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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11권

오늘날의 레바논 공화국 전부와 주변 지중해 연안을 합친 지역. 주요 항구들로는 비블로스(현 주바일), 베리토스(현 베이루트), 시돈(현 사이다), 티레(티로, 현 수르)가 있다. 페니키아라는 명칭은 '자주색'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포이닉스'(φοι̑νις)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에 따르면, 이

페니키아
페라라 공의회— 公議會11권

(⇨ 피렌체 공의회)

페랭, 필리프 프랑수아 레오나르 (1885~1950)11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필립보. 한국명은 백문필(白文弼). 1885년 6월 17일 프랑스 리니쉬르아루(Rigny-sur-Arroux)에서 태어나 오툉(Autun) 대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군 생활을 마친 후 페랭은 1907년 9월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10년 9월 24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2개월 뒤 한국 선교사로 선발되어 1

페랭, 필리프 프랑수아 레오나르 (1885~1950)
페레올, 장 조제프 장 바티스트 (1808~1853)11권

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제3대 조선 대목구장. 세례명은 요셉. 한국 성은 고(高). 1808년 12월 27일 프랑스 아비뇽(Avignon) 교구의 퀴퀴롱(Cucuron)에서 태어났으며, 1838년 9월 2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으나 정확히 언제 사제 서품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선교의 임무를 띠고 1839년 4월 28일 프랑스

페레올, 장 조제프 장 바티스트 (1808~1853)
페로시, 로렌초 (1872~1956)11권

이탈리아의 교회 음악 작곡가. 신부. 〔생 애〕 1872년 12월 20일 토르토나(Tortona)에서 출생한 페로시는 토르토나 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주자이자 이탈리아 교회 음악 개혁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주세페(Giuseppe)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는 로마의 성 체칠리아 음악 학교를 마치고 1890년 몬테 카시노 수도원 학교의 음악 교사가 되었으며,

페롱, 스타니슬라스 (1827~1903)11권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세례명은 스타니슬라오. 한국 성은 권(權). 1827년 2월 22일 프랑스 동프롱(Domfront)에서 태어났다. 세즈(Séez)의 대 · 소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850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플레르(Flers)와 아르장탕(Argentan)에서 사목하였다. 1854년 10월 1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수

페롱, 스타니슬라스 (1827~1903)
페루11권

남아메리카 대륙 서안 중앙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페루 공화국(Repúbilica del Perú). 북서쪽으로 에콰도르, 북동쪽으로 콜롬비아, 동쪽으로는 브라질 ·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면하고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세 번째 큰 나라로 면적은 1,285,220㎢이고, 인구는 26,350,000명(20

페루
페루지노, 피에트로 (1448/1450?~1523)11권

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 화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라파엘로(S. Raffaello, 1483~1520)의 스승. 본명은 피에트로 디 크리스토포로 반누치(Pietro di Cristoforo Vannucci). 페루지노는 움브리아(Umbria) 지방 페루자(Perugia) 인근의 치타 델라 피에베(Città della Pieve)에

페루지노, 피에트로 (1448/1450?~1523)
페르비스트, 페르디난트 (1623~1688)11권

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중국명은 남회인(南懷仁), 자(子)는 돈백(敦伯). 17세기 중반 특히 청(淸) 강희제(康熙帝, 1661~1722) 시대 중국 천주교회의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샬 폰 벨(J.A. Schall von Bell, 湯若望)에 이어 흠천감 감정(欽天監監正)이 됨으로써 중국의 역법(曆法) 및 과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생애와

페르시아11권

현재의 이란 지역에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an dynasty)를 세운 페르시아인들이 지배한 고대의 대제국(기원전 550~330). 페르시아의 역사, 종교, 문명은 메대(Media) 왕국의 분파로 시작되었다. 메대인들이나 페르시아인들은 흔히 서양인들이라고 일컫는 인도-유럽인들 중의 한 분파로, 예로부터 스스로 아리아인(Aryan)이라고 불렀다. 아

페르시아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11권

성녀. 카르타고의 순교자. 축일은 3월 7일.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수난기》(Passio SS. Perpetuae et Felicitatis)가 순교자 페르페투아와 그녀의 하녀로서 함께 순교한 펠리치타에 관한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이다. 이 수난기는 환시와 순교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며, 아우구스티노(Augu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
페미니즘11권

기존의 성별 관계를 불평등하다고 파악하고 사회 내 여성의 위치를 재정립하여 동등한 성(gender)으로서의 여성성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이념. 이 용어에는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여성 평등권 운동과 단순한 사회적 평등 차원을 넘어, 여성을 위한 세상을 만들 목적으로 사회 변혁을 일으키려는 이념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페미니

페미니즘
페브로니우스주의— 主義11권

(⇨ 에피스코팔리즘)

페셀리노 (1422~1457)11권

이탈리아의 화가. 본명은 프란체스코 디 스테파노(Francesco di Stefano). 페셀리노는 1422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1427년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1440년대에 피렌체에 있는 외할아버지 페셀로(Juliano il Pesello)의 공방에서 처음으로 화가 수업을 받았으며, 리피(F.F. Li

페셸, 르네 (1887~1972)11권

전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 한국명은 백학노(白鶴老). 1887년 7월 9일 프랑스 칼바도스(Calvados) 주에 있는 비냐(Vignats)에서 출생하여 1911년 6월 29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1912년 12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1913년 4월 전라북도 안대동(현 함열) 본당 5대 주임, 1914년 5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를 거쳐 이

페셸, 르네 (1887~1972)
페토, 드니 (1583~1652)11권

예수회 소속 신학자. 교부학자. 라틴어 이름은 페타비오(Petavius). 〔생 애〕 1583년 8월 21일 프랑스 오를레앙(Orléans)에서 출생한 페토는 16세에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세부터 부르주(Bourges)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1603~1605), 소르본(Sorbonne)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카조봉(Isaac Casa

페트라르카, 프란체스코 (1304~1374)11권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창시자. 단테(A. Dante, 1265~1321) 이후 최고의 시인. "상실되고 소멸되었던 옛 문체의 아름다움을 재생시킬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재주를 지녔던 첫 번째 인물"이라고 브루니(L. Burni, 1370?~1444)가 《페트라르카의 생애》(1436)에서 기록하였듯이, 그는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다. 〔생 애〕 페트라르카는 1304

페트라르카, 프란체스코 (1304~1374)
페티시즘11권

(⇨ 주물 숭배)

펠라지오11권

① 펠라지오 1세(?~561) : 교황(556~561). 〔생 애〕 6세기의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교황 펠라지오 1세는 이탈리아 로마의 공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부제였던 시기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527~565)가 이탈리아 내 동고트인들의 섭정이었던 아말라순타(Amalasun

펠라지오
펠라지우스주의— 主義11권

인간은 오직 본성과 자유로운 의지 결정에 따라 구원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위한 본보기(exemplum)라고 한 펠라지우스(Pelagius, 354?~418?)의 주장 또는 그를 따르던 이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가 이 주장의 이단성을 처음으로 제기하였고, 결국 단죄를 받았다. 〔펠라지우스의 생애

펠라지우스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