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및 설립 목적〕 해양 사목은 1920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지방의 아서 개논(Arthur Gannon), 피터 앤슨(Peter Anson) 등 헌신적인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되어 도널드 매킨토시(Donald MacKintosh) 신부의 사목적 배려로 꾸준히 발전하였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바다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선원들에게 교회가 관심을 가져 주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한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교황에게 보고하고 강복을 청하였다. 당시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답신을 통해 이들의 사적인 활동을 전세계의 모든 항구로 확산시키라고 격려하였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헌신하게 되었다.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하였다"(마태 25,35)라는 말씀을 따른 이 평신도 단체의 봉사와 노력으로 해양 사목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 선원들에게 친절 · 환영과 우정을 전하는 교회의 손길이 되었다. 해양 사목은 해양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해양인의 신앙과 복지를 증진하며 해양인 간의 친교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선원들이 복잡한 입국 절차를 거쳐 교회로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일선 사목자가 직접 부두와 선박을 방문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선원을 격려하고 환영함으로써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1997년 1월 자의 교서 <아포스톨리체 카리타티스>(Apostolicae Caritatis)를 발표하여 해양 사목의 기본 방향과 내용 및 특성을 규정하고 21세기 해양 사목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현재 해양 사목은 전세계 약 100개국에 설립되어 있으며, 전세계의 교구장들은 사제 · 부제 또는 평신도를 담당자로 임명하여 각 항구의 여건에 따라 선원들을 위해 일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 해양 사목의 시작〕 한국의 해양 사목은 1978년 부산에서 평신도인 박숙자(요세피나)의 활동을 시작으로 1988년 인천, 1999년 울산 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박숙자는 1978년 독일의 브레멘하벤(Bremenhaven)과 함부르크(Hambrug)에서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 선 원 클럽)의 활동을 보고 귀국하였으나, 한국에는 해양 사목이 부재한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로마 교황청이 부산교구에 공문을 보내어 해양 사목 활동을 요청하였고, 그리하여 부산교구장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는 1978년 5월 29일 각 본당에 선원 가족의 실태를 파악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어 담당자로 박숙자를 임명하고 사무소는 현 가톨릭 센터 뒤에 있는 고등부 셀 교실에 마련하고 6월 1일자로 활동을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한국에서의 해양 사목 활동은 한국 선원들에게 가족 문제를 상담해 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해양 사목 활동자는 자원 봉사자라는 인식 전환을 위해서 박숙자는 부산교구 주보를 통해 해양 사목 활동을 알렸으며, 1979년부터는 부산교구 총대리였던 서공석(徐公錫, 세례자 요한) 신부가 메리놀 병원에서 해양 가족들과 함께 자원 봉사자 모임을 시작하였다. 초기 해양 가족 모임은 주로 그룹 상담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선원이 휴가 시에는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졌다. 또한 경남 산청 · 거제 소록도 등의 나환자들을 방문하는 등 외적으로 보기에 해양 사목 활동은 항상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과 연계되어 있었다.
1979년 해양 사목 지도 신부로 임명된 파이퍼(D.L.Pfeiffer, 파명건) 신부는 부임 직후 부두에 나가 선원 클럽(seaman's club)에서 성공회 신부와 접촉하면서 외항 해양 사목을 시작하였다. 1982년에는 부산교구 가톨릭 센터가 준공되어 센터 7층 전체를 해양 사목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선원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주로 메리놀 병원에서 해양 가족 정기 모임을 갖던 파이퍼 신부가 1984년 본국으로 돌아가자 가톨릭 센터의 해양 사목용 시설은 관리자 없이 방치되었다. 하지만 박숙자를 중심으로 하는 내항의 평신도 해양 가족 모임은 계속되었으며, 1986년부터는 메리놀 병원에서 자원 봉사자와 함께 해양 사목이 계속되었다.
