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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전주 초남리(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南溪里의 草南)에 있던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 집안의 하인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안된 시기에 그로부터 교리 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유항검의 가족,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 난 뒤 3월경 유항검의
서울대교구 신부. 세 례명 바르나바. 1918 년 5월 3일 충남 당진 군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났다. 한때 독립 운동가 김구(金九)의 재정을 담당하기도 했 던 부친 김창배(金昌 培)의 영향을 받아 어 려서부터 애국심을 키 우며 성장하였다. 신평 공립보통학교와 동성상 업학교를 거쳐 예수성 심신학교로 진학하였으나 일제가 예수성심신학교를 폐 쇄하자 덕원 신학교

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글레멘스. 덕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6월 7일 연길교구 신부로 서품되었다. 이후 만주의 용정, 훈춘, 명월구에서 사목하다 1943년 3월 평양교구 비현 본당 신부로 임명되었고, 1946년 10 월 안주 본당 신부로 전임되어 활동하던 중 주일 강론이 끝나고 신자들에게 연 길교구 성직자를 위한 기도를 부탁한 것이 문 제되어 북

베네딕도회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1914년 3월 31 일 경기도 금촌 갈곡리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10일 덕 원 수도원에서 유기 서원을 하였고, 1942년 5월 1일 사 제로 서품되었다.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에서 독 일인 신부들과 함께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50년 10월 5일 피살되었다. (→ 침묵의 교회) 〔편찬실
예수회 신부. 세례명은 토비아. 1919년 3월 15일 부 산시 동구 좌천동 566번지에서 김일수(안토니오)와 박 아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 일본 상 지(上智)대학에 진학하여 철학을 전공하고, 1939 년 4월 12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 으며, 1945년 상지대학의 전문부 신문학과에서 독 일어를 강의하였다. 1947년 일본 요꼬스
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북변리 259 소재. 1948년 11월 행주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매괴의 성모. 관할 구역은 김포읍, 고촌면, 계양동, 상야동, 불노리, 장기리. 〔교 세〕 1954년 540 명, 1958년 967명, 1968년 2,883명, 1978년 3,040 명, 1989년 4,189명, 1993년 4,164

한국 천주교회 초기의 신자. 세례명은 토마.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중인 집안 출신으로 충청남도 청양(靑陽)에 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본래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향임(鄕任) 직책 인 풍헌(風憲)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김 풍헌' 으로 불 리게 되었다. 천주교인이 된 후에도 그는 풍헌을 계속 맡 아보는 한편, 신자의
서울대교구 신부. 세 례명은 베드로. 본관은 김해(金海). 황해도 송 화군 풍천 너른골에서 김학선(시몬)과 김종선 (金宗善, 아네스)의 1 남 1녀 중 외아들로 태 어났다. 어머니 김종선 은 송화군 하리면 안농 리 농암촌 공소의 여회 장으로 활약하였다. 11 세에 용산 예수성심신 학교에 입학한 김피득 은 1930년 4월 5일 부 제품을 받고 동성상업학교 을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르나바. 1898년 3월 30 일 경남 밀양군 삼랑진읍 미전리에서 태어났다. 1914년 9월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1926년 5월 29일 드망즈 주교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 다. 이후 장수 수분리(현 전주교구 장계) 본당 초대 주임을 역임한 후 하양 본당 신 부로 전임(1928. 5. 6)되 어 경산

평양교구 신부. 세례 명은 루도비코. 1910년 3월 평양 관후리에서 김성호(金聲鎬, 도미니 코)와 기씨(奇氏)의 5 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 났다. 관후리에서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동성 상업학교 을조를 마친 후 평양교구장 모리스 (Morris, 睦) 주교의 추 천으로 박용옥(朴龍玉, 디모테오)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하였다. 1939년 3월 18

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시몬. 1910년 춘천에서 태 어나 1936년 3월 28일 서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어 수원(현 수원 북수동) 본당 보좌로 사제 생활을 시작하 였고, 1942년 5월부터 풍수원 본당 보좌로 있다가 1943년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본당 신부가 사 망하자 그 해 10월 23 일 풍수원 본당의 제3 대 주임으로 임명되었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충청남도 보령 (保寧)에서 태어나 한 때 홍주에 살면서 포수 (砲手) 생활을 하였다. 1800년 9월(음) 상경하 여 정약종(丁若鍾, 아 우구스티노)의 집에서 행랑살이를 하면서 그 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 한 뒤, 교회 일을 돌보던 중 이듬해인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로 7월 12일(음 6월 2일) 서울
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김해시 동상동 727-5 소재. 1959년 10월 21일 진영 본당의 삼방 공소에서 본당으 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김해시 전역, 김해군 주촌면, 상동면, 대동면, 가 락면, 녹산면, 한림면 일부, 부산시 북구 대저1 · 2동, 강 동동. 소속 공소는 1개소(울만). 〔교 세〕 1967년 1,
마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그리소스토모. 1944년 1월 26일 경북 대구시 신암동에서 김영달과 임계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살레시오 신학원을 거쳐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 12월 12일 마산 완월동 성당에서 장 병화 주교 주례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진해 경화동 본당 신부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다가 1975년 10월 6일 장암으로 선종하였다.
전주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세례명 발도로메오. 본 관 김해. 김대건 신부와 같은 문중으로 1905년 7월 15 일, 김현숙(요셉)과 김 말가리다의 아들로 전북 익산군 여산면 대성리(臺城里) 성치(城峙)에서 태어났다. 그 후 부모가 안대동(安大洞)으로 이사하여 10여 세까지 지내 다가 다시 나바위(羅岩)로 이사했다. 1920년 9월 14일 대구 성 유스

시인. 시론가(詩論 家). 국문학자. 호는 다 형(茶兄), 무애(無愛), 남풍(南風). 1913년 4 월 4일 부친 김창국(金 昶國)의 신학(神學) 유 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2남으로 출생, 6세 까지 부친의 첫 목회지 인 제주에서 성장하였 다. 1919년 부친이 전 남 광주시로 전근되면 서 이곳 기독교 학교인 승일학교(崇一學校) 초등과를 졸업하게 되었

가정(家庭)의 박해로 인해 희생된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경상북도 안동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사색과 독서를 좋아하였고, 20세 전후에는 유교의 경서뿐만 아니라 철학 · 윤리 · 종교 · 천문 · 역학 · 과학, 그리고 노자 · 불교 등 다방면에 능통하게 되었다. 그러 나 과거에 응시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오로지 내적 심화 에만 노력하였으며,
법관. 가톨릭 사상가. 세례명 바오로. 전북 김제군 금 산면 금산리(金山里)에서 1915년 8월 28일에 태어나 원평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일본인 변호사 사무실에 서 일하다가 링컨의 전기를 읽고 법률을 공부하기로 결 심하였다. 1939년 일본에 유학하여 니폰(日本)대학에서 공부하였고, 1940년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 이듬해 귀국하여 서울에서 김병로

