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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敎10권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오늘날 이란과 아프카니스탄 접경 지역에 있는 고산 지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며 종교 개혁가였던 조로아스터(Zoroaster ; Zarathustra, 기원전 628?~551?)가 창시한 종교. 조로아스터교는 신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종교로, 사원과 가정에 성화(聖火)를

조로아스터교
조르거, 그레고어 (1906~1950)10권

베네딕도회 보이론(Beuron)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그레고리오. 세례명은 루도비코. 1906년 11월 19일 독일 로텐부르크(Rottenburg) 교구의 스파이힝겐(Spaichingen)에서 태어난 조르거는, 1928년 베네딕도회 보이론 연합회의 보이론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은 후 1929년 6월 29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조르거, 그레고어 (1906~1950)
조르게, 라인하르트 요하네스 (1892~1916)10권

독일의 가톨릭 작가, 1892년 1월 29일 베를린 근처에서 출생한 조르게는 다른 많은 표현주의 작가들처럼 빌헬름 시대(1871~1918)의 시민 사회를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김나지움을 중퇴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젊은 이상주의자들처럼 무미건조한 대도시의 삶에서 괴로움을 느꼈고, '새로운 인간'을 동경하였다.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이후 그는 종교적

조르조 다 카스텔프랑코 (1477?~1510)10권

이탈리아 화가. 본명은 조르조 바르바렐리(Giorgio Barbarelli), 일명 조르조네(Giogione). 16세기 초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조르조는 생애와 경력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모호하여 신비에 싸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1550년 《예술가 열전》(Vite de' piú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

조르조 다 카스텔프랑코 (1477?~1510)
조명오 (1815~1871)曹明五10권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경기도 수원 양간(梁澗) 사람으로, 수원 돌모루에 살던 김치공(金致公)의 권유로 천주교서(天主敎書)를 배웠다. 이어 김치공에게 대세(代洗)를 받고 세례명을 얻었으며,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에게 두 차례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명오는 병인박해를 겪으면서 냉담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1871년 3월 26일(음) 경

조문국 (1921~?)趙文國10권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21년 5월 평양 관후리에서 조봉윤(요셉)과 곽인숙(아가다)의 3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1933년 3월 평양 성모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진학하였고, 1938년 4월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45년 12월 27일 임시 주교좌 본당이었던 평양 상수구리 본당에서 홍용호(洪龍浩, 1906~?)

조사현 (1825~1868)曹士賢10권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1825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고, 1840년대에 경기도 양지(陽智) 언리(彥里, 은이)로 이주하여 농사와 의술로 생활하였다. 그는 1845년에 같은 마을의 이계원(李季元)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1849년에는 이계원의 주선으로 서여심(徐汝心) 회장 집에서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에게 고해성사를 받았다.

조상 숭배祖上崇拜10권

효(孝) 사상을 바탕으로 생명의 근본인 선조께 끊임없이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유교의 추원 보본(追遠報本) 행위. 〔조상 숭배의 바탕인 효〕 조상 숭배의 바탕이 되는 효를 유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유교에서는 효를 유교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실현하는 근본으로 여기며, '인간 행위의 기초, 최우선, 모든 덕의 으뜸'으로 본다. 이 효에 의해 사람됨이

조상 숭배
조상 제사 문제祖上祭祀問題10권

조상에 대한 제사를 금지하는 교황청의 지침에 대해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과 신자들이 보인 반응과 해결에 대한 문제. 〔조상 제사 금령과 천주교 탄압〕 한국 천주교회 창립 당시의 초기 신자들은 천주 외의 다른 신에 대한 경배와 제사 행위를 미신으로 알고서 배척하였다. 하지만 조상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금지 명령을 제대로 모르고 천주교 신앙과 함께 병행하고 있었

조선 대목구朝鮮代牧區10권

(⇨ 서울대교구)

조선교구朝鮮教區10권

(⇨ 서울대교구)

조성노 (1809~1868)趙成老10권

순교자. 세례명은 마태오. 12세에 부모로부터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고, 서강(西江) 수철리(水鐵里)에 살면서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에게 이끌려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만났다. 이후 베르뇌 주교를 세 차례 집으로 모셔와 미사도 드리고 고해성사도 받았으며, 1866년 베르뇌 주교가 사망했을 때에는 최사관(崔士寬, 예로니모), 박순지(朴順之,

조숙 (1787~1819)趙淑10권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동정 부부.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위이자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의 친척. 1787년 경기도 양근의 양반 집에서 태어났으며, '숙'은 관명(冠名)이고 '명수'라고도 불렸다.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부모를 따라 강원도 외가로 피신하여 여러 해 살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의 부모와 조숙이 1801년 이전에

조스, 장 밥티스트 (1851~1886)10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한국 성은 조(趙). 1851년 10월 19일에 프랑스의 브와소(Boiseau)에서 신앙심 깊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성직자를 희망하여 낭트(Nante)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1875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년 동안 노트르담 데 쿠에(Notre-Dame des Couëts) 소신

조스캥 데 프레 (1440?~1521)10권

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 '데 프레'는 간혹 다르게도 표기되며(des Prés, Després), 라틴어로 '요스퀴누스'(Josquinus) 또는 '요도쿠스 프라텐시스'(Jodocus pratensis, 풀밭의 요도코)라고도 표기된다. 〔생 애〕 조스캥은 1440년경 북부 프랑스의 피카르디(Picardi

조신철 (1796~1839)趙信喆10권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가롤로. 일명 덕철(德喆). 자(字)는 경우(京友). 성녀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의 남편이자 성인 최창흡(崔昌洽, 베드로)의 사위. 강원도 회양(淮陽)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에 모친이 사망하였다. 이후 얼마 안 되던 가산이 탕진되자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으며, 몇 년 후 환속하고 이집 저집 다니며 머

조신철 (1796~1839)
조신행 (?~1801)趙愼行10권

순교자. 세례명 미상. 양반 출신으로 서울 도저동(桃楮洞)에 거주하며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등과 교류하였다. 조신행의 입교 과정과 활동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명도회(明道會)의 회원이었다는 점에서 교리 공부와 전교 활동에 열심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남송로(南松老) · 최태산(崔太山) · 손인원(孫仁遠) · 이재신(李在信) 등과 명도회의 6회

조아요, 알퐁스 (1877~1907)10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알퐁소. 한국명은 옥유아(玉裕雅). 1877년 2월 5일 루아르(Loire) 강 하류의 애그르푀이유(d'Aigrefeuille) 면의 가네스통(Geneston)에서 태어났다. 노트르담 데 쿠에(Notre-Dame des Couëts) 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수사 학년이 끝날 무렵, 그의 지도자의 의견에 따라 쿠에 신학교

조아요, 알퐁스 (1877~1907)
조아키노 다 피오레10권

(⇨ 요아킴, 플로라의)

조안노, 피에르 마리 (1832~1863)10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한국 성은 오(吳). 1832년 2월 9일 코트 뒤 노르(Côte du Nord)의 멜리오네(Mellionnec)에서 출생하여 삭발례를 받은 후 1856년 1월 3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857년 12월 1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1858년 3월 21일 임지인 조선을 향해 출발하였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