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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서》湛軒書3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실학자 담헌(湛軒) 홍대 용(洪大容, 1731~1783)의 문집. 내집(內集) 4권, 외집(外 集) 10권 등 총 14권 7책의 비교적 많은 양으로 이루어 져 있다. 이 책은 당시 사회 제도와 유교적인 폐습, 주자 학적 세계관에 대한 홍대용의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와 함께 그가 독창적인 문학 사상가이면서 철학가, 뛰어난 자연 과

《대구교구 지도서》大邱教區指導書3

1912년 6월 1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반포된 대구교 구의 지도서. 지도서란 교구의 사목 규칙과 성무 집행, 행정 제도 등에 관한 기본 지침을 수록한 책이라는 뜻이 다. 이에 앞서 한국 교회에서 반포한 지도서로는 1857 년에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반포한 (張主敎輪示諸友書)와 1887년 제7대 교구장 블랑(Blanc,

《대구교구 지도서》
《대구교구 총람》大邱教區總覽3

대구대교구에서 발간한 교구 내의 각종 현황을 종합하 여 엮은 책. 본래 제목은 《교구 총람》(敎區總覽)이지만 서울대교구에서 발간한 《교구 총람》과 구별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대구교구 총람》이라고 부른다. 이 총람은 대구대교구에 대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자료집으로서 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교구 설정 70주년 기념 사업의 일 환으로, 그 한

《대동정로》大東正路3

조선 말기 영남 남인계의 학자들이 유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천주교 교리를 비판하려는 목적에서 간행한 벽이단서(闢異端書) . '대동' 은 우리 나라를 가리키며, '정로' 는 치우치고 사특한 길이 아닌 공변되고 정당한 길이라는 뜻으로 곧 유교를 가리킨다. 1902년(光武 6) 허칙(許依), 곽한일(郭漢一) 등이 편집하여 1903년에 진남(鎮南 지금의 忠武)에

《대동정로》
《대순전경》大巡典經3

구한말 종교 사상가 증산(甑山) 강일순(美一淳, 1871~1909)의 생애와 주요 가르침을 수집 · 편찬한 경전. 강일순이 죽은 뒤 그의 열렬한 추종자 이상호(李祥昊), 이정립(李正立) 형제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1929년 초판이 발간되었고 그 뒤 아홉 번에 걸쳐 간행되었다. 〔간행과 내용의 변동〕 《대순전경》에 앞서 증산 계통교단의 최초의 경전이라고 할

《대순전경》
《도덕경》道德經3

도가(道家)의 근본 경전. 저자는 노자(老子). 일명 《노자 도덕경》이라고도 한다. 《도덕경》은 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약 5,000자의 짧은 글로서, 그 안에 우주 · 인생 · 정치 사상 등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도덕경》의 판본은 왕필(王弼)본과 하상공(河上公)본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두 판본 모두 상편(1~37장)과 하편(38~

《도덕경》
《동경대전》東經大全3

동학의 경전을 모아서 엮은 책. 수운(水雲) 최제우(崔 濟愚, 1824~1863)가 1860년에 동학을 세운 뒤에 한문체 로 틈틈이 지은 것이다. 또한 그는 같은 시기에 우리 가 사체로 글을 많이 썼는데 이를 모아 엮은 책이 《용담유 사》(龍潭遺詞)이다. 《동경대전》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1883년에 간행된 것이다. 27×18cm 크기의 이 목판본 은 한지

《동경대전》
《동방 교회법전》東方敎會法典3

동방 가톨릭 교회와 그 소속 신자들이 지켜야 될 규율 들을 엮어 제정 반포된 법전. 교황 비오 9세(1846~1878) 에 의해 동방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보존하고 그 신자들 의 선익을 위한 통일된 법전의 제정 의사가 밝혀진 후 후 계자들에 의해 작업이 꾸준히 추진되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과 함께 교회 일치 운동의 증진과 의 발표는 새로운

《디다스칼리아》〔라〕Didascalia(Apostolorum)3

3세기 초 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편찬된 교회법전(일명 사도 규율). 그리스어로는 단편만 전해 오고, 시리아어역 전문과 라틴어역 일부가 전해 온다. 아랍어 역문과 에티오피아어 역문은 덜 중요하다. 4세기경 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편찬된 교회법전 《사도 헌장》(ConstitutionesApostolicae) 1~6권 속에 디다스칼리아가 개작된 형태로포함되어 있어

《디다케》3

초세기 말엽 시리아 지방의 교회 규범서. 1873년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 필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P. Bryen-nios)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묘 수도원(聖墓修道院, 일명 예루살렘 수도원) 도서관에서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제목에 이어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베푸신 주님의 가르침"이란 긴 부제(副題)가 적힌 그리 스어 양피지 사본을 발견했다

《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 便紙3

초기 교회 때 쓰여진 저자 미상의 호교론적 저술. 이문헌의 필사본이 처음 발견된 것은 1436년경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생선 가게의 포장용 헌 종이 꾸러미 안에서였다. 그리스어를 공부하러 온 한 젊은이가 이것을 헐값에 사서 어느 신학자에게 넘겨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그 후 이 필사본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bourg)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1

<대구매일신문> (⇨ <매일신문>)大邱每日新聞3
<대학> (⇨ 사서오경)大學3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東方敎會 - 關 - 敎令3

동방의 전례를 준수하는 교회들(동방 교회)에 관한 제2 차 바티칸 공의회의 공식 교령 문헌. '동방 교회' 에 관하 여 이들 교회의 쇄신을 촉구하고, 간접적으로는 로마 가 톨릭에서 갈라진 동방 교회들에 접근하면서 일치된 관계 를 촉진하기 위해서 공포되었다. 여기서 전례(nitus)란 교 령 제3항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들 교회의 특유한 전례 (hiturgia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3

1943년 9월 30일,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성서 연구에 관한 회칙. 〔배 경〕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는,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성서의신적(神的) 권위를 인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성서 안에서, 인간 역사 속에서 역사(役事)하는 하느님의 손길을찾아야 하고 더불어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디비니 레뎀토리스> 3

1937년 3월 19일 공산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힌 교황 비오 11세(1922~1939)의 회칙. 비오 11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계의 위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 추구 를 교황직의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하여 국제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소련의종교 박해를 종식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온갖 노력이 무위로

<디비니 레뎀토리스>
<디비니 일리우스 마지스트리>3

1929년 12월 31일에 발표된 종교 교육을 강조한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의 회칙. [배 경] 교황 비오 11세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통한"그리스도의 평화 추구"를 교황직의 목표로 삼고, 즉위하자 곧 국제 문제에 관한 교황청의 활동을 강화하였다.또한 교황청과 세속 국가들 사이의 정교 조약 또는 협약을 여러 차례 맺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하여

<디아테사론> (⇨ 타시아노)3
<디우투르눔 일룻>3

1881년 6월 29일 국가 권력에 대한 입장을 밝힌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배 경〕 보기 드문 학자요 탁월한 지도자였던 교황 레오 13세는, 교황으로 즉위하자 천부적인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화해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그리고 19세기 자유주의 사조로 인하여 교회

다 빈치 (⇨ 레오나르도 다 빈치)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