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3월 말에 허계임은 다시 성사를 받기 위해 서울 집으로 갔고, 서로를 권면하면서 순교를 다짐하였다. 당시 그 집에는 열심한 신자 김성임(金成任, 마르타)과 김 루치아(金累時阿)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들은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과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들 일곱 여성들은 순교를 결심한 뒤 4월 11일에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던 포졸들을 찾아가 묵주를 내보이면서 천주교 신자임을 자백하였다.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는 와중에 허계임의 외손녀 바르바라가 먼저 옥사하였고 이어 이매임 · 김성임 · 이영희 · 루치아 · 이정희가 차례로 순교하였다. 마지막으로 허계임은 포도청과 형조의 갖은 형벌을 이겨내고 9월 26일(음력 8월 19일) 서소문 밖에서 66세의 나이로 동료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후 친척들이 허계임의 시신을 봉천에 안장하였다. 성녀의 유해는 1938년 9월 27일 언구비(彥九碑, 현 서울 논현동)의 교회 묘역으로 이장되었다가, 1968년 다시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이영희 ; 이정희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기해일기》/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기해 · 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 《承政院 日記》/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교구, 1997.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