/ ──, <한국 전쟁과 외국 가톨릭 교회의 전쟁 복구 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 천주교회사의 성찰과 전망》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 〔徐鍾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