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 · 총 275건
교회사가. 사제이며 수도원장. 교육자. 법률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교회사의 포괄적인 기술을 시도한 새로운 방법의 대두에 자극과 영향을 준 두 형태, 즉 갈리아주의(Gallicanismus)와 교황 지상주의(Ultramontanismus) 중 전자의 노선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교회사 저술가이다. 〔생애와 활동〕 1640년 12월 6일 파리에서 노르망디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일데폰소(Ildefonsus). 세례명은 안드레아. 한국성은 부(富). 1878년 7월 20일 독일 뮌헨 대교구에 속한 키엠가우(Chiemgau)의 타이딩(Taiding)에서 태어난 플뢰칭거는 숙련된 소목장(小木匠)으로서 1906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2년간의 청원 시기를 거친 후 법

성인. 스페인의 예수회원. 축일은 11월 28일. 1737년 12월 27일에 스페인 북동부의 사라고사(Zaragoz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돈 안토니오(Don Antonio Pignatelli)는 칼라브리아(Calabria)의 몬텔레오네(Monteleone) 공작 가문 출신이며 어머니 마르케사 프란치스카(Marquesa Francisca Moncayo)는
성인. 순교자. 신부.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 법률가와 지크마링겐의 수호 성인. 축일은 4월 24일. 1578년 10월 독일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지크마링겐(Sigmaringen)에서 태어났다. 정치 · 종교적인 혼란 때문에 지역 자료가 보존되어 있지 않아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부친은 플랑드르계였고 피델리스의 원래 이

오스만 제국의 압박으로 위험에 처한 동로마 제국이 서유럽의 원조를 얻기 위하여 로마 교회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모색하면서 공의회 우위설(Conciliarismus)을 주장하는 이들이 득세하였던 바젤 공의회(1431~1437)를 반대한 교황 에우제니오 4세(1431~1447)가 페라라(Ferrara, 1438.1~1439.1), 피렌체(Firenze, 143

성인. 베네딕도회 아빠스. 선교사. 주교. 축일은 11월 3일. 9세기에 쓰여진 전기에 따르면, 피르미노는 아키텐(Aquitaine)이나 스페인의 서고트족(Visigoth) 출신이라고 한다. 무어(Moor)족의 침입으로 스페인을 떠난 것으로 여겨지며, 주로 라인 강 상류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알려진 내용과는 달리 모(Meaux) 지방의 주교가 아니라, 72

이탈리아의 화가. 장인. 메달 제조자. 본명은 안토니오 피사노(Antonio Pisano). 피사넬로는 국제 고딕 양식을 최후로 계승하고 극도의 화려함을 추구한 대표적 화가였으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사를 정리한 바사리(G. Vasari, 1511~1574)에 의해 비토레(Vittore)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1395년경 피사(Pisa)에서 출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선교사. 신부. 수도명은 제롤도(Geroldus). 세례명은 로타르(Lothar). 한국 성은 어(魚). 1908년 11월 28일 밤베르크(Bamberg) 대교구에 속해 있는 프리센(Friesen)에서 태어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29년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년간 법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사. 수도명은 루트비히. 세례명은 카를(Karl). 한국 성은 기(基). 1902년 10월 24일 독일 로텐부르크(Rottenburg) 교구 운터스텔츠하우젠(Unterstelzhausen)에서 태어난 피셔는 1922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년간 청원자로 생활한 후 1923년 10월 14일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신부. 수도명은 볼프람. 세례명은 오토(Otto). 한국 이름은 진도광(陳道光). 1903년 4월 22일 독일 파더보른(Paderborn) 교구 레브링하우젠(Leveringhausen)에서 태어났으며, 1923년 5월 7일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

성인. 순교자. 추기경. 영국 로체스터(Rochester)의 주교.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 라틴어식 이름은 요한 피셔(Joannes Fisher)이며, 로체스터의 요한(Joannes Roffensis, John of Rochester)이라고도 불린다. 축일은 6월 22일. 교황과 가톨릭 교회에 헌신적이었던 피셔는 루터(M. Luther, 1483~1546)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레오. 한국명은 송세흥(宋世興). 〔생 애〕 1893년 4월 10일 프랑스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서부에 있는 피니스테르(Finistère) 주에 속한 플루달메조(Ploudalmézeau)에서 출생하였으며, 1910년 9월 17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전후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신부. 수도명은 가예타노. 세례명은 글레멘스(Klemens). 한국 성은 하(河). 1868년 12월 1일 독일 오스나부르크(Osnaburg) 교구의 헤르츠포르트(Herzfort)에서 태어난 피어하우스는 1906년 9월 8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07년 9월 8일 유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에 크게 이바지한 화가. 이론가. 피에로는 피렌체 공화국에 속한 작은 도시인 산세폴크로(Sansepolcro, Borgo San Sepolcro)에서 태어났다. 그가 받은 초기 교육에 대하여 분명하게 전해 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1439년에 피렌체에서 공부하며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때 도메니코(Domenico Veneziano,

프랑스의 시인. 본명은 노엘 마티외(Noël Matthieu). 〔생 애〕 1916년 5월 3일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도시 포(Pau) 근처에서 태어난 피에르 엠마누엘은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수학에 소질이 뛰어나 교원대학교 과학 분야 입학 준비반에 다니다가 문리 대학으로 편입하였는데, 이 시기에 피에르 엠마누엘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무릎 위에 놓고 슬퍼하는 모습을 표현한 종교적 이미지. 피에타는 13~17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매우 애호되던 주제였는데, 종종 성모와 예수뿐 아니라 요한이나 막달라의 마리아,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이 함께 슬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주제상 피에타는 십자가 처형, 십자가에서 내려짐, 애도와 관련이

(⇨ 가족 계획)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하느님에 대해 묵상하거나 관상하는 시간. 〔개 념〕 피정은 합성어로,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고요함을 피한다'는 뜻이다. 이 용어에 대해서는 '피속 추정'(避俗追靜)의 준말이라는 설과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피속추정'은 '세속을 피하여 고요함을 따른다'는 의미이고, '피세정념'은

(⇨ 자연)
남태평양 서부에 있는 도서(島嶼) 국가로, 공식 명칭은 피지 민주 공화국(Sovereign Democratic Republic of Fiji)이다. 동쪽은 통가(Tonga) 군도, 서쪽은 산타크루스(Santa Cruz) 섬, 남쪽은 뉴질랜드, 북쪽은 투발루(Tuvalu)로 이어지는 대양(大洋)상에 있으며, 비티레부(Viti Levu), 바누아레부(Vanu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