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설립] 홍제동 지역에 공소가 설정된 계기는 최이용(막달레나) 일가가 1939년 고양군 은평면 홍제외리(현 홍은1동 71-550)로 이사를 와 약현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한 것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최씨 일가 외에도 4세대 정도 신자 공동체가 있었고, 이들은 1940년 약현 본당 3대 주임 김윤근(金允根, 요셉) 신부에게 공소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약현 본당 김제근 (金濟根, 토마) 보좌 신부가 최이용의 집에서 성사를 준 것을 계기로 홍제원 공소가 발족되었다. 공소가 마련된 후 약현 본당의 보좌 신부들이 지속적으로 공소를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자, 이 지역의 신자수는 점차 증가하였다. 공소가 비좁아지자 약현 본당 유수철 보좌 신부는 공소를 확장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부지를 물색하여, 약현 본당의 총회장과 부인회 등의 도움을 받아 1944년 봄 홍은1동 71-530번지(대지 100평)에 새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다.
한편 1945년 해방 이후 사회가 여전히 불안정한 시기에 홍제원 일대에는 북한과 해외에서 모인 빈민들의 가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화장터와 무당들이 많아 미신이 만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신자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홍제원 공소는 1949년 9월 홍제원 본당으로 승격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한도준 신부가 부임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 성당으로 사용하던 옛 공소 강당이 파괴되고, 한 신부도 전쟁 기간 중 예산 본당으로 전임된 후 후임 신부가 부임하지 않아 전쟁 후 신자들은 약현 본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1955년 약현 본당의 이종철(李鍾澈, 스테파노) 보좌 신부의 제안으로 파괴된 성당의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도중 자금이 부족해지기도 하고 건축 허가도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약현 본당 6대 주임 김철규(金哲圭, 바르나바) 신부의 도움으로 이듬해 성당 복구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런 가운데 1957년 5월 미국 유학 준비차 서울에 와 있던 대구 대목구 소속의 김동한 신부가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요청으로 잠시 본당 사목을 담당하다가, 이듬해 3월 2대 주임으로 박병윤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은 다시 주임 신부의 지도하에 원활히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박 신부는 부임 직후 현재의 본당 부지(880평)를 마련하였으나 부임 5개월 만에 당산동 본당으로 전임되어 본당은 서대문 본당의 이석충 신부가 겸임하게 되었다. 이 신부는 박 신부가 매입한 부지에 임시로 성당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8군의 군종 신부가 숙소로 사용하던 140여 평의 콘세트를 인수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콘세트 성당은 4대 주임 유수철 신부의 재임기인 1961년 1월 완공되었다.
[본당의 재정비와 발전]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덕명 신부는 어수선한 본당 분위기를 수습하고 신자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하여 구역 · 반 및 사목회를 재조직하고 각종 사도직 단체들을 구성하였다. 6대 주임 박고빈 신부는 임시 성당으로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음을 느끼고 성당을 건립하고자 1967년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부임 직후 가정 방문을 실시하여 냉담자들을 다시 본당으로 이끌고 레지오 마리애를 재편성하여 본당 건축에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7대 주임 이용선 신부는 사목 회장단과 성당 건립 계획을 마련하고 1967년 가을부터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시공사와의 마찰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다. 성당 건축은 8대 주임 조창희 신부 재임기인 1969년 5월 '성당 건립 위원회' 가 구성된 후에야 다시 시작되어, 이듬해 12월 완공되었다. 1970년 3월에는 신자 이위윤(마리아)이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제작한 종을 기증하였다.
9대 주임으로 재부임한 이석충 신부는 1975년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분도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1979년까지 운영되어 총 5회에 걸쳐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우고자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진학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10대 주임 김수창 신부는 연령회 · 성소 후원회 · 성심회 · 안나회 등 각종 사도직 단체들을 설립하였으며, 1980년에는 한국 교회 최초로 본당 내에 영안실을 설치하였다(1986년 폐쇄). 1982년 3월에는 부속 유치원을 설립하고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개방하여, 교육 사업뿐만 아니라 전교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11대 주임 김승훈 신부는 1983년 12월 현 사제관(149평)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87년 11월 그리스도 왕 나눔회를 조직하였다. 12대 주임 김정홍 신부는 성당 확장을 위하여 홍제3동 301-9번지를 비롯한 대지 150평과 주택 및 점포를 1988년 3월 매입하여 주택은 주일학교 교실로, 점포는 수리하여 이듬해 설립한 노인대학의 사무실과 교실로 이용하였다.
13대 주임 임태경 신부는 신자들이 단체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높이고 본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1990년 5월부터 단체별로 평일 미사를 봉헌하게 하였다. 14대 주임 이홍근 신부는 청소년과 청년 조직을 개편하여 이들이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였으며 실직 가정이나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하여 1998년 5월부터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였다. 이 외에도 이 신부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새로 성당 활동을 시작하는 청년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돕기 위하여 1999년 5월부터 '아느로' 라는 친교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15대 주임 이철호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 보수 및 부속 건물 신축 계획을 발표하여 7월에 사제관을 보수하고 본당 정문 · 고해소 등을 신 · 개축하였다. 아울러 본당의 규모가 계속해서 확장되자 이 신부는 본당 분할 계획을 세우고 신설 본당의 부지 매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03년 4월 홍제4동 성당 부지(350평)를 매입하여 9월에 분리시켰으며, 12월에는 홍은동 성당 부지(249평)를 매입하여 이듬해 2월에 분리시켰다. 이로써 현재 홍제동 본당은 3개로 분할이 되었지만, 이들 본당은 모본당인 홍제동 본당을 중심으로 긴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지역 공동 사목' 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목 형태는 이홍근 신부 재임기인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준비되어 온 새로운 형태의 사목이며 동시에 교구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 ·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 출판사, 1984/ 홍제동 성당 55년사 편찬위원회, 《홍제동 성당 55년사》, 천주교 홍제동 성당, 2004.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