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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무 (1936~ )崔昌武11

대주교. 제8대 광주대교구장. 세례명은 안드레아. 1936년 9월 15일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리에서 최복남(야고보)과 박 마리아의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55년 2월에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3월에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 본과 3년을 마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62년 7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

최창무 (1936~ )
최창정 (1937~1984)崔昌鼎11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아킴. 1937년 8월 9일에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남천리 209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61년 12월 30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후암동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7월에 육군 군종 신부로 입대한 후 1965년 10월 월남(현 베트남)의 퀴논 지구 천주교회 등을

최창주 (1749~1801)崔昌周11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마르첼리노. 일명 '여종'. 1840년의 전주 순교자 최조이(崔召史, 바르바라)의 부친이며, 1801년의 여주 순교자 원경도(元景道, 요한)와 1839년의 전주 순교자 신태보(申太甫, 베드로)와 사돈간이다. 경기도 여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40대 초반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후 온 가족을 입교시키고 열심히

최창주 (1749~1801)
최창현 (1759~1801)崔昌顯11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호는 관천(冠泉).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성인의 이복 형이요, 1795년의 을묘박해(乙卯迫害) 순교자 최인길(崔仁吉, 마티아)과 1801년의 신유박해 순교자 최필공(崔必恭, 토마스)의 인척.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입정동(笠井洞)에서 살았으므로 신자들 사이에

최창현 (1759~1801)
최창흡 (1787~1839)崔昌洽11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여칠'.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로 순교한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의 남편이자 성인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의 부친. 교회 밀사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성인의 장인.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최창현(崔昌顯, 요한) 회장의 이복 동생.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어

최천여崔 —11

(⇨ 최종여)

최필공 (1744~1801)崔必恭11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혹은 마티아). 1801년 순교한 최필제(崔必悌, 베드로)의 사촌 형이자, 최창현(崔昌顯, 요한)과 정인혁(鄭仁赫, 타대오)의 친척. 서울의 중인(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46세 때인 1790년에 사촌 동생 최필제와 함께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의 조상들 중에는 조정에서 의

최필공 (1744~1801)
최필제 (1770~1801)崔必悌11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1801년 순교한 최필공(崔必恭, 토마스)의 사촌 동생. 서울의 중인(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20세 때인 1790년에 사촌형 최필공과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본래 진실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녔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질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또 그의 약국에서 파는 약은 값이 싼 데다가 약재도 좋아 모두

최필제 (1770~1801)
최한기 (1803~1879)崔漢綺11

19세기 초 · 중반의 학자. 본관은 삭녕(朔寧)이며, 아명은 성득(聖得), 자는 '지로'(芝老), 호는 혜강(惠剛) · 패동(浿東) · 명남루(明南樓) · 기화당(氣和堂) 등이다. 세계 각국의 학문과 사상을 회통(會通)하여 개물성무(開物成務)를 달성하고자 노력한 점에서 실학 사상과 개화 사상의 가교적(架橋的)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가계와

최항준 (1920~1948)崔恒俊11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티아. 1920년 9월 20일(음)에 평안북도 선천군 운종면 신미리 706번지에서 최시화(崔時和, 요한)와 오덕화(엘리사벳)의 6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동네 서당에서 《논어》(論語)를 배우기도 하였던 그는 초등학교 공부로 만족하지 않고 신학교에 갈 것을 결심하였다. 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서포의

최항준 (1920~1948)
최해성 (1811~1839)崔海成11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양박'. 1839년에 순교한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성인의 먼 친척이며, 최 비르지타의 조카. 그의 집안은 본래 충청도 홍주 다래골(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서 살았는데,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조부가 체포되어 유배를 가면서 온 가족이 그 지방으로 따라가 생활하게 되었다. 그가 태

최형 (1814~1866)崔炯11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치장. 충청도 공주에서 최인호(崔仁浩, 야고보)와 황 안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4세(혹은 8세)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부모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그의 형제 중 동생인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1836년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등과 함께 마카오로

최형 (1814~1866)
최후 심판最後審判11

(⇨ 심판)

최후의 만찬最後 — 晚餐11

Ⅰ. 성서의 언급과 근거 Ⅱ. 예수의 최후 만찬 Ⅲ. 초대 교회의 성만찬 Ⅳ. 신학적 의미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부활한 예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창립하면서 최후의 만찬을 본떠 만든 교회의 예식은 '성만찬'(聖晚餐) 또는 '성찬례'(聖餐禮, eucharistia)라고 한다. Ⅰ

최후의 만찬
최희득 (1807~1839)崔 —11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필립보. 서울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여러 해 동안 이교도처럼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몇몇 착한 신자들의 권면으로 신앙을 되찾아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으며 선교사가 입국한 뒤에는 그를 찾아가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바로 그때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고, 그는 3월에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

추기경樞機卿11

보편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의 최측근 협력자이며 중요한 조언자.' 한국 교회에서는 홍의 주교(紅衣主敎)라고도 불렀다. 추기경은 부제, 사제, 주교의 세 품급(品級)으로 구별되며, 적어도 사제품을 수여받은 성직자들 가운데에서 교황에 의하여 자유롭게 선임된다. 추기경들은 수석 추기경의 지휘 아래 추기경단(樞機卿團, collegium cardinalium)을

추기경
추기경단樞機卿團11

(⇨ 추기경)

추기원 회의樞機院會議11

(⇨ 추기경)

추상抽象11

일반적으로 사물들에 대한 실제의 분리가 아닌 정신적인 분리를 말한다. 추상 또는 추상 작용은 어떤 사물에서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한 가지 측면만을 취하여 인식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이때 추상 작용을 통해 인식되는 측면은 그 자체로, 정신적으로 분리시키는 다른 측면들로부터 동떨어져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가지적인 것의 추상〕 추상의 여러 종류 가

추수절秋收節11

(⇨ 축제, 성서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