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에는 물로 씻김을 받는 일반적인 세례인 수세(水洗, baptismus aquae) 이외에도 화세(火洗, baptismus flaminis)와 혈세가 있다. 화세는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통한 세례이며, 혈세는 순교의 피를 통한 세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례를 세 가지로 나누는 신학적인 토대는 예수가 자신이 당할 숙명적인 고난과 죽음을 자신에 대한 세례로 비교하는 말씀에 있다(마르 10,35-45). 예수는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직접 말하였고(요한 3,5; 마르 16,16),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였지만(마태 28,19),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마태 10,32),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8-39)라고 함으로써 순교로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로 인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비슷하게라도 따르는 참된 길은 예수처럼 죽는 순교라고 여겼으며, 순교자들은 그 자신들이 흘리는 피 안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확신으로 순교를 세례와 대등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의 이러한 전통은 190년 이전에 순교한 소아시아 사르디스(Sardis)의 멜리토(Melito) 주교에게서 발견되는데, 그는 죄사함을 위한 두 가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세례를 들었다(Davis CDT 235 참조).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와 치프리아노(Cyprianus, 200/210?~258),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도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세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동화(同化)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물의 성사, 즉 세례와는 별도로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참여인 순교에 있다고 하였다. 토마스에 의하면 이러한 참여는 상징의 중재를 통한 성사적인 참여가 아니라 모방과 재현을 통한 실제적인 참여이다(Summa Theologiae 3.66.11). 이렇게 혈세는 예로부터 간직해 온 교회의 굳은 신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그 죽음을 통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혈세는 화세와 마찬가지로 성사가 아니면서도 세례의 효과를 낳는다. (→ 대세 ; 세례성사 ; 수세 ; 순교 ; 화세)
※ 참고문헌 J.P. Lang, Dictionary of the Liturgy, Catholic Book Pub. Co., 1989, p. 54/ 주교 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역, 《가톨릭교회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曺鉉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