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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
스페인의 왕(1556~1598)이자 포르투갈의 왕(1580~1598).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 개혁을 옹호하였으며, 그의 재임 시기에 스페인은 최고의 국력과 영토를 자랑하였다. 〔생 애〕 초기 생애 : '신중한 사람'(el Prudente)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펠리페 2세는 1527년 5월 21일 스페인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신성 로마 제국

성인. 3세기경의 증거자. 신부. 축일은 1월 14일. 펠릭스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놀라에서 시리아 출신 군인인 헤르미아스(Hemias)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뒤, 그는 거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주교인 막시모(Maxim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데치우스 황제(249~251) 때인 250년에 박해가 일어나자

성인.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주교. 앵글리아의 펠릭스(Felix in Anglia)라고도 한다. 축일은 3월 8일. 프랑스 중부의 부르고뉴(Bourgogne) 출신인 펠릭스는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 주교 서품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캔터베리(Canterbury)의 제5대 교구장인 호노리오(Hono
성인.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수사. 축일은 5월 18일. 펠릭스는 이탈리아 아브루치(Abruzzi) 지방 북서부의 치타두칼레(Cittaducale) 교구에 속한 칸탈리체(Cantalice)에서 1515년 5월 18일, 신앙심이 깊은 농부인 산티 포리(Santi Porri)와 산타 포리(Santa Porri) 부부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홉 살
성인. 주교이며 순교자. 축일은 10월 24일. 아프리카의 주교인 펠릭스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다만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의 박해 때 순교한 첫 순교자들 중 한 분으로 여겨진다. 로마 제국의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303년 2월 23일 내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포고령은, 아프리카의 티비우카
성인들.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와 막시미아누스(286~305)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축일은 8월 30일. 855년경에 쓰여진 《아도 순교록》(Martyrologium Adonis)에 이 두 성인의 전기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로마의 사제인 펠릭스는 이교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를 위해

(⇨ 하느님의 속성)
(⇨ 성서 연구 방법론)
춘천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강원도 평강읍 서변리 소재. 1924년에 이천 본당(伊川本堂, 혹은 '望沓本堂' 이라고도 함)에서 분할 · 설립되었다가 1950년에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1884년에 이천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천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평강 지역에도 복음의 전파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1924년경 신자수가 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와 같이 신자수가
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 치우침이 없이 모두가 한결같은, 차별이 없는 상태. 서양의 근대 이후, 특히 프랑스 혁명(1787~1799) 이후 인류의 이상, 즉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박애(이웃 사랑)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이상 중에서 특히 많이 주장되고 실천되었으며 시행 착오를 거듭한 것은 평등이었다. 그러나 평등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서구 평리4동 1423-5 소재. 1979년 11월 16일 내당동 본당에서 분리 ·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평리4 · 5 · 6동, 내당4동, 중리동 일부. 〔교 세〕 1980년 1,519명, 1985년 4,397명, 1990년 5,333명, 1995년 6,498명, 2000년 6,318명, 2004년

(⇨ 수도자)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 및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성품(聖品)의 구성원(clergy)과 교회가 인정한 수도 신분(religious)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교회 31항). 〔어원과 개

(⇨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소속의 전국 위원회. 1994년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의 춘계 정기 총회(3.8)는 이 위원회를 신설하여 전국 평신도 단체들의 지도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초대 위원장은 서울대교구 총대리인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주교였으며, 2005년 4월 현재 위원장은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 주교이다. 〔목 적〕 주교 회의 2004년 추계 정기
(⇨ 수도회)
연중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 바로 전 주일(연중 제33주일)에 기념하는 특별 헌금 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는 1968년 정기 총회(10.14~16)에서 '한국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중앙 협의회'(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승인하고 그 건의를 받아들여,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정하고 평신도들의 사도직에
교황청 소속의 평의회 중 한 기구. 이 기구는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에 의해 1967년 1월 6일 교황청의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가 1976년 자의 교서 (Apotolatus peragendi, 1976.12.10)를 통해 상설 기구인 '평신도 위원회'(Commissio de Laicis)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평신도가 성직자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교회 법규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속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모색하는 운동. '세속주의', '비성직주의', '반교계주의'라고도 한다. 〔의 미〕 이 용어의 어원과 실제 사용은 전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만 발견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럽의 중세와 근대는 교회와 세속 권력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던 시기였고, 결국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