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 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자 성사받을 준비를 하였으나, 이듬해 을묘박해(乙卯迫害)로 체포되어 천주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후 그는 천주교를 멀리하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다시 교리를 실천하기 시작하여, 1799년 모친상을 당하고도 신주(神主)를 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마자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동료를 밀고하지는 않았으며,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문초가 계속되는 동안 용덕을 드러내며 굳게 신앙을 증거하여 결국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 신유박해 ; 홍재영)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추국일기》/ 黃嗣永, <백서>/ 《일성록》/ 《순조실록》/ 이기경 편, 《벽위편》/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2003. 〔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