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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교안濟州敎案10권

1901년 봉세관(封稅官)의 조세 수탈과 천주교회의 교폐(敎弊)에 대하여 제주 도민들이 반발하여 일어난 교안. 그 결과, 제주 지역의 천주교 신자 수백 명이 민군(民軍)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지금까지 1901년 제주 교안은 신축 교난(辛丑敎難), 이재수(李在守)의 난, 제주 민란 등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 '교안'(敎案)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국가 정책

제주 교안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濟州中央主教座本堂10권

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제주시 삼도2동 114 소재. 1899년 4월 22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삼도2동 전 지역과 건입동, 일도1동, 이도1동 일부 지역. 〔교 세〕 1965년 3,400명, 1972년 2,259명, 1976년 3,058명, 1980년 2,878명, 1985년 4,078명, 19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
제주교구濟州教區10권

Ⅰ. 제주 본당의 설립과 제주 교안 Ⅱ. 본당의 확대와 감목 대리구 설정 Ⅲ. 교구 설정과 성장 제주도 전체를 사목 관할 구역으로 하는 주교구. 주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71년 6월 28일 광주대교구에서 분리되어 지목구로 설정되었으며, 1977년 3월 21일 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광주대교구, 전주교구와 함께 광주 관구를

제주교구
제천 본당堤川本堂10권

(⇨ 남천동 본당)

제천 의례祭天儀禮10권

(⇨ 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第七日 安息日 — 再臨敎10권

(⇨ 안식교)

젤라시오 1세 (?~496) 10권

성인. 교황(492~496). 5세기 교황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축일은 11월 21일. 아프리카 출신으로 로마 교회의 대부제(arhidiaconus)를 역임하였다. 그가 492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전임 교황들 재임시 교회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 같다. 그가 교

젤라시오 1세 (?~496)
젤라시오, 시지쿠스의 (?~?)10권

주교. 교회 역사가. 젤라시오는 소아시아의 서북부에 있는 도시 시지쿠스(Cyzicus)에서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젤라시오는 수도자로서 존경을 받다가 426년 시지쿠스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후에 그는 비티니아(Bithynia)에서 생활하면서, 475년 이후 3권으로 구성된 《교회사》(Historia Ecclesias

젤라시오, 체사레아의 (?~395)10권

주교. 교회 역사가. 팔레스티나에 있는 체사레아의 주교(367~395)였던 그는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lus, +386)의 조카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젤라시오는 367년 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지만,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에서 결의한 신앙 고백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로마 제국 발렌스 황제(364~378)에 의해 372년

젤롯당— 黨10권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기 6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Yehudah ha-Galili, +6)라는 사람의 영도 아래 결성한 조직. '열혈당' 또는 '열심당'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젤롯당에 대한 위와 같은 전통적인 설명은 헨겔(M. Hengel)의 종합적인

젤롯당
조 막달레나 (1807~1839)10권

성녀.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성녀 이 가타리나의 3남매 중 맏딸.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모친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친척들이 천주교를 금하게 되자, 모친은 막달레나가 7~8세 되었을 때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왔다. 막달레나는 외가에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자라면서 길쌈과

조 막달레나 (1807~1839)
조 바르바라 (1783~1839)10권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 이인덕(李仁德, 마리아)의 모친. 가난한 외교인 양반의 아내로, 함께 살던 친정 어머니에게 두 딸과 함께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남편 몰래 신앙 생활을 해야 했으므로, 바르바라는 남편이 지방으로 여행간 틈을 이용하여 두 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남편 때문에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조건부 세례條件附洗禮10권

(⇨ 대세)

조곡동 본당稠谷洞本堂10권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순천시 조곡동 269-4 소재. 1970년 5월 8일에 순천(현 저전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십자가. 관할 구역은 조곡동, 덕연동, 풍덕동, 생목동 전 지역과 장천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898명, 1974년 1,139명, 1980년 1,612명, 1985년 2,109명, 1990년 3,067

조곡동 본당
조과早課10권

(⇨ 아침기도)

조군서 (?~1867)曺 —10권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본래 충청도 덕산(德山) 황무실 사람으로, 공주(公州) 마련동으로 이사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67년 9월에 공주 포교에게 박 서방 · 윤 서방과 함께 체포되었다. 공주 진영(鎭營)으로 붙잡혀 갈 때 그의 모친이 따라나서자, 그는 천주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잡혀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

조당阻擋10권

(⇨ 혼인 장애)

조덕삼 (1833~1870)10권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시몬. 그는 조 타대오의 형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두 번이나 잡혔다가 도망쳤다. 뒤에 충청도 목천(木川) 칠암면 공심리에서 살다가 1870년 3월 24일 서울 포교와 목천 포교에게 붙잡혔다. 이때 포졸들이 그에게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믿는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목천 관아에서 관장이 심문할 때에

조동섬 (1739~1830)趙東暹10권

한학자. 유배자. 세례명은 유스티노. 경기도 양근(楊根)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생활하였다. 그가 언제 어떠한 계기로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김범우(金範禹, 토마스)로부터 교리를 들었음은 이후 심문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조동섬은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당시 천주교 서적을 본 일 때문에 양근군의 옥

조력 은총助力恩寵10권

(⇨ 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