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홍교만은 일찍부터 박해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숨겨 주었던 사돈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책 상자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아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순교를 각오하고 집으로 돌아와 3월 27일 체포되었다. 의금부로 압송된 홍교만은 문초와 형벌을 받는 중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으며, '천주교 교리가 진리'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런 다음 사형 판결을 받고 정약종, 홍낙민(洪樂敏, 루가 혹은 바오로) 등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이고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 신유박해 ; 홍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추안급국안》/ 黃嗣永, <백서>/ 《사학징의》/ 《순조실록》/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2003.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