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본당

解放村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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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 1-1118 소재. 1954년 10월 말에서 12월 13일 후암동 본당으로부터 분할 설정되었으며, 설립 당시 명칭은 해방동 본당이었다가 1977년 해방촌 본당으로 바뀌었다. 주보는 성가정. 관할 구역은 용산동 2가, 이태원 2가, 후암동 일부. 〔교 세〕 1955년 535명, 1976년 2,041명, 1980년 2,115명, 1985년 2,711명, 1990년 3,227명, 1995년 2,246명, 2000년 2,512명, 2003년 2,299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근(金永根) 베드로(1954.11~1957.7), 2대 장근실(張根實) 비도(1957.8~1960.8), 3대 유한구(柳漢九) 필립보(1962.9~1967.8), 4대 이석충(李錫忠) 요한(1967.8~1969.3), 5대 윤병희(尹炳熙) 바오로(1969.3~1970.1), 6대 남영희(南永喜) 이시도로(1970.1~1971.5), 7대 이종환(李鍾煥) 미카엘(1971.5~1976.6), 8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도(1976.6~1981.1), 9대 김대성(金大星) 바오로(1981.1~1986.3), 10대 장강택(張康澤) 필립보(1986.3~1990.2), 11대 김태수(金泰洙) 요셉(1990.2~1994.2), 12대 강권수(姜權秀) 마티아(1994.2~1999.3), 13대 서춘배(徐春培) 아우구스티노(1999.3~2002.9), 14대 이재철(李載哲) 요셉(2002. 9~현재).
한국 전쟁 이후 해방촌 지역은 피난을 갔다 돌아온 사람들과 월남한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들 중 신자도 적지 않았다. 이에 이 지역 신자들은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우회 · 부인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등 본당 설립을 추진해 나갔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당시 해방촌 지역을 관할하던 동자동(현 후암동) 본당의 김효신(金孝臣, 마티아) 신부는 본당 분할에 대비하여 모은 70만 환을 보조비로 제공하는 동시에 건축 자재를 원조받을 수 있도록 미8군 부대도 소개해 주었다. 그리하여 1954년 말 보조비와 가톨릭 구제회(C.R.S.)의 구호 물자 판매 대금을 합쳐 용산동 2가의 500평 부지(현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고, 11월에 김영근 신부가 부임하면서 해방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아직 성당이 건립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김 신부는 박의화(바오로)의 집 윗방을 숙소 겸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1955년 봄부터 성전 및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고, 부활절부터는 앞마당(현 성모상 위치)에 천막을 설치하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성당은 11월에 준공하여 이듬해 2월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아울러 5월에는 사제관을 건립하고 11월에는 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서서히 본당의 기틀을 마련하여 나갔다.
1957년 10월 2대 주임 장근실 신부는 이전에 구입한 성당 근처 박의화의 가옥을 수리하여 주일학교 교실과 사무실로 사용하였고, 이듬해 6월에는 성모상 제막식을 거행하였으며, 10월에는 본당의 첫 번째 레지오 마리애인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였다. 또한 1959년 5월부터 성당 부근에 급식소를 설치하여 배급을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입교하였다. 그리고 1960년 초부터 이태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8월 이태원 본당을 분할하였다.
장근실 신부가 이태원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전임된 후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신부와 나상조(羅相朝, 아우구스티노) 신부, 벨레로스(J. Bellerose, 배유선) 신부가 차례로 주임 신부 대리로 파견되었다가, 1962년 9월 유한구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유 신부는 1963년 5월 사제관을 증 · 개축하였으며, 1965년 8월에는 종을 봉헌하였고, 이태원2동 지역을 다시 이관받았다. 이어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석충 신부는 1967년 12월 원선시오회(현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설립하였고, 이듬해 10월에는 성전 재건축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2월 인사에서 성모병원 사무처장을 겸하게 되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을 위하여 성모병원 극빈자 투약소에서 무료 투약 및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5대 주임 윤병희 신부는 1969년 6월 본당 주보를 발간하였고 10월에 신축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미사는 성당이 완공될 때까지 주일학교 건물에서 봉헌하였다.