〔한국 해양 사목의 발전〕 약 3년간 지도 신부 없이 메리놀 병원을 중심으로 한 자원 봉사 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해양 사목은, 1987년 2월 아귈라스(P. Arguillas, 길반석) 신부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주로 전체 모임의 방법을 택하였던 파이퍼 신부와는 달리 아귈라스 신부는 방이나 사무실에서 소규모로 만나는 사목 방법으로, 한동안 침체되었던 해양 사목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1988~1989년 해운 산업이 사양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선원들이 바다를 떠나 배에서 내리게 되자 생활고 등으로 인한 가정 불화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귈라스 신부는 하선 선원들을 위한 활동들을 집중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1989년 2월에는 해양 사목의 활성화와 조직적 체계화를 위하여 해양 사목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이 협의회는 같은 해 7월 성공회의 선원 선교회 및 프로테스탄트의 선원 선교회 그리고 한국 외항 선교회와 함께 부산 크리스찬 해양 연합회(PUCMA)를 결성하여 종교 간의 연대 협력을 통해 그 목적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해양 사목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 1988년 7월에는 항만에 종사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을 기반으로 하여 항만 사도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991년 2월부터 전담 사제가 파견됨에 따라 인천 지역에서도 선원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귈라스 신부는 1990년 4월 해양 사목 담당자를 돕고 해양 사목에 평신도를 적극 참여시키고자 해양 사목 자문위원회를 조직함과 동시에 해양 사목에 한국 선원 가족을 참여시키고 이들에게 해양계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알리고자 해양 가족회 모임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4월에는 해양 가족의 친교와 영성 지도를 위해 해양 가족 어머니회를 조직하고 월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어 7월에는 선원의 날을 제정하고 '제1회 선원의 날' 행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해마다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11월에는 감천과 신선대에 선원 서비스 센터를 설립하고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또한 1993년 6월에는 외국어 봉사를 할 수 있는 '바다의 별 봉사자회'가 조직되어 외국인 선원들에 대한 지원이 한층 강화되었다.
해양 사목의 기틀을 다진 아귈라스 신부의 뒤를 이어 1995년 3월 파라돌라(M. Paradola, 파민교) 신부가, 이듬해 2월에는 배상복(裵相福, 이냐시오) 신부가 해양 사목 지도 신부로 부임하여 활동하였으며 7월에는 가톨릭 센터 5층에 해양 노동 상담소가 개설되었다. 1997년 2월 안창호(安昌浩, 발타사르) 신부 부임 이후 해양 사목 활동은 점차 조직화 ·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안 신부는 부임 이듬해 2월 한국 해양 수산 연수원과 한국 해양대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4월에는 해양 사목 월보인 《가톨릭 해양 소식》을 창간하였다. 10월에는 해양 사목 후원회를 결성하여 해양 사목 활동을 위한 재정 기반 형성에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울산 지역에도 1999년 2월 해양 사목 전담 신부가 임명되어 별도의 사목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이듬해 8월에는 해양 사목의 원활한 활동 전개를 위하여 자원 봉사자회가 조직되었다. 한편 부산 크리스찬 해양 연합회는 7월부터 부산 국제 선원 복지회관 5층에 세계 각국의 선원을 위한 휴식 및 복지 공간인 부산 국제 선원 센터(Seafarers' Centre)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2001년부터는 해양 사목 협의회는 선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고 사랑과 위안을 주고자 해양 가족들을 대상으로 '바다로 편지쓰기' 콘테스트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으며, 9월에는 '선원 복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선원 복지 정책의 수립을 촉구하여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듬해 10월에는 해양 사목 25주년 기념 사업의 전초 작업으로 해양 사목 24년사인 《부산 해양 사목이 걸어온 길》을 발간하였다.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자원 봉사의 가치와 필요성이 널리 인식되어 있지 않고, 특히 외국인을 가정에 초빙하는 경우가 드물어 문화적 배타성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유교적 문화 때문에 선원에 대한 사회적 천시 내지 기피 풍조가 만연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위험성 · 고립 무원성 · 이가정성(離家庭性) · 이사회성(離社會性) 등과 같은 해상 노동 고유의 특수성 때문에 선원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에 해양 사목 협의회에서는 21세기에는 소외되고 그릇되게 인식되어 온 선원들의 종교 · 사회 · 문화 및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선원의 역할 · 기능 및 가치가 널리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목 활동을 전개하여 한국 사회의 선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부산 해양 사목이 걸어온 길》, 천주교 부산교구 해양 사목 협의회, 2002. 〔安昌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