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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사제. 세례명은 레오. 1883년 12월 17일 충북 충주군 동양면 용대리에서 정의묵(鄭義默, 야고보)과 남 씨(이사벨라)의 4남 중 3남으로 출생. 병인박해시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鄭殷, 바오로)의 후손. 장호원 본당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에게 신학교 예비 과정을 교육받고, 1897년 9월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1915년 황해도 곡산군 도화면 현암리에서 출생. 1937년 3월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마치고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 유학하여 1939년 7월 철학과를, 1943년 7월 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1942년 12월 20일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946년 1월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박

서울대교구 · 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863년 8월 18일 충남 아산군 신창면 남방리에서 정기화(鄭基化, 마태오)와 한 씨(마르타)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병인박해로 가족과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충주에 정착하여 성장하였으나 화재로 경기도 광주로 이사하였다. 광주에서 블랑 주교의 신학교 입학 허락이 내려 명동 한문학당에서 예비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시몬. 1953년 12월 19일 경기 여주에서 출생하여 성신고등학교를 거쳐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2월 22일 명동 성당에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사제 서품되었다. 아현동 본당 보좌를 거쳐 1987년 2월 반포 본당 보좌로 부임하였다. 그해 8월 4일부터 본당 청년을 인솔하고 전주교구 수류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신 3리 67 소재. 1975년 5월 15일 신리(新里)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세례자. 관할 구역은 정남면 전 지역. 〔교 세〕 1976년 1,012명, 1980년 965명, 1985년 1,018명, 1990년 939명, 1995년 1,043명, 2001년 1,415명. 〔역대 신부〕 초

사회 사업가.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1886년 5월 14일 서울 옥인동에서 정창인(鄭昌寅, 요셉)과 최 바르바라 사이의 3남 2녀 중 2남으로 출생하여 1904년 3월 명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899년 9월 일본인 경영의 경성 학당(京城學堂) 한문과에 입학하여 1900년 3월에 마치고,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6월까지 수학하

(⇨ 이중 결과의 법칙)
(⇨ 전쟁)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일명 덕오. 용인 더우골에서 태어나 용인 삼배일 점촌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하자 11월 26일(음 10월 20일) 광주(廣州) 포교 세 패가 몰려와 정덕구의 삼촌인 정여삼(바오로)을 비롯한 전 식구와 예비 교우였던 이화실을 체포하여 이들 집의 방에 가두었다. 이들은 심한 매질을 당하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충청도 신창(新昌) 남방재 사람으로 같은 마을에 사는 김순일(요한) · 김 서방과 함께 1871년 4월 20일 서울의 포졸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끌려갔다. 포도청에서 심문을 받을 때 김 서방은 배교하고 석방되어 나왔으나, 정덕수와 김순일은 절대로 배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신앙을 굳게 지켰다. 이로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네딕도로도 나오고 멜제리아로도 나온다. 《병인 치명사적》에 나오는 정도연과 같은 사람으로 판단된다. 그는 본래 광주(廣州) 마재〔馬峴〕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으로 천주교를 배워 영세를 하고 세례명도 지었다. 뒤에 그는 넙실로 이사하여 살다가 박해를 피하여 이천(利川) 소리울로 가서 살았다. 그러던 중 1871년 3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정숙(丁叔), 호는 호정(壺亭) · 풍악산인(楓嶽山人), 시호는 민충(敏忠). 1612년 생원이 되고 161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3년 성천부사(成川府使)가 된 후 인조를 도와 반청 숭명(反淸崇明) 정책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1624년 관향사(管餉使)로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에게 군량을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 677-1 소재. 1968년 10월 12일에 미아리(彌阿里, 현 길음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 구역은 정릉2동, 정릉3동. 〔교세〕 1969년 1,118명, 1974년 2,916명, 1980년 4,094명, 1986년 6,234명, 1991년 6,486명, 1996년 5,52

주교. 제3대 부산교구장. 초대 군종교구장.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935년 5월 25일 경남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정연수(요셉)와 박금악(모니카)의 4남 3녀 중 다섯 째로 출생하여 1953년 세례를 받았으며, 1956년 3월 거제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신대학에 진학, 1962년 12월 22일 부산 중앙 본당에서 최재선(요한)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성인.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축일은 9월 20일. 일명 기식(基植). 충청도 임천(林川, 현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양반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수령으로 지내던 정문호는 천주교를 믿게 된 후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

정미년(1787) 천주교 신자들이 반촌(泮村)에서 교회 서적을 강습하다가 발각되어 반대파의 척사 운동(斥邪運動)을 조장하고 기호 남인의 분열을 가속화한 사건. '반회 사건'이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반촌은 성균관이 위치해 있던 마을. 1784년의 한국 천주교회 창설과 이듬해에 일어난 명례방 사건(明禮坊事件)으로 조선의 일부 지식인과 위정자들 안에서는 척사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칸디다. 양인(良人) 출신으로 동대문 밖 전농동(典農洞)에서 태어나 살다가 산림동(山林洞)으로 출가하였으며, 1790년에 이합규(李鴿逵)를 만나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칸디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친정 오빠 정명복(鄭命福)과 아들 윤석춘(尹碩春) 등에게 전도하였고, 양반

침묵의 교회. 황해도 신계군 고면 정봉리에 위치한 본당. 1928년 5월에 설립되었다가 1950년 7월에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 마리아. 〔교 세〕 1937년 689명, 1944년 738명. 〔역대 신부〕 초대 이보환(李普煥) 요한(1928.5~1933.5), 2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1933.5~1935.6), 3대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19

1797년(정조 21)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 조정의 공식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관찰사의 명에 의해 발생하였다. 이 박해 때 충청도에서는 100명 이상의 신자들이 체포되거나 순교하였다고 하나, 현재 순교 행적을 알 수 있는 순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조정에서는 1795년 5월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
정사박해(丁巳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천주교를 믿기 전까지는 성격이 격렬하고 힘이 비상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가까이하기를 꺼려하였다. 그가 언제, 어떤 계기로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덕산 지역에 천주교가 알려진 후 입교하여, 179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