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9월(음)에 현계흠은 아우가 살고 있는 경상도 남쪽의 동래 지방에 갔다가 영국 배를 보게 되었는데, 훗날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을 만나 그에게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교우들이 체포되자 현계흠은 기회를 틈타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으나, 일가친척들이 시달림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4월(음)경에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포도청에 자수하였고, 같은 달에 형조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9월(음)에 체포된 황사영의 문초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게 되자, 10월(음)에 의금부로 이송되어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고 1801년 12월 10일(음력 11월 5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38세였다. (→ 신유박해 ; 현경련 ; 현석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사학징의》/ 《추안급국안》/ 《순조실록》/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