6대 주임 남영희 신부는 1970년 5월 본당 운영 위원회(이듬해에 사목 위원회로 개편)를 결성하고 6월에는 지상 2층의 성당을 완공하여 그해 10월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11월에는 연령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7대 주임 이종환 신부 재임기인 1971년 9월부터는 서울 성가 소비녀회에서 주말마다 수녀를 파견하기 시작하였고, 1973년 1월에는 본당 주보를 월보로 개편하면서 제호를 <성가정 성당>으로 정하였다. 1975년 7월에는 사제관을 철거한 뒤 8월부터 성당 증축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2월에는 사제관을 준공하였다. 이어 1976년 3월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여 서울 성가 소비녀회의 정식 분원을 설치하였고, 4월에는 증축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8대 주임 최익철 신부는 1976년 7월 본당 월보를 다시 주보 <해방촌>으로 개편하였으며, 1977년 3월에는 주일학교 교실을 확장하였다. 이 무렵 본당 명칭도 해방동 본당에서 해방촌 본당으로 바뀌었다. 또한 1978년 2월에는 본당 구역을 개편하여 30개 반을 25개로 줄였고, 7월 초에는 성당 내부 개수 공사를, 1979년 5월에는 활동이 부진하였던 청년회를 정비하여 재발족하였다.
1981년 1월에 부임한 9대 주임 김대성 신부는 2월 사목 위원회를 사목 협의회로 개편하였으며, 3월에는 463호를 끝으로 본당 주보 <해방촌>을 <서울 주보>에 통합하였다. 이어 1983년 4월에는 본당 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이듬해 1월에는 사목 협의회를 개편하여 부회장직을 운영 부분과 재정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6월에는 성당 증 · 개축 공사를 시작하여 12월에 준공식을 가졌고, 1986년 1월에는 사목 협의회에 영성분과를 신설하였다.
10대 주임 장강택 신부는 1986년 8월 본당 내 구역과 반을 행정 구역 기준으로 재조정하였으며 1987년 2월에는 사목 협의회의 여러 분과를 개편하였고, 3월에는 교육관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5월에 완료하였다. 이때 장 신부는 4월 27일부터 5월 4일까지 명동 성당에서 개최된 '민주화 단식 기도'에 참가하였으며, 9월부터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청년 월례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11대 주임 김태수 신부는 1990년 6월 본당 장학회를 설립하여 장학 사업을 실시하였고, 9월에는 주일 오후 7시에 청년 미사를 신설하였다. 또한 1991년 1월에는 사목 협의회에 노인분과와 성전 부지 특별위원회를 신설하였으며, 9월에는 교육관과 지하 강당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2년 1월부터는 토요 특전 미사를 봉헌하였고, 1993년 8월에는 성모상 봉헌 및 제막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7개 구역 42개 반을 9개 구역 61개 반으로 개편하였다.
12대 주임 강권수 신부는 1994년 10월에 용암초등학교에서 제1회 해방촌 한마음 잔치를 거행하였고, 1997년 8월과 9월에는 이태원 지역과 후암동 지역 반 · 구역을 개편하였으며, 이듬해 4월에는 본당 최초로 사목 협의회 회장을 신자들의 투표로 선출하였다. 13대 주임 서춘배 신부는 1999년 9월에 '성가정 노인대학'을 개교하였으며, 11월에는 사목 협의회에 사회 사목 분과와 청년 분과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2001년 6월에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그룹 홈 '은빛자리'를 용산 2가동에 개소하였으며, 11월에는 사목 협의회의 사회 복지 분과를 사회 사목 분과에 통합시켰다. 그 사이 9월부터는 4차례에 걸쳐 소공동체 활동을 견학하기 위하여 일본 사제단이 본당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4대 주임 이재철 신부는 2002년 12월 김장 한 포기 나눔 운동을 벌여 불우한 이웃을 도왔으며, 교무금 13개월 납부 운동도 실시하였다. 또 2003년 11월에는 사목 협의회를 개편하여 청소년 분과와 청년 분과를 통합하였고, 이듬해 1월에는 본당 설정 50주년 기념 묵주 기도 100만 단 봉헌 운동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2005년 4월에는 해미 성지에서 본당 설정 50주년 기념 전 신자 성지 순례를 거행하였고, 11월에 《해방촌 본당 50년사》를 발간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후암동 성당 사목위원회, 《두텀바위 - 후암동 본당 30년사》, 천주교 후암동 교회, 1979/ 서울대교구 해방촌 본당, 《해방촌 본당 50년사》, 2005.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