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현 원평) 본당 2대 주임이던 이경우(李慶雨, 가브리엘) 신부는 1950년대 후반 본당 관할이던 해평 지역을 방문한 후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내다보고 교리 교사를 파견하여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해평 공소가 발족되었는데 이후 공소는 잠시 칠곡 본당에서 관할하다가 1964년 선산 본당으로 이관되었으며, 1966년에는 선산 본당 초대 주임 뮐러(A. Müller, 毛安世) 신부가 현재의 본당 부지를 매입하고 이듬해 사택 겸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969년 11월 7일 해평 공소는 해평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렌하르트 신부가 부임하였다.
렌하르트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 8월 준공식을 거행하였고, 이후 17년간 해평 본당에 재직하며 본당 운영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1986년 왜관 감목 대리구가 폐지되어 본당이 대구대교구로 편입되자 교구 소속 신부들이 부임하기 시작하여, 2대 주임으로는 신암동 본당 보좌였던 김영우 신부가 부임하고 이어 3대 주임으로는 류승기 신부가 부임하였다.
류 신부는 부임 직후 냉담자 회두를 위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그 첫번째 실천 방안으로 1988년부터 반 모임 활성화를 시도하였다. 6대 주임 박진수 신부는 본당 관할 공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장천 공소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1993년 공소 지역 내 가두 선교를 펼쳤으며, 7대 주임 오창수 신부는 1994년 사제관과 장천 공소 사택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9대 주임 이진호 신부는 부임 직후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주말 수녀 파견을 요청하였고 그에 따라 매주 토요일 2명의 수녀가 본당과 장천 공소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이들은 이후 약 1년 동안 주말에 본당 내 사택에서 머물며 전례 및 주일학교 운영을 도왔고, 소공동체 지도 및 개별 가정 방문도 실시하였다. 이 신부는 재임 기간 중 본당 내 · 외부 보수, 주차장 시공, 성모 동굴 신축, 장천 공소 전면 보수 등 30년 이상 노후되었던 본당 건물들의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단행하여 본당 분위기 쇄신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본당 신자들의 신앙심 증진을 위하여 2000년 4월 성령 세미나를 개최하여 신자들의 기도 생활과 신앙 쇄신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이듬해부터는 미사 전 성무 일도 바치기를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한편 2000년 1월부터 본당 관할 지역 내에 위치한 구미시 청소년 수련원을 대구대교구에서 위탁 · 운영하게 됨에 따라 해평 본당에서 수련원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가, 10대 주임 이태우 신부가 부임한 이후 운영권이 다시 구미시로 반환되었다. 2005년 현재 11대 주임 이성호 신부는 성소 계발과 쉬는 교우 없는 본당 만들기를 사목 목표로 설정하고 활발한 사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대구대교구 총람》,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6/ 《원평 30년사》, 원평 성당 사목회, 1986/ 《선산 성당 30년》, 선산 천주교회, 1992.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