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5

김윤근 (1878~1943)金允根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78년 9월 14일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에서 태어났다. 블랑 주교가 종현 성당 내에 설립한 한한 학교(韓漢學校)에서 한 문을 공부하다 1892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1909년 6월 5 일 사제 서품을 받고 인 천(현 답동)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고, 서 울교구 주교관에서 보댕(Bodin

김윤근 (1878~1943)
김윤덕 (?~1815)金允德2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아가다 막 달레나. 경상북도 상주의 은재(현 경북 상주군 이안면 猪音 里)에서 태어나, 천주교에 입교한 뒤에는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 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 교우촌으 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곳에서 1815년 부활 축일을 지 내다가 3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 진영으 로 압송되어 혹독한

김의호 (?~1802)金義浩2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일명 경서. 서울 출 신으로 애오개(현 아현)에서 염색업을 하며 살았다. 일찍 이 최필공(崔必恭, 토마스)과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아들 희달(喜 達)을 황사영에게 맡겨 글을 배우게 하였다. 그 후 1795 년 포청에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를 체포하려다 놓친 을묘박해(乙卯

김이기 (1858~1895)金じ(器2

조선 후기 간도(間島)의 학자. 아명은 진구(鎭九) 자 는 중성(重聲). 호는 어초자(漁樵子). 서울의 학자 집안 에서 태어나 충청도 노성(盧城)의 풀개〔林浦〕라는 곳에 서 한학을 배우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16세 때 김옥균 (金玉均)의 개화당에 가입하였다가 1884년 갑신정변 (甲申政變)이 실패하자 만주로 망명, 동학을 배운 뒤 1892년 가을 간도의

김이기 (1858~1895)
김이쁜 (1811~1866)金 -2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이의송(李義松, 프 란치스코)의 아내. 세례명은 마리아. 황해도 배천[白川] 출신으로 결혼 후인 1857년경 남편과 함께 상경하여 거 동(居洞)에서 살았다. 1859년경 남편이 정의배(丁義培, 마르코)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자신도 이를 따 라 배워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김이식 (1920~1950)金利植2

베네딕도회 신부. 세례명은 마르티노. 1920년 7월 20 일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45년 3월 19일 덕원 수도 원에서 서원하였고, 1948년 12월 26일 사제로 서품되 었다.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의 독일인 신부들과 함께 공산군에 체포되 어 평양 감옥에 수감되 었다가 1950년 10월 5 일 피살되었다. (-> 침 묵의 교회) [편찬

김이식 (1920~1950)
김이우金履禹2

순교자. (⇨ 김범우와 형제들)

김익진 (1906~ 1970)金益鎮2

교육자. 문필가. 세례 명은 프란치스코. 호는 야인(也人). 본관은 안 동. 장성(長城) 군수를 지낸 김성규(金星圭)의 3남으로 목포에서 태어 나, 어려서 한학을 배운 뒤 보통 학교를 졸업하 고 대전중학교, 서울 중 앙고보, 일본 와세다 중 학교를 거쳐 중국 북경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 공하였다. 대학 재학 시 절 학생 운동에 관련하 였고, 한때 사회주의 사

김인상 (1893~ 1954)金寅相2

서울대교구 신부. 세 례명은 야고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에서 태어나 용산 예수 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6월 6일 사제 로 서품되었다. 부여 본 당(1925) 보좌 신부를 거쳐, 강릉 본당(1926), 금사리 본당(1939) 신 부, 청주 고아원(1948) 담당 신부로 전임되었 다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인천) 고해 신부로 성무를 수행

김일호 (?~1802)金日浩2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경 기도 양근(楊根)에서 출생하여 유업(儒業)과 의술로 생 활하다가 1799년 서울로 이주하였다. 그 후 천주교 교 리가 옳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그는 약국을 경영하던 정 인혁(鄭仁赫, 타데오)으로부터 《천주실의》를 빌려 읽은 후 입교하였다. 그리고 명도회(明道會)에 가입하여 정약 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김임이 (1811~1846)金任伊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세례명은 데레사. 서 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동정을 결심한 후로 오로지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20세 때 부친이 사망 하자 오빠 베드로의 집에 머물렀다가 친척들의 집을 전 전하며 생활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후에는 순교자 이문우(李文祐, 요한)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 에서 살았다. 그리고

김장금 (1789~1839)金長金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안나. 일명 '원대의 모친.' 서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중년에 과부가 된 후로는 친정 노 모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수계했는데, 가난함에도 불구 하고 이를 잘 이겨내면서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다. 모 친은 훗날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로부터 성사를 받은 후 선종하였다. 당시 그의

김장금 (1789~1839)
김장복 (1797~1815)金長福2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충 청도 홍주(洪州) 태생. 1801년 부친 김흥금(金興金)을 따라 입교한 뒤 충청도 연풍(延豊)으로 이주하여 생활하 다가 그 해에 일어난 신유박해(辛酉迫害)로 교우들이 체 포되자, 부친과 함께 경상북도 진보(眞寶)로 피신해 살 았다. 그러다가 1815년의 을해박해 때 머루산(현 경북 영 양군 石浦面 葡山洞

김장수 (1942~1976)金長洙2

베네딕도회 신부. 세례명은 보니파시오. 1942년 8월 29일 대구시 중구 계산동 1가 29번지에서 김원석(가브 리엘)과 김을순(베드루일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북고 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4월 1일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968년 1월 6일 유기 서원을 하 였고, 1970년 2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71년 1월 17일

김재덕 (1920~1988)金在德2

전주교구 제5대 교구장. 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본관 경주. 1866년 8월 28일 공주에서 치명한 순교자 김영오(아우구스티노)의 증손자. 1920년 6월 1일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中吉里)에서 김정서(金正瑞, 시 몬)와 김 마리아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5 년 3월 진안 마령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성 유 스티노 신학교 예

김재덕 (1920~1988)
김재문 (1954~1980)金在文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미카엘. 충남 서천군 판교 면 마대리에서 김용환의 아들로 태어나 동성고등학교와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3월 6일 사제로 서품되 었다. 제기동 본당 보좌 신부를 거쳐 홍제동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하던 중 만성 신부전증으로 1980년 7월 선 종하였다. 〔편찬실〕

김재석 (1910~1987)金在石2

마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10년 5월 13일 경 남 하동군 진교면에서 태어나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 업한 후 1935년 6월 15일 대구 계산동 본당에서 드망즈 (Demange, 安世華) 주교 주례로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되 었다. 나주 본당 보좌 신부를 거쳐 영광 본당 주임 신부 (1938. 4)로 사목하던 중 1941년 말 광주교구에서 활동

김재석 (1910~1987)
김재용 (1937~1966)金在庸2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 명은 요셉. 1937년 9월 18일 서울 성북구 미아동 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 을 졸업한 후 1961년 12 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 다. 이어 청량리 본당과 장호원 본당(1962. 12. 30) 신부를 역임한 후 1963 년 7월 육군 15기 군종 신부로 입대하였다. 2군 단 사령부에서 군종 대위 로 근무하던 1966년 5월 2일

김재용 (1937~1966)
김재준 (1901~1987)金在俊2

목사. 신학자. 교육자. 호는 장공(長空). 1901년 함경 북도 경흥군 상하면에서 태어나 20세에 기독교로 개종, 일본 동경 청산학원 신학부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및 웨스턴 신학교에서 구약신학을 전공했으며(1928~1932), 1958년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명예 신 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가 남긴 업적은 한국 프 로테스탄트의 역

김재준 (1901~1987)
김정득 (?~1801)金丁得2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대춘. 충청도 공주(公州, 혹은 大興) 출신으로 친척 인 김광옥(金廣玉, 안드레아)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01년 신유박 해가 일어나자 김광옥과 함께 공주 무성산(茂城山)으로 피신하여 생활하던 중 밀고되어 홍주(洪州, 혹은 禮山) 감 옥으로 압송되었다